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한국 방문기!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기내에서 마스크를 써야했습니다. 식사를 할 때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도착 5일 후에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식당 종사자들과 택시 기사들과 같은 많은 사람을 대하는 분들은 마스크를 쓰고 일하셨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핸드폰 SIM카드를 판매하는 창구를 찾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SIM카드를 팔았습니다. 그러나 Data를 쓸 수 있는 카드만 팔았습니다. 우리가 가입한 통신회사는 외국에서 Data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본사 직영점에서 선불폰(Prepaid Phone) SIM카드를 여분의 핸드폰에 넣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3만원에 100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받는 전화는 무료입니다.우리가 주로 숙식할 곳은 익산입니다. 익산 가는 공항버스를 탔습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렸습니다. 호두과자를 사려고 매점에 갔습니다. 사람이 아닌 ‘키오스크(한국에서 주로 무인 주문 기계를 말함)’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아 더듬거렸습니다. 뒤에 서서 기다리던 분이 도와주셨습니다. 아내는 군밤을 사고 싶었습니다. 군밤가게도 키오스크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인건비가 비싸졌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가게 주인들이 점점 키오스크 같은 전자기기들을 사용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한국 도착 다음날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동역하셨던 M목사님이 대전에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례예배가 3일 후 대전의 한 병원에서 열렸습니다. 기도 순서를 맡아 달라는 사모님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장례 예배 후 화장터로 이동했습니다. 화장장은 1층에 있었습니다. 화장하는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유가족과 조문객은 3층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빌딩의 1층에서는 목사님의 시신이 불에 타고 있고 산사람들은 3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같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약 2시간 후에 1층으로 갔습니다. 목사님의 유골 조각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유골 조각들을 곱게 가루로 만들어 유골함에 넣어 유가족에게 전했습니다. 유골함을 천안여고 뒷산 가족 묘실에 안치했습니다. M사모님과 덴버에서 오신 P목사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덕유산에서 1박2일을 함께 보냈습니다.덕유산 입구에 있는 산채정식 전문식당으로 식사하러 갔습니다. 여러 방송사에서 맛 집으로 소개한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었습니다. 산채 반찬이 37가지가 나왔습니다. 식당이 37번 도로에 있기 때문에 37가지 반찬을 고수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비수기라고 하지만 종업원이 없고 주인부부만 일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인건비가 비싸고 쉬운 일만 찾기 때문에 부부만 일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시니어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담배꽁초 줍는 일과 같은 허드레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지만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기 때문에 경쟁율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하루에 3시간씩 한 달(20일) 일하면 70만 원 정도 받는 다고 합니다.한국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미세먼지’였습니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여기에 사는 분들은 공기가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적응이 된 것 같았습니다. 관공서에서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사는 한국 분들도 비슷합니다만 한국이 더 심한 것 같았습니다. 공통점은 남편들이 아내의 꾸중(?)을 들으면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심한 것 같았습니다.금요일 오후에 수원에 가려고 기차표를 알아보았습니다. 다 매진이었습니다. 버스를 알아보았습니다. 다행히 표를 구했습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되는 주말에는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수입으로 내 집을 마련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에 대해 비관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쪽으로 돈을 쓴다고 합니다.누님 부부와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언제 도착하는 지를 4번이나 물었습니다. 매형은 90세입니다. 친구 분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젊은이들은 바쁘게 삽니다. 같이 식사할 사람이 적어졌습니다. 저희 부부와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시간을 내어 찾아와 주고 들어주어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이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전화 하나를 개설하고 그 번호로 전화를 한 사람에게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면 되는 직업입니다. 30분에 우리 돈으로 1만 원 정도 받는다고 합니다. 나의 주장을 하기 바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는 세상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목회칼럼방문기 한국 한국 도착 한국행 비행기 한국 분들

2023-04-21

[이 아침에] 멕시코 국경 방문기

오랜만에 멕시코 티후아나를 다녀왔다. 남편의 고객들도 이젠 코로나바이러스가 독감 정도로 약해졌다고 인식함에 따라 출장이 재개됐다.   미국 여권으로 멕시코 여행은 비자 없이 가능하지만 기업체를 방문하려면 국경에 있는 멕시코 이민국에서 일주일짜리 여행 허가서를 따로 받아야 한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이민국이 어딘지 잠시 헷갈렸지만 금방 서류를 발급 받아 멕시코로 들어갔다. 멕시코는 입국심사를 샘플링으로 하므로 밀리지 않아 국경을 통과하는 길이 우리가 전세 낸 듯 한가했다.     거래 업체를 찾아가는 길에서 잘 보이는 산 위 알록달록 원색 아파트와 고딕 건물로  지어진 가톨릭 성당은 올 때마다 눈길을 끈다. 헷갈리는 도로 시스템,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나무가 드문 삭막한 거리, 재포장 공사를 하지 않아 먼지 펄펄 나는 도로 등 낙후된 모습조차 반가웠다.   미국에서 자동차 개스를 충분히 넣어갔지만 멕시코 주유소를 미리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길가를 살폈다. 그런데 멕시코의 하나뿐인 국영 석유기업 ‘Pemex’ 주유소는 사라지고 대신에 미국 브랜드인 셰브론을 비롯해 처음 보는 이름들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독과점을 없애고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멕시코가 2022년 전 세계에서 은퇴 이민 가기 좋은 나라로 세 번째라고 한다. 선호도 조사에 적용된 5개의 주요 기준을 열거하면 주택과 부동산 가격, 생계비, 영주권 취득 난이도, 은퇴 이민 편익과 할인, 의료시스템 등이다.     예전에 티후아나에서 엔세나다로 가던 중 ‘La Salina Del Mar’라는 아름다운 바닷가의 미국인 은퇴 마을을 본 기억이 있다. 은퇴 후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생각하는 한국 사람처럼 멕시코 은퇴 이민도 멕시코 문화와 언어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나 해당할 것 같았다.     일을 다 보고 미국으로 가려고 국경 쪽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입국 차량 행렬이 엄청나게 길었다. 줄이 그런대로 잘 빠져 국경 검사대 앞에 다 와 갈 때쯤 남편이 이민국에 출국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을 깜빡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앞뒤 옆이 꽉 막혀있는 차의 행렬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출국 신고를 하지 않으면 일주일 내에 다시 이민국에 와야 하는데 어떻게 다시 오냐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긴급상황인 듯 벽 옆으로 바짝 붙여 놓은 차가 한 대 있었다. 남편은 그 차 뒤에 우리 차를 붙여 놓고 이민국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다른 차에 불편을 주는 것이 미안해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5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부리나케 달려온 남편은 황당하게도, 법이 바뀌어 출국 신고 안 해도 되는 거였다고 말한다.     아무튼 홀가분한 기분으로 국경 통과대로 진입하는데 살벌한 광경이 눈을 확 사로잡는다. 미 입국 심사대로 들어가는 10개가 넘는 도로 사이사이를 둘둘 감은 철조망으로 벽을 쳐, 미국으로의 불법 입국 시도에 쐐기를 박아 놓은 것이다. 트럼프 시절 중미에서 미국으로 오려는 캐러밴 무리를 저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차 안에 생물이 있는지 멕시코에는 얼마 동안 무슨 일로 갔다 오는지 확인 절차가 생략되는 등, 대면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어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됐다. 미국도 멕시코도 자국 보호를 위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멕시코 방문기 멕시코 이민국 멕시코 은퇴 멕시코 티후아나

2022-06-26

[열린 광장] 2021년 한국 방문기

2년 만에 들어선 인천국제공항의 입국 줄은 길었다. 뉴욕발 비행기에 이어서 LA발 비행기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보건소 직원들과 먼저 면접하고 입국 심사를 받았다.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섰는데 갑자기 앞과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빨리 좀 하라고. 이게 뭐야!” 지치고 화난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줄은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온 것이 실감났다. 공무원에게 호통치는 어르신들과 조용히 신경 쓰는 직원들이 재미있다. 차례가 돼서 비행기에서 작성한 서류, 자가격리 면제서와 PCR 음성 결과지를 제출하고 한국 전화 번호를 확인했다. 이어서 지문과 사진을 찍고 입국심사를 받았다. 모든 과정을 마친 내 여권에는 ‘해외예방접종 격리면제자’와 ‘PCR제출자’ 스티커 두 개가 붙었다.     팬데믹 전과 달리 차량안내소에서 지정해준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 차량 번호를 받고 택시에 올랐다. 등록된 택시만 공항에 들어오는지 궁금했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카메라에 찍히기 때문에 승객과의 연결이 가능하다고 운전기사가 답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 곧 지역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여권과 자가격리 면제서를 지참하고 다음날과 일주일 후 두 번 PCR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찾아간 보건소 앞에는 긴 줄이 서 있었다. 놀이공원처럼 뱅글뱅글 돌아간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QR 코드가 찍힌 하얀 종이 한 장씩을 줄 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코드를 열면 문진표가 나온다. 여기에 인적사항을 적어 넣고 다운로드하면 새 QR 코드가 뜬다. 이 QR 코드는 도착인증 확인서로 ‘지금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갑자기 “해외입국자는 손드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방호복 직원이 입국 날짜를 묻고 여권에 붙은 스티커를 확인한 후에 자가격리 면제서를 요구했다. 긴 줄 끝의 첫번째 키오스크에서 QR 코드 확인을 받고, 두번째 키오스크에서 인적사항 확인과 플라스틱 통 하나를 받는다. 마지막 키오스크로 들어가서 가림막 뒤에서 구멍으로 내민 손이 코 속 깊숙이 찌른 막대를 통에 넣으면 검사가 끝난다. 효율적인 한국 보건소 시스템에 신뢰감이 들었다.     한국은 어느 장소에 입장하든 QR 코드, 안심콜(08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혹은 전화번호로 방문을 인증한다. 접종 완료률은 80%다. 그럼에도 감염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작년 말에 코로나19 백신이 나왔고 올해에는 화이자와 머크사가 ‘5일 치료제’를 개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코로나19는 확산과 진정과 재확산을 반복한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정책은 중환자 병상 부족과 새 방역대책의 논의를 가져왔다.     2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부스터샷을 맞고 자가격리 면제서를 들고 한국에 왔지만 12월 엄마의 구순 행사는 불투명해졌다.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은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치매 엄마에게 혹시 내가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무척 조심한다. 엄마가 다니시는 주간 보호센터의 노인들과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협조를 구했다.     고되고 힘들었던 고국 방문이었지만 한국의 방역시스템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정 레지나 / LA독자열린 광장 방문기 한국 한국 보건소 한국 전화 도착인증 확인서

2021-11-30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