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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는 친구 하나 없이 엄격한 통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고립된 생활을 하던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있다면 그것은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환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었다. 그 그림 중에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 있었다. 로엔그린은 백조가 모는 배를 타고 나타나 곤경에 빠진 소녀를 구한 다음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지는 전설 속 인물이다. 바그너가 이 전설을 바탕으로 ‘로엔그린’이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는데, 루트비히 2세는 15살 때 ‘로엔그린’을 처음 보고 완전히 백조의 기사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나의 백조의 성을 지을 것이라고.   루트비히 2세는 19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환상 속에서 살던 젊은이가 갑자기 실권을 쥐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환상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할 것이다. 루트비히 2세 역시 그랬다. 1869년, 그는 꿈에도 그리던 새로운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짓기 시작했다. 말이 백조의 성이지 사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바그너 오페라 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엔그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니벨룽겐의 반지’ 등 바그너 오페라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성 안을 그냥 도배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2세는 성을 짓고 바그너의 오페라를 후원하는 데에 막대한 돈을 썼다. 왕실 재정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빚까지 지게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대신들이 그를 왕좌에서 강제로 끌어내렸다. 강제 퇴위를 당한 지 닷새 후인 1886년 6월 13일, 루트비히 2세는 뮌헨 근처의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됐다. 평생 환상 속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 바그너 오페라 기사 로엔그린 루트비히 2세

2024-11-11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 구이의 노래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 음유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 작품은 모두 24곡의 노래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에서 ‘왕년에 엄청 잘나갔던’ 인간을 백조에게 빗댄 노래가 있다. 노래는 백조가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리즈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난 옛날에 호수에서 살았어. 그때 정말 아름다웠지. 내가 백조였거든.” 테너가 소리 높여 노래하고 나면 남성 합창이 후렴을 받는다. “불쌍하구나. 불쌍해. 지금은 불에 까맣게 구워지고 있구나.”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백조가 까맣게 불에 구워지고 있다고? 그렇다. 지금 백조는 호수에서 잡혀 와 바비큐가 되는 중이다. 왕년에 잘나갔으면 뭐하나. 지금은 장작불에서 통으로 구워지고 있는 것을. 그런 백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불쌍하구나. 불쌍해!”를 외친다.   백조는 불 위에서 서서히 죽어 간다. 한 절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간주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죽어 가는 새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시종이 나를 꼬챙이에 꿰서 돌리고 있네. 장작 위에서 까맣게 구워졌어. 이제 웨이터가 나를 내갈 준비를 하는구나.”   3절에서 백조는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이제 접시 위에 누워 있다. 더 이상 날지도 못하고, 나를 먹어치울 이빨들만 바라보고 있구나.”   클래식 음악에는 백조를 묘사한 것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 음악들은 모두 하나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을 자랑한다. 하지만 중세 음유시인이 그린 선술집의 백조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까맣게 타서 바비큐가 된 백조다. 카를 오르프는 이렇게 통구이가 된 백조를 코믹한 음악으로 묘사했다. 호수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 때 누가 이런 최후를 상상했으랴. 우리의 젊음도, 우리의 화려한 시간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러니 우리 세월 앞에 겸손해지자.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 구이 백조 구이 중세 음유시인들 클래식 음악

2024-07-29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의 노래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마지막 작품은 흔히 백조의 노래에 비유되곤 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슈트라우스가 부른 백조의 노래였다. 모두 네 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마지막 곡은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곡을 붙인 ‘황혼에’이다.   “그동안 우리는 슬픔도, 기쁨도 손을 맞잡고 견디어 왔다. 이제 방황을 멈추고 저 높고 고요한 곳에서 안식을 누리리.” 이렇게 시작하는 첫 구절에 노래의 주제가 압축돼 있다. 여기서 ‘잠’은 ‘죽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곧 죽음이 찾아오리니 그리하면 외로움 속에 길 잃을 일이 더 이상 없으리”라는 구절이 암시하는 듯 죽음은 또한 ‘평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후반부에 소프라노가 장대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드높은 목소리로 “오! 장대하고 고요한 평화여! 그토록 심오한 황혼이여!”라고 노래하는데, 이 부분을 들으면 일종의 전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외침이 깊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다가올 죽음을 찬양했다. 지극히 장대하고, 엄숙한 울림으로.   그는 곡을 이렇게 맺는다. “방랑에 지쳐버린 우리. 이것이 혹시 죽음이 아닐까?” 본래 원시에는 “저것이 혹시 죽음이 아닐까?”라고 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슈트라우스가 ‘저것이’를 ‘이것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당시 슈트라우스는 죽음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저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주 근접해 있는 것(이것)으로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생을 마감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아마 자신이 부른 백조의 노래가 먼 후세 사람들에게 이토록 깊은 감동으로 다가가리라는 것을 짐작하지는 못했으리라.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 노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당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반주

2024-03-04

[기고] 검은 백조의 위기

영어 블랙 스완(Black Swan)의 우리말 번역 ‘검은 백조(白鳥)’는 모순에 가깝다. 그래서 존재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상 획기적 사건들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 미국의 9·11 테러,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까지 예기치 못한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다.   예견할 수 없었고 당연히 존재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건들을 검은 백조, 즉 블랙 스완이라고 한다. 월가에서 일하다 철학 에세이스트로 전향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2008년 월가의 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탈레브는 그의 저서 『블랙 스완』을 통해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정규분포상의 현상들보다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아웃라이어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매년 조금씩 수익을 쌓아가던 기업도 CEO의 사소한 실수, 회계부정의 발각, 시장 상황의 급변으로 하루아침에 망하곤 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최근 위기관리(Risk Management)를 일상적인 경영관리보다 훨씬 중요하게 취급한다.   역사의 변곡점은 합리적 예측을 거부한다. 우연히 발생한 일이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검은 백조의 등장도 자세히 보면 전조가 있게 마련이다. 단지 이런 전조를 무시하기 때문에 검은 백조의 출현으로 충격을 받고, 그 폐해도 심각한 것이다.   검은 백조의 등장으로 참혹한 전쟁의 폐해를 우리는 겪었다. 1949년 7월 신성모 국방장관은 명령만 있으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해 말 국민당 정부는 공산당에 의해 타이완으로 쫓겨 갔다. 1946년 국민당 장제스(張介石) 군대와 공산당 마오쩌둥(毛澤東) 군대의 내전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장제스의 군대가 마오쩌둥의 군대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군의 군사지원을 받고 있던 국민당 군대는 430만명이었고 공산당 군대는 128만명에 불과했지만 결국 마오쩌둥이 장제스를 1949년 12월 타이완 망명의 길로 내몰았다. 이걸 보고도 공산당 김일성의 침략의도를 간과했다가 이듬해 6·25라는 검은 백조의 출현을 맞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또 하나의 검은 백조의 출현이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독립 당시 핵탄두 1804개, 대륙 간 탄도 미사일 176기, 전략 핵 폭격기 40대를 보유한 세계 3대 핵보유국이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해빙 무드에 따라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이 1994년 부다페스트 협약을 통해 1996년까지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로 넘겨주어 폐기하는 데 서명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야욕은 크림반도의 일부를 점령하더니 결국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략하는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부다페스트 협약을 주도했던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한 것은 끔찍한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백조는 희다고만 생각하다가 검은 백조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전에 빌 게이츠는 신종 바이러스의 전 세계 확산 위기를 경고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검은 백조의 출현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자 빌 게이츠가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게 아니냐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아사망률 추세를 보고 소련의 붕괴를 예견했던 프랑스의 인구역사학자 에마뉴엘 토드(Emmanuel Todd)가 최근 일본 학자들과 대담한 내용을 일본에서 출간한 『노인지배국가 일본의 위기(老人支配國家 日本の危機)』를 보면, 그는 코로나 사태로 세계화의 물결이 패배를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경제선진국인 프랑스조차 세계화로 마스크 공장 같은 단순한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여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자 마크롱 정부가 우왕좌왕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보호주의 현상이 나타나면 경제선진국도 꼼짝없이 위기 대응을 못 해 쩔쩔매게 만든다. 그러면서 토드는 미국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세계질서가 요동치고 트럼프 이후 새로운 미국이 등장하면서 세계화보다 각자도생이 현실화되고 있다. 백조는 모두 희다고 생각하며 북한도 따뜻한 햇볕을 쬐면 문을 활짝 열 것이라고 기대했던 우리도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라는 검은 백조의 출현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시진핑 주석 3연임 이후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이 등장하면서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뿐 아니라 주일, 주프랑스, 주필리핀 등 많은 나라 중국대사들의 거친 언사는 또 하나의 검은 백조 출현의 전조는 아닌지? 심각한 지정학적 위기가 검은 백조가 되어 다가오고 있을 때 모두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염재호 /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기고 백조 위기 세계 금융위기 최근 위기관리 공산당 군대

2023-06-16

[열린 광장] 백조의 노래

그리스 신화에 ‘백조의 노래(Swan Song)’라는 것이 있다. 죽기 전이나 혹은 은퇴 전의 마지막 제스처 또는 공연을 일컫는 은유적 표현이다. 백조는 평소에 노래를 모르고 지내다가 죽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또는 슬픈) 노래로 스스로의 장송곡을 장식한다는 내용이다.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신화의 줄거리는 서양의 여러 문예작품에 소재로 쓰이면서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죽어가는 백조(The Dying Swan)’라는 시에서, 백조의 마지막 노래를 실감 있게 묘사한다. 이 시는 많은 영감을 남기며 후에 발레로도 공연됐다 한다. 필자는 언젠가 그의 시를 읽은 적은 있으나, 발레 공연은 유감스럽게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백조와 거위’ 이야기이다. 어떤 부자가 백조와 거위를 사왔다. 거위는 식용으로 쓰고 백조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거위를 잡아 요리를 하기 위해서 뒤뜰에 나갔다가 실수로 그만 백조를 잡았다. 목숨을 잃게 된 백조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주인이 백조를 풀어주어 목숨을 건지게 됐다.   죽기 직전에 노래를 부른다는 백조의 이야기는 서양의 문학작품이나 음악을 통해 많이 인용돼 왔다.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슬픔에 잠긴 노래를 부른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플라톤) ‘백조는 자기의 죽음을 아름다운 노래로 마무리 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선택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라. 만약 그가 지면 백조와 같은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라.’(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장)   슈베르트의 작품 중 ‘백조의 노래’는 그가 명명한 것이 아니고 출판인이 그의 생전 작품들을 모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조의 노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써 왔으며, 더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은퇴나 죽기 전의 마지막 흥행을 일컫는 ‘백조의 노래’는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그 자체가 훌륭한 ‘스완 송’이지 않을까 싶다. 코비 브라이언은 마지막 고별 경기에서 소속팀인 레이커즈에 60점을 선사하면서 NBA 농구생활을 결산하는 신화를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유례 없는 비극을 남긴 히틀러의 마지막 ‘파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황혼의 제스처는 무엇이 됐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 ‘스완 송’이 되게 마련이 아닐까.     백조와 같이 청초하고 우아함을 간직한 글을 쓰고 싶다. 저녁 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가슴에 안고 해변가를 맨발로 산책하는 것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못하고 있지만 나의 ‘백조의 노래’의 서곡이었을까. 나는 ‘스완 송’의 진수를 가곡 부르기에서 찾는다. 좋아하는 가곡과 함께 하는 시간은 황혼의 삶을 더없이 풍요롭게 감싸준다. 격조 높은 서정시를 배경으로 흐르는 주옥같은 멜로디는 매마른 정서에 안식을 선사한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백조 노래 지면 백조 마지막 노래 셰익스피어 작품

2022-06-08

[열린 광장] 백조의 노래

그리스 신화에 ‘백조의 노래(Swan Song)’라는 것이 있다. 죽기 전이나 혹은 은퇴 전의 마지막 제스처 또는 공연을 일컫는 은유적 표현이다. 백조는 평소에 노래를 모르고 지내다가 죽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또는 슬픈) 노래로 스스로의 장송곡을 장식한다는 내용이다.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신화의 줄거리는 서양의 여러 문예작품에 소재로 쓰이면서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죽어가는 백조(The Dying Swan)’라는 시에서, 백조의 마지막 노래를 실감 있게 묘사한다. 이 시는 많은 영감을 남기며 후에 발레로도 공연됐다 한다. 필자는 언젠가 그의 시를 읽은 적은 있으나, 발레 공연은 유감스럽게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백조와 거위’ 이야기이다. 어떤 부자가 백조와 거위를 사왔다. 거위는 식용으로 쓰고 백조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거위를 잡아 요리를 하기 위해서 뒤뜰에 나갔다가 실수로 그만 백조를 잡았다. 목숨을 잃게 된 백조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주인이 백조를 풀어주어 목숨을 건지게 됐다.   죽기 직전에 노래를 부른다는 백조의 이야기는 서양의 문학작품이나 음악을 통해 많이 인용돼 왔다.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슬픔에 잠긴 노래를 부른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플라톤) ‘백조는 자기의 죽음을 아름다운 노래로 마무리 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선택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라. 만약 그가 지면 백조와 같은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라.’(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장)   슈베르트의 작품 중 ‘백조의 노래’는 그가 명명한 것이 아니고 출판인이 그의 생전 작품들을 모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조의 노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써 왔으며, 더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은퇴나 죽기 전의 마지막 흥행을 일컫는 ‘백조의 노래’는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그 자체가 훌륭한 ‘스완 송’이지 않을까 싶다. 코비 브라이언은 마지막 고별 경기에서 소속팀인 레이커즈에 60점을 선사하면서 NBA 농구생활을 결산하는 신화를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유례 없는 비극을 남긴 히틀러의 마지막 ‘파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황혼의 제스처는 무엇이 됐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 ‘스완 송’이 되게 마련이 아닐까.     백조와 같이 청초하고 우아함을 간직한 글을 쓰고 싶다. 저녁 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가슴에 안고 해변가를 맨발로 산책하는 것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못하고 있지만 나의 ‘백조의 노래’의 서곡이었을까. 나는 ‘스완 송’의 진수를 가곡 부르기에서 찾는다. 좋아하는 가곡과 함께 하는 시간은 황혼의 삶을 더없이 풍요롭게 감싸준다. 격조 높은 서정시를 배경으로 흐르는 주옥같은 멜로디는 매마른 정서에 안식을 선사한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백조 노래 지면 백조 마지막 노래 셰익스피어 작품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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