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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공중 진화…“일상의 전투 비행”

  ━   원문은  LA타임스 9월3일자 ‘Hot, dirty, dangerous: Aerial firefighting is a labor of love’ 제목의 기사입니다.   가주 산림화재예방국(California Department of Forestry and Fire Protection)의 소방 항공기 파일럿 제프 레이놀즈(Jeff Reynolds)는 첫 산불 시즌의 어느 날 비행중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비행기의 빈 날개에는 연료가 가득 차 있었고, 기체의 배 속에는 화재 억제제가 가득 실려 있었다. 그는 뜨겁고 얇은 공기를 헤치고 ‘무겁게 비행’하고 있었다.   저고도로 낮고 천천히 비행함으로써 비행기의 기동성을 제한한 터라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주변 지형도 잘 보이지 않는 짙은 연기 속으로 일부러 다이빙하고 있었다. 한가지만으로도 위험한 조건들이 쌓이면서 결국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마치 재앙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나 다름없었죠.”   레이놀즈는 당시 목표 지점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항공조정사는 그에게 회항해 다시 목표 지점으로 향하라고 지시했다. 1000갤런의 화재 억제제를 실은 채 그는 자동추력장치(throttle)를 밀어넣어 엔진에서 더 많은 힘을 짜내고, 기체를 천천히 상승시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는 창문 너머 바로 눈앞에서 이상한 흰색 물체를 발견했다. 산 언덕을 따라 올라오고 있던 트럭이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고도까지 와있었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그는 이미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고, 오른쪽에 있던 언덕과의 충돌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레이놀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때의 충격적인 순간은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다”면서 “평생 잊지 못할 악몽 같은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우리는 종종 뉴스 영상에서 높은 상공에서 항공기가 화재 진압을 위해 붉은 화재 억제제를 불길 위에 뿌리는 장면을 본다. 또는 헬리콥터가 거대한 물 양동이를 매달고 주택 주변에 뿌려 불길을 막는 멋진 광경도 목격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의 산불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소방 항공기 파일럿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소방 항공기 파일럿은 극소수다. 이들은 대형 여객기나 사설 제트기 회사에서 제공하는 상대적인 호화로운 환경과 높은 임금을 마다하고, 뜨겁고 더럽고 위험한 공중 소방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직접 비행기를 청소하고 연료를 채우며, 때로는 낡은 작업복을 입는다. 임금도 상업 항공기 조종사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다.   근무 환경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   연방교통안전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전국에서 공중 진화 작업중 최소 14건의 항공기 및 헬리콥터 추락 사고가 발생해 최소 25명의 파일럿과 승무원이 사망했다. 그 중 일부는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산비탈에 충돌하거나, 물을 끌어올리던 호스가 헬리콥터 로터에 엉켜 추락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미국 상업 항공사 소속 파일럿중 비행 중 사고로 사망한 파일럿은 단 한 명도 없다.   항공 소방 파일럿들의 근무 일정은 고용주에 따라 다르다. 일부 계약업체들은 연중 내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산불이 발생하는 곳에서 비행한다. 반면, ‘화재 시즌’에만 일하는 파일럿도 있다. 그런데 시즌 파일럿들이 과거에는 여름철 건조한 시기에만 일했지만 최근 몇 년간 그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개 10일 연속 근무 후 5일간 휴식을 취하는 일정을 따른다.   최근 새크라멘토 메트로폴리탄 소방국에서 은퇴한 수석 파일럿 몬티 반랜딩햄은 “항공 소방은 ‘일상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전투 비행에 가장 가까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항공 소방업계에 진입하려면 학생들은 기본적인 이착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거나, 넓은 시골 지역에서 전력선이나 송유관을 감시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며 경력을 쌓아야 한다. 이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지루한 업무를 견뎌야 하며, 그 과정에서 수천 시간의 비행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항공 소방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한 열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새크라멘토 소방국 헬리콥터 파일럿인 브라이스 미첼이 전형적인 예다.     그는 10대 시절 소방국의 자원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항공 소방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그의 첫 상사는 그를 ‘호스를 들고 헬리콥터를 세차하던 어린 소년’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미첼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아마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것이 그때 즈음이었다”고 말했다.   미첼은 소방관으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다른 동료들처럼 새 차를 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돈을 모아 6만 달러짜리 훈련용 헬리콥터를 구입했다. 그런 다음 비행 교관을 고용해 비행을 배웠고, 교관 자격증을 얻은 후에는 비행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꽤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저렴한 비행 학교를 운영했다”며 “휴일에도 비행기 조종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비행을 가르치지 않을 때에는, 작은 R22 헬리콥터를 타고 협곡으로 나가 헬리콥터 조종사로서 항공 소방에 필요한 고난도 비행을 연습했다”고 말했다.   특히, 한여름의 더운 날에 강 위에 정지해 떠있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이는 화염 위에서 고고도로 비행하는 대형 헬리콥터 조종 상황과 비슷했다.   비행 연습 외에 다른 훈련들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첫 임무는 응급처치 요원이었다. 헬리콥터 케이블에 매달려 위험한 협곡이나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 부상자들 구출하는 일이었다. 이후 구출 작업의 지휘자 역할을 맡아, 조종사가 비행을 할 때 통신과 항로를 관리하고 구출 요원을 지휘하는 팀장이 되었다.   그의 역할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는 헬멧 속에서 동시에 10개의 라디오 채널을 듣는다고 설명했다. 이 채널들은 모두 중요한 정보로, 다른 항공기에서 보내는 보고, 지상 소방대원의 상황, 항공 교통 관제사들의 지시들이다.   미첼은 “극도의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지만 비행을 하면서 때때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산기슭의 트럭과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겪었던 레이놀즈의 열정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사우스LA 캄튼 공항에서 광고 배너를 끌고 비행하는 일을 하며 파일럿 경력을 시작했다. 2016년 그는 사설 항공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몬터레이 공항에 고객을 내려주던 중이었다.     그때 그는 활주로에서 자신의 비행기를 청소하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의 비행기는 불길 위를 낮고 천천히 날며 비행한 흔적인 재와 죽은 벌레로 덮여 있었다. 그는 곧 그녀가 ‘산불 공중 진화(air attack)’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인근에 발생한 산불 위에서 항공 교통을 통제하는 임무였다.   다시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소개로 소규모 사설 계약업체에 근무하게됐다. 레이놀즈는 7년 동안 약 3000시간의 비행 경험을 쌓은 후 처음으로 항공 소방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항공기를 조종하며 화염을 향해 다이빙하는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다.   레이놀즈는 다른 파일럿들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할 때, 그들이 종종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고 한다. 그들의 질문은 이렇다.   “여름철 아르바이트 같은 거야?” “메이저 항공사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 중인 거야?”   레이놀즈의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요, 이게 제 진짜 직업인데요.”   그는 비행으로 큰 돈을 벌긴 어렵다. 도쿄행 대형 여객기를 조종하거나, 유명인사들을 제트기로 칸 영화제에 데려다주며 고소득을 올리는 파일럿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목숨과 집을 구할 수 있다.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건 사명이라고 밖에 대답 못할 것 같습니다. 보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잭 돌런 기자비행 전투 소방 항공기 비행중 머리카락 상업 항공기

2024-09-04

[등불 아래서] 문을 활짝 열라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더위에 이상기후라는 말도 정상이 되어버리는 요즘이다. 올 봄은 왜 이리 춥냐고 집어넣은 겉옷을 꺼내던 날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에어컨이 없으면 여름이 도통 비켜주질 않는다. 사무실 주인은 여름이 아니라 에어컨이다.   그런데 문을 열고 가만히 숨을 고르며 늦은 오후에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반소매로 드러난 팔을 금방 싸늘하게 만드는 것이 에어컨이지만, 머리카락 사이까지 새로운 숨을 넣으며 지나가는 바닷바람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도시 속 빌딩에서야 힘들지만, 소박한 평상에서 맛보는 '함께 사는 여름'이다. 문을 닫은 바람과 문을 연 바람은 이렇게 다르다.   에어컨은 문을 닫아야 켤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바람은 문을 닫게 만든다. 그런데 에어컨이 세게 돌수록, 콧물도 나고 머리가 아프며 오한에 열까지 난다. 이럴 때 전문가들이 항상 말한다. "문을 열라".   교회는 열심이 필요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헌신을 드린다. 우리의 헌신이 없으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못하실 것처럼 그렇게 열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다 우리도 모르게 문을 닫는다. 은혜를 그렇게 바라면서 우리가 만든 바람만 찾는다. 감동과 눈물, 강한 믿음과 헌신, 봉사와 여러 행사를 구하고 좇다가 오한이 나고 숨이 가쁘고 메말라가고 머리가 아프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밖에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고, 내 열매가 무엇인지 헛갈린다면, 의심해 보라. 문이 닫혀있지 않는지.   주님을 밖에 세워놓고 문을 닫은 채 부리는 열심은, 나 자신을 땔감으로 삼아 태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자라면 누가 예수님을 부르지 않으며, 하나님을 찾지 않겠는가. 그러나 막상 그 주님은 우리의 주가 아니다. 내 감동, 내 섬김, 내 열심, 내 평안이 내 주인이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은혜조차도 받는 내가 주인이다.   그러나 회개 없는 은혜는 신발을 신은 채로 가려운 곳을 긁는 것이다. 주님이 없는 열심은 문을 닫아 놓고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의외로 문은 열지 않은 채 에어컨이 싫다고 꺼버리는 이들도 있다. 에어컨 바람에 열광하다가 냉방병으로 고생하는 이나 그건 아니라면서 목마름도 모르고 고생하는 이나 문을 닫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은혜는 원하나 회개하지 않고, 겸손은 원하지만 낮아지지 않고, 사랑은 원하지만 자신의 손은 내밀지 않는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에어컨 바람 헌신 봉사 머리카락 사이

2024-07-08

[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의 머리카락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살아있을 때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했다. 청력 상실과 더불어 만성복통과 소화불량, 우울증에 시달렸다. 툭하면 화를 내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절망에 빠진 베토벤은 한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그가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 앞으로 쓴 유서에는 이런 절망감이 잘 나타나 있다.   “오! 너희들은 내가 적대적이고 고집이 세고 차갑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하고 다니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느냐? 너희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게 된 이유를 모를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절망적인 병에 시달려 왔다. 이제는 병이 낫는 것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보다 정열과 활기에 찬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을 피해 고독하게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베토벤을 절망에 빠뜨렸던 병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선천적으로 이상한 성격을 타고 난 것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1999년, 미국 시카고의 한 연구소가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정상인의 100배에 해당하는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베토벤이 만성복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음악가로서 필수적인 감각인 청력까지 잃은 것이 어쩌면 납 중독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자기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평생 고통에 시달렸을 베토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유서를 썼을까. 그게 납 중독 때문이었다니 그의 일대기를 읽으며 이해되지 않았던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된다.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다 나오는 시대이니 가능한 일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머리카락 베토벤 작곡가 베토벤 소화불량 우울증 감각인 청력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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