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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지혜로운 독서법을 찾아서

 나는 지금까지 책을 몇 권이나 읽었을까?   그동안 적어 놓은 독서목록을 살펴보니 일주일에 한 권, 그러니까 평균 1년에 50권 정도 읽은 셈이니 그동안 읽은 책이 3500권 가량 된다는 계산이다. 보통 생활인으로 치면 제법 많은 양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쟁이의 처지에서는 부끄러운 독서량인 것 같다. 평생 다섯 수레의 책을 읽으라는 옛 말씀에 따르더라도 턱없이 부끄럽다.   물론, 읽은 책의 권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었는가 일 텐데, 그런 점에서는 크게 부끄럽지 않지만 이 역시 폭이 너무 좁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 들수록 책읽기도 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눈도 어두워지고, 읽는 속도나 집중력 독해력도 떨어지니, 새로운 독서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을 책의 선정이나 읽는 방법 등도 나이에 맞게 바꿔야할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듣는 ‘오디오북’은 사양하겠다. 책은 읽는 것이지 듣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읽는 쾌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눈이 보일 때까지는 돋보기를 들이대면서 느릿느릿이라도 읽을 생각이다.   이렇게 헤매는 중에 한 원로 석학의 독서법을 읽고 솔깃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의무적으로 다 읽으려하지 말고,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서 읽고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며 읽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한다.   “목장에서 소가 풀을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나비나 벌이 꽃에서 꿀을 딸 때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골자는 책을 의무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재미없으면 던져버리고,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는다”고 한다.   그것 참 지혜로운 독서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읽어보니 뭔가 찜찜하다. 우선은 책을 쓴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쓴 책을 독자들이 이런 식으로 메뚜기 독법으로 읽는다든지 재미없다고 던져버린다면… 하는 생각도 들어서 서글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척 보고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서 가려낼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건 천재이거나, 책을 무척 많이 읽은 독서가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독서법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것이나 같은 방법이다. 당장 필요한 것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인데 과연 이런 독서법이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줄거리나 주제가 탄탄하게 이어져 있는 문학작품을 이런 식으로 읽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독서로는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문학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을 떠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는 힘들여 고생스럽게 해야 하는 인생공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부터는 새로 나온 책들을 허겁지겁 찾아다니며 넓게 읽기보다는, 우물을 파듯 차근차근 물이 나올 때까지 깊게 파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해는 동서양의 고전 문학작품을 다시 읽기로 독서 계획을 세웠다. 읽을 책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즐거운 시간에 젖는다. 오래된 책의 냄새, 작품의 향기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설렌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독서법 고전 문학작품 읽기로 독서 바람직한지 의문

2022-02-16

[문화 산책] 전업작가 부재의 한인사회

 “자투리 토막글 이제 그만 쓰고, 오래 남을 굵직한 작품 좀 쓰세요!”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드릴 말씀이 없고 죄송해서 고개만 푹 숙이고 한동안 벌을 섰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쓴 희곡이 극단에서 공연되면서 극작가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 1971년이니까, 올해로 글쟁이 50년인데 자신 있게 내놓을 글이 없다는 건 매우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다.   되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허름한 ‘문화잡화상’을 열고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왔다. 글을 써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가정을 건사하고 아이들을 키운 셈이다. 광고문안, 신문·잡지 기사, 칼럼부터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 공연대본, 미술책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써서 여기저기에 부지런히 발표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세상에 내놓은 글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형편 되는 대로 책으로 발간하다 보니 이런저런 책을 25권 넘게 펴내게 되었고, 50편의 희곡을 공연하거나 연극잡지에 발표했다.   늘 원고마감에 쫓기느라 오래 남을 묵직한 작품을 쓸 뭉텅이 시간을 가질 겨를은 아예 없는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딱히 내세워 자랑할 만한 책도 없고 대단한 화제작도 못 낸 허름한 글쟁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런 것이 다 구차스러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결국은 내가 큰 글을 쓸 능력이 없고, 철저한 작가정신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크고 웅장한 작품을 쓰는 동료문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멋진 작품을 쓰겠다는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좀 늦은 것 같다. 그나마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하늘이 주신 복이려니 여겨 허리 꺾어 절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미주 한인사회의 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이른바 ‘전업작가’는 정말 몇 명 안 된다.   예술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으니, 글쟁이가 햄버거를 굽고, 화가가 마켓을 지키고, 음악가가 페인트칠을 하고, 연극인이 목수를 하고, 미술평론가가 남의 집 잔디 깎으러 다니고… 그러면서 작품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출산, 육아, 가사를 책임져야 하고, 돈벌이까지 해야 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경우는 한층 더 열악하다. 결혼을 하면 ‘경력 단절’을 피할 길이 없다.   이 사람들이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 서글퍼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물론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스승 김희창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느 사람 자체가 예술일 때, 그 사람의 생활 자체가 예술일 때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만들어 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해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서 우러나야 하는데, 그 위에 정신과 생활(먹고 사는 데)에 여유가 있어야 하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미주 한인사회에도 이건희 회장 같은 안목 높은 후원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 같은 화끈한 존재면 더 고맙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도 돈을 엄청 많이 번 진짜 부자가 적지 않다는데 길게 보면 부동산 투자보다 제대로 된 사람에게 투자하는 편이 훨씬 현명할 텐데….     하도 답답해서 해본 생계형 글쟁이의 푸념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전업작가 한인사회 전업작가 부재 미주 한인사회 문학작품 공연대본

2021-11-25

양당 주지사 후보 문학작품 놓고 설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의 한 작품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 소환됐다.   최근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공립학교 내 비판적 인종이론 교육 금지를 목적으로, 모리슨의 1987년 소설 ‘빌러비드(Beloved)’ 퇴출운동을 벌여왔다.     글렌 영킨(공화) 후보는 테리 맥컬리프(민주) 후보가 이러한 캠페인을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작품 속 주인공 여성이 노예주와 하수인의 억압을 피할 목적으로 두살짜리 아이를 죽이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소설 속에서 1856년 마가렛 가이너라는 흑인 여성 노예가 탈출했으나 곧 노예사냥꾼에게 체포될 위기에 놓인다.   마가렛은 자신의 아이들이 다시 노예생활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들을 살해했다.   마가렛은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붙잡혔다. 소설 속에는 강간 등 불편한 성애 장면도 나온다.     영킨 후보는 정치광고를 통해 페어팩스 카운티 학부모 로라 머피가 2013년 이 소설 퇴출운동을 벌이다가 실패한 사실을 공개했다.   2016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 주도로 이 소설을 포함해 노골적인 성애를 묘사하는 작품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의 학습거부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2017년 당시 주지사였던 맥컬리프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맥컬리프 후보는 영킨 후보의 비판을 비판하면서 “우리 공립학교와 아이들을 정치적 흥정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작품은 노예제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를 면밀하게 묘사하고 노예제를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농장에서 탈출한 주인공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통해 자아 정체성을 성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목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주인공들은 사랑받지 못한 자로, 저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주연으로 1998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토니 모리슨은 오하이오주의 로레인 태생으로, 1953년 워싱턴D.C.에 위치한 하워드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 흑인 여성 문학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작가로, 예술, 정치, 역사적으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비판적 인종이론 논란으로 자주소환돼 뜻하지 않은 주목을 받고 있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문학작품 주지사 양당 주지사 버지니아 주지사 비판적 인종이론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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