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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따사로운 어느 봄날

By the streem, 2024, digital painting.

By the streem, 2024, digital painting.

‘사람은 사계절은 만나봐야 좀 안다.’고 한다. 사계절 이상을 알고 지낸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다가 타인이 된다. 줌으로 진행하는 북클럽을 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새 회원은 잘 모른다. 구 회원들도 가물가물하다. 우리는 의기투합하기 위해 사계절마다 소풍 간다. 맨해튼에 사는 회원들은 조지 워싱턴 다리만 건너가면 뉴저지에 사는 회원의 차로 이동한다. 나는 소풍만은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차 창밖을 내다봤다. ‘겨울이 정말 간 것일까?’ 겁먹은 듯 의심하는 몸짓으로 살짝 삐져나온 새순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무성한 시골길을 죽 올라갔다가 한참을 내려갔다. 멀리 좁아져 사라지는 길을 보며 아득한 애잔함에 빠졌다. 아카시아 냄새 맡으며 시골길을 걷던 어린 시절, 시골집 개울가에서 놀다가 젖은 옷을 말리던 커다란 바위의 따사로움이 떠올랐다. 차가 멈추자 다시 뉴욕의 건물 안에 갇힌 잔인한 암울함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듯 기억의 필름이 끊겼다.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톨맨 마운틴 주립공원(Tallman Mountain State Park)에 차를 주차했다. 한국 사람 이름이 새겨진 벤치가 서너 개 있었다. 고인이 평소에 즐겨 찾던 곳에 기부한 것이다. 구글링했다. 센트럴 파크 벤치는 1만 달러 기부로 채택될 수 있다. 리버사이드 공원은 7천500달러다. 기부한 의자에 앉아 절벽 아래 강을 내려다보다가 “우리 햇볕 받아 따뜻해진 의자에 등을 기댈 수 있는 봄이 오면 만나자.”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못된 버릇이 있다.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평생 함께한 버릇이다. 친구, 자매, 아이들 남편에게까지 아주 급하지 않으면 전화하지 않는 버릇이다. 전화가 걸려 오면 상냥하게는 받는다. ‘왜 내가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잊고 살았지?’ 깨닫고 만나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 내 불통화 버릇 때문에 사람들에게 핀잔받는다. ‘연락하지 않는 게 자랑이냐? 잘 놀다가도 헤어지면 감감무소식이냐?’ 자주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부정적 특징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내며 섭섭하다고들 한다.  
 


칼바람을 휘두르며 협박하듯 뺨을 치던 겨울이 힘에 겨웠는지 따사로움에 외투를 벗어 던지고 가버렸다. 봄이 약속처럼 찾아왔다. 큰맘 먹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그녀가 감질나는 말, ‘따뜻해진 벤치에 등을 기대고’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만나자고 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버사이드 공원, ‘매기 스미스’(Maggie Smith)라고, 쓰인 벤치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그녀를 기다렸다. 따스하다. 어릴 적 엄마 침대에 들어가 엄마 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그 따뜻함이다.  
 
“잘 지냈어? 네 얼굴 한번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 집안에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생전 전화 한번 하지 않는 네 전화 받고 놀랐잖아.”
 
“햇빛 받아 따뜻해진 벤치에 등을 기댈 수는 봄날에는 만나자. 고 네가 한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

이수임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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