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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어리석은 자의 변명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매일 걱정하며 산다. 생각나는 가능성을 콩알처럼 펼쳐 놓고 지레 걱정하며 산다.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애들은 잘 지내는지, 신용카드를 누가 도용하지 않았을까, 잔고가 엄청난 것도 아닌데 누가 빼갔나 확인하고, 혹시 스팸 이멜에 속아 넘어갈까 걱정이 태산이다.   뒷마당에 누렇게 잎이 마른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이고, 허리케인에 옆으로 쓰러진 코스모스는 씨는 언제 받나 애가 탄다. 가을 바람에 풍성하게 자란 채소들은 시들기 전 빨리 먹어야 해서 안절부절이다.     세상에 마음 편하게 굴러 가는 것은 없다. 열심히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 않는다.     내게 가장 약한 고리는 참을성이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피상적인 것, 겉으로 드러난 것에 즉각 몰두한다. 피상적 매력(Superficial charm)에 필이 꽂히면 물 불 안 가리고 덤벼들어 사고 칠 확률이 높아진다.   어릴 땐 생각에 몰두해 앞을 안 보다가 넘어져 무릎 성한 날이 없었다. 나이 들면서 운명적인 만남에 목숨 걸었지만 제대로 된 사랑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돈키호테식 발상, ‘예술가적 방랑끼’라고 치부 하기에는 청춘시절의 기록은 변명의 여지없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쓴 대화편 중 하나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들을 철학적 입장에서 변론한다. 자신이 신을 밎지 않는다는 혐의에 대해 “신탁(Delphi Oracle)이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며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지 않은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깨달았으며, ‘자신이 아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고 주장한다. 젊은이들을 부패시켰다는 혐의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랐으며 진리를 추구하도록 격려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은 두려워 할 일이 아니며 죽음은 무의식 상태거나 다른 세계로의 이동일 수 있으며, 어느 쪽이든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한다.   제자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법이 부당하게 느껴질지라도 시민으로서 법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직전 마지막 대화를 기록했는데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일 뿐 철학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있다. 지혜로운 자는 할 말이 있을 때 말을 하고 어리석은 자는 말을 하기 위해서 말을 한다. 어리석은 자는 잘못을 잘못인 줄 모르고, 잘못인 줄 깨달아도, 누가 알려주어도 고치지 않는다.   후회는 어리석은 자의 변명이다. 인생은 체념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체념은 포기하고 방관하는 것이고 극복은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제일 잘 안다. 쓸 데 없는 일에 목숨 걸다 자빠지고, 꼭 해야 할 일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 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산다.   어릴 적 줄넘기를 할 때 늘 걸려 넘어졌다. 땅에 줄이 닿는 순간을 포착해 힘차게 뜀박질 해도 소용없었다. 줄이 땅에 닿기 전에 공중으로 몸을 날려야 하는 것을.   이젠 줄넘기를 하지 않는다. 남이 던지는 줄에 걸려 쓰러지지 않는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리석은 자의 변명은 끝이 없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변명 자의 변명 돈키호테식 발상 죽음 직전

2024-10-0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발상의 전환은 창조의 불꽃

바꿔야 산다. 정체(停滯)되면 늘 그 자리에 머문다. 세월은 앞으로 가는데 발전하거나 나아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경제가 정체되면 불황이 계속된다. 교통이 정체되면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게 되면 고장 난 시계바늘처럼 작동하지 않고 멈춘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란 말이 요즘 회자된다. 무엇이든 너무 늦어지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없다. 소기(所期)는 ‘기대한 바’란 뜻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시간의 나침반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사랑, 성공, 행복, 재물, 인간 관계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은 주변 상황을 고려해 좋은 시기를 결정하는 때를 말한다. 울고불고 매달리던 사랑도 타이밍을 놓치면 물거품이 된다. 사랑도 정체되면 밀려나거나 떠밀려간다.     발상(發想)은 어떤 생각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 ‘Thinking’ 혹은 ‘Idea’로 적는데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발상은 혜성처럼 스쳐가는 ‘In a flash of inspiration’ 이다. 발상은 번개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발상은 창조의 밑거름이다. 실체가 없지만 발상은 생의 밀고 나가는 힘의 근원이 된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탐구하면 발상은 동기부여의 돌파구가 된다. 실체로 구현되지 않는 발상은 무효다. 허깨비처럼 날아가 버린다. 발상의 전환은 부단한 노력과 집념으로 성취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정설이다. 발상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발상은 창조의 무한한 동력이다.     오래 갇혀 살면 모든 것이 벽처럼 느껴진다. 문이 있는데도 그 문을 박차고 나갈 용기를 잃어버린다. 새롭고 가슴 떨리는 것들을 외면하고 결국 보이는 것만 보는 일상의 무료함에 젖어 피곤한 반복으로 생을 낭비한다.     1879년 10월 22일, 에디슨이 백열전구로 열세 시간 반 동안 불을 밝히는, 새로운 빛의 세계로 인류를 초대한다. 어둡고 긴 밤의 세계, 횃불 시대를 마감한 날이다. 에디슨의 3대 발명품은 축음기, 백열전구, 영사기인데 전문가들은 에디슨을 ‘발명하는 방법’을 발명한 것이라고 칭송한다. 특허수가 1000종을 넘어 ‘발명왕’이란 칭호로 불리지만 초등학교 때는 ‘산만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에디슨을 가르쳤다.     파리 시립현대마술관 4층과 5층에 전시된 ‘전기의 요정’(1937, 페널에 유채)은 전기의 위대한 역사를 담은 라울 뒤피의 대형벽화다. 가로 60m 세로 1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꼽힌다. 뒤피는 전기의 역할을 고대부터 20세기 과학까지 작품에 담아낸다.     ‘기쁨의 화가’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밝고 화려한 색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춤추는 듯한 붓질, 경쾌함과 리듬감이 살아 생동한다. 중앙에는 제우스의 벼락과 함께 전기를 상징하는 이브리쉬르센 발전기가 그려져 있다. 에디슨, 벨, 퀴리부인,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비롯해 전기와 관련된 1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두 번째 ‘전기의 요정’ 석판화를 만든 뒤 뒤피는 극한 관절염에 시달리다가 대규모 회고전을 석달 앞두고 영면한다. 전기의 요정은 뒤피의 목숨과 맞바꾼 걸작이자 위대한 결실이다. 목숨과 바꿀 만큼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사람의 죽음은 슬프지 않다.   회오리 바람처럼, 폭풍과 번개로, 발상의 소용돌이는 생의 곳곳에서 괴력으로 다가온다. 사는 것이 시들하고 힘들어서, 빛과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생각의 실마리를 놓친다. 발상의 전환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의 미래는 창조의 불꽃이 타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발상 전환 번개로 발상 축음기 백열전구 뒤피의 목숨

2023-08-31

[살며 생각하며] 8월에 생각되는 역설적 진리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있다. 1998년 상영작으로 대한민국 멜로 영화 수작 중 하나로 꼽힌다. 대강의 줄거리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한 남자가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가운데 구청 주차요원으로 근무하는 한 여인이 단골손님이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여자는 남자에게 은근슬쩍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지만 얼마 못 가 죽을 입장인 남자는 무반응으로 일관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여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놀이터도 가고 밥도 먹는다. 그러다 남자가 입원하게 되고 사진관은 문이 닫힌다. 입원 사실을 모르는 여자는 매일같이 사진관을 찾아가 아쉬운 마음을 편지에 담아 창문틀에 걸어 둔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로부터 연락은 없다.     여자가 타지역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끝나나 했지만 퇴원한 남자가 정리차 사진관에 들르면서 깨진 창문과 함께 놓여 있는 여자의 편지를 발견한다. 남자가 늦은 답장을 쓰지만 붙이지는 않는다. 대신 남자는 수소문으로 찾아낸 여자의 새 근무지 인근의 카페에 앉아 여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막상 여자가 나타났지만 다가가지는 않는다.   남자가 죽고 세월이 적당히 흐른 시점에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사진관 외곽 진열대를 통해 자신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은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남자의 마지막 고백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역설(Paradox)이란 일반 상식, 통념, 정의에 맞지 않는 논리의 비약적 전개를 말한다. 물론 여기는 거짓말 같은 의미론적 억지까지 포함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대신 붙인 제목이다. 왜 제작사나 감독이 본래의 제목 대신 계절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제목으로 택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제목이 상상 불능하지도 않음은 일본의 수필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같은 제목을 사용한 바 있어서다. 그러나 서울에서만 50만 관객을 모았음은 이런 역설적 발상도 한몫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역설적인 문구와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이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은 자는 얻으리라.’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 등이 좋은 예다. 이야기로는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이 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수장이 되었는가 하면, 아들 요셉은 이복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오히려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와 형들을 고센 땅에 이민시켜 400년 후 대이스라엘 민족의 씨앗이 되게 했다 등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진짜 역설의 밑그림에 불과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찐 역설은 예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다. 전에는 십자가가 악과 죽음이었다면 예수 후 십자가는 구원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생각 역설 역설적 진리 역설적 발상 진짜 역설

2022-08-26

[살며 생각하며] 8월에 생각되는 역설적 진리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있다. 1998년 상영작으로 대한민국 멜로 영화 수작 중 하나로 꼽힌다. 대강의 줄거리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한 남자가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아무 일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가운데 구청 주차요원으로 근무하는 한 여인이 단골손님이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여자는 남자에게 은근슬쩍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지만 얼마 못 가 죽을 입장인 남자는 무반응으로 일관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여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놀이터도 가고 밥도 먹는다. 그러다 남자가 입원하게 되고 사진관은 문이 닫힌다. 입원 사실을 모르는 여자는 매일같이 사진관을 찾아가 아쉬운 마음을 편지에 담아 창문틀에 걸어 둔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로부터 연락은 없다. 화가 치민 여자는 어느 날 밤 돌을 던져 창문을 부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여자가 타지역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끝나나 했지만 퇴원한 남자가 정리차 사진관에 들르면서 깨진 창문과 함께 놓여 있는 여자의 편지를 발견한다. 남자가 늦은 답장을 쓰지만 붙이지는 않는다. 대신 남자는 수소문으로 찾아낸 여자의 새 근무지 인근의 카페에 앉아 여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막상 여자가 나타났지만 다가가지는 않는다.   남자가 죽고 세월이 적당히 흐른 시점에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사진관 외곽 진열대를 통해 자신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은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남자의 마지막 고백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역설(Paradox)이란 일반 상식, 통념, 정의에 맞지 않는 논리의 비약적 전개를 말한다. 물론 여기는 거짓말 같은 의미론적 억지까지 포함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대신 붙인 제목이다. 왜 제작사나 감독이 본래의 제목 대신 계절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제목으로 택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제목이 상상 불능하지도 않음은 일본의 수필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같은 제목을 사용한 바 있어서다. 그러나 서울에서만 50만 관객을 모았음은 이런 역설적 발상도 한몫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역설적인 문구와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이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은 자는 얻으리라.’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 등이 좋은 예다. 이야기로는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이 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수장이 되었는가 하면, 아들 요셉은 이복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오히려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와 형들을 고센 땅에 이민시켜 400년 후 대이스라엘 민족의 씨앗이 되게 했다 등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진짜 역설의 밑그림에 불과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찐 역설은 예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다. 전에는 십자가가 악과 죽음이었다면 예수 후 십자가는 구원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생각 역설 역설적 진리 역설적 발상 진짜 역설

20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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