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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원한 사랑은 짧다

찬란한 순간은 무너져도 다시 돌아온다. 사랑은 기억의 강가에 작은 별로 반짝인다. 은하수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날개 부러진 새들처럼 추억은 허공에서 퍼득인다. 참 많은 것들이 떠나갔다. 피흘리며 투쟁하던 젊음, 사랑, 청춘, 욕망, 이별, 절망들이 세월따라 흘러가도 남은 소중한 것들 위해 옷깃을 여민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사랑의 흔적은 화석이나 작은 뼈마디로 남는다.   1879년 에스파냐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후기의 벽화는 동굴 벽화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벽면의 오목하고 볼록한 부분에 빨강과 검정의 농담(濃淡)으로 입체감을 내고 점묘법을 사용해 27마리의 들소 떼가 사슴, 말 등과 함께 채색돼 있다. 사냥감이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크로마뇽인들의 주술적 행위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담아 원시와 현대를 괸통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나우스 왕은 신탁에서 사위들이 자신을 죽일 거라는 예언을 듣고 50명의 딸들에게 첫날 밤이 지나면 남편을 죽이라고 명한다. 다른 딸들은 모두 남편을 죽였는데 다나이드만 불복해서 그 죄로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퍼 나르는 형벌을 받는다.   1885년 오귀스트 로댕은 ‘지옥의 문’을 구상하면서 로댕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게 여체를 표현한 ‘다나이드(Danaid)’를 조각한다. 슬픔과 절망, 파도 속에서 쓸려 내리는 듯한 실크 같은 머리결, 관능적인 여인의 등 곡선은 고통 속에서 섬짓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였던 카미유 클로델이 다나이드의 모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로댕은 ‘옷을 벗은 여성, 그 얼마나 위대한가! 마치 구름을 뚫고 빛을 비추는 해와 같다. … 모든 모델 안에는 자연이 그대로 존재한다.’라며 모델의 아름다움을 격찬한다.   클로델은 19살에 로댕을 만나 24살 나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다. 조각가로 솜씨가 뛰어났는데 대리석을 유리처럼 매끄럽게 조각한 기교를 보면 다나이드를 클로델이 직접 조각했다는 주장도 있다. 로댕은 그녀의 탁월한 재능에 감탄했지만 클로델이 살롱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견제하기 시작한다.   예술적 경쟁자와 연인, 로댕의 뮤즈이자 조수이고 모델이였던 클로델은 대등한 한 사람의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로댕을 사랑한 죄로 비운의 삶을 산다.   로댕이 조각가로서 대성공을 거두는데 비해 카르델은 16년을 연인이자 예술의 동반자였던 로댕과 결별 후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궁핍한 삶과 절망 속에 허덕인다. 빌에브라르 정신 병원에 수용돼 30년 동안 바깥 출입을 금지 당하는 유폐 생활을 하다가 무연고자로 공동 매장 된다. 불행하지만 당당하게 삶을 살아간 카르텔은 ‘창조와 파괴의 여신’으로 현대 미술계에 재조명된다.   사랑은 독약에 꿀을 바른다. 미치거나 꼭지가 돌면 눈먼 사랑의 유혹에 빠진다. 예술은 불변해도 인간은 변한다. 사랑은 휘파람 소리나 작은 돌팔매질에도 부서지고 깨진다. 사랑은 작은 비누방울을 공중에 부는 일이다. 햇볕 속에서 오색 무지개로 떠오르지만 추락하면 사라진다. 사랑은 환상이다. 깨어나도 흔적은 남는다. 비바람 몰아치는 상처도 동굴의 벽화나 화석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사랑은 짧고 예술은 길다. 사랑이 한 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그 짧은 기억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원 사랑 젊음 사랑 연인 로댕 오귀스트 로댕

2024-09-0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생각하는 사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작품을 독립 개별 작품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태리 피렌체의 성당 입구에는 4개의 문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옥의 문이다. 그 지옥의 문 제작을 의뢰 받은 로댕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스토리를 읽고 또 읽으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스케치를 수없이 그린 후 마침내 200여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킨 지옥문이라는 대작품을 남기게 된다. 지옥의 문 위에서 비참한 상황을 응시하는 ‘시인(Le Porte)’으로 묘사된 이 조각품은 로댕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 후에 이 작은 조각품을 청동조각용 찰흙으로 모형을 만들고 석고로 틀을 짜고 청동을 부어 만든 더 큰 크기의 주물 작품이 ‘생각하는 사람’이란 타이틀로 파리 로댕 미술관에 전시되게 되었다.     일반적 디테일보다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에 몰입해 있는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은 그 후 여러 개의 모형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독립작품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지옥의 문에 조각돼 있는, 고통과 절규 삶의 비참한 최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전체 작품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지옥의 문 위에서 턱을 괴고 아래 벌어지고 있는 지옥의 모습을 바라보는 조각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 철학의 대가 노자는 그의 저서 ‘도덕경’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為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 등의 방식으로 간단하게 설명한다. 예컨대, 낳아 주지만 소유하지 않고, 남에게 공덕을 베풀지만 거기에 기대지 않고, 으뜸이 되어도 통치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생각 없이 살다가도 꼭 죄 짓는 것 같고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을 고쳐먹는 오후 창틀에 눈이 쌓인다   잊을 만하면 오고 또 잊을 만하면 오고 눈이 와야 어울리는 한겨울 눈길 발자국 다람쥐, 토끼 발자국   풍경 담는 창틀 일생도 그런대로 무탈한 내 인생도 먹이 찿아 헤메는 저 삶도 낡아가긴 매 한가지 뿌옇게 보이지 않다가도 쨍 햇볕 들어 반갑고 낙엽 떨어져 쓸쓸해도 매달린 붉은 열매처럼 내 안에 송송 맺히는 생각   사각 창틀에 겨울이 찿아오듯 쌓이는 생각 받아 적다 보면 그 재미가 밤 까먹둣 해   생각을 낳는 밤 깊어가고 땅이 얼고 물이 어는데 봄은 먼 이야기, 멀기만 하고     산책 중 늘 지나치게 되는 호수. 그 호수 쪽으로 가려면 지나쳐야 하는 집이 있다. 가끔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시거나 책을 읽고 계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된다. 작은 체구에 연세가 80은 족히 넘으신 듯 보인다. “Hi!“ 인사를 건네는 내게 주름진 고운 얼굴을 들고 긴 손가락의 오른손을 들어 ”Hellow”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그녀를 지나쳐 걸으며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이 찡하고 아려온다. 무슨 생각을 하실까?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이 길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손을 흔들어준다. 호수를 돌아 오는 길에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의자 옆 작은 테이블에 읽다 덮어논 책 한 권과 커피잔이 노인의 깊은 사색우로 남아 호수 위 빛나는 윤설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노크하고, 허락 맞고 자기 방에 들어오라는 6살짜리 벤자민. 그 녀석도 무슨 생각이 있어 한 말이겠지. 생각할 나이가 시작 됐으니까. 창밖으로 꽃가루 뿌리듯 생각이 뿌려지고 이 시간에도 끊이지 않는 생각으로 수 없는 생각의 꽃들이, 열매들이 붉게 익어 가겠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깊은 고뇌처럼… 노인의 창가에도, 벤자민의 문 안쪽 작은 고요 속에서도.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신곡 지옥편의 파리 로댕 청동조각용 찰흙

2022-01-24

[삶의 뜨락에서] 가을 로댕, 생각하는 사람

성당을 찾아 나선 시골길은 적막으로 가득한데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노랑, 연두, 초록, 빨강. 수채화 물감을 확 풀어놓은 듯한 색의 절정! 가을이다. 저 많은 나뭇잎이 다 떨어져 마지막 잎사귀까지 흙으로 돌아가 파릇한 새순으로 다시 피어나는 순환을 생각하는 순간, 우연처럼 차는 작은 비석이 즐비한 마을 묘지를 돌아가고 있다.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가톨릭 교회에서 정한 위령의 성월이다. 죽음을 생각하니 번개가 스치듯 뇌리에 떠오르는 책, 두 권 ‘티베트 사자의 서’ 와 ‘단테의 신곡’이 떠오른다. 삼삼히 퍼져오는 나무 향처럼 자분자분 떠오르는 생각을 가슴에 안고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성당, 그날의 미사는 돌아가신 분들을 향한 기도로 그리움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온 오후,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생각하는 나의 버릇은 위령의 성월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존재의 고뇌로 이어지고, 상념은 탄생과 죽음으로 다시 이어지고 죽음은 말벌, 독충, 뱀에 물려 고통과 두려움에 신음하며 아케론 강(삼도천)을 건너는 죄인들이 연상되는 단테의 지옥 편이 떠오르며 머리가 쭈뼛! 나도 모르게 등을 곧게 자세를 바로 고쳐 앉는다.     이렇듯 상상의 애매한 매혹은 그동안 읽어온 책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관람해온 작품 감상이 골격이 되어 극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삶과 예술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미지의 황홀이며 뛰어난 예술가는 신이 내린 은총이다. 단테의 신곡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작품으로 이어진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1880년 프랑스 파리의 한 박물관 입구에 세워야 할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조각해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로댕은 단테가 지옥을 순례한 기억을 철학적인 질문과 영감, 광기의 번뜩이는 천재적 재능과 고뇌로 탄생시킨 작품이다. 지옥문 입구 위쪽에 앉아 발밑 아수라장에 펼쳐지는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주름진 이마, 벌렁거리는 콧구멍, 굳게 다문 입술, 그 근육, 등과 다리, 꽉 쥔 주먹과 오그린 발가락 작가의 말대로 모든 것을 통해서 생각한다고 하는 그 조각상.     몇 년 전 딸과 함께 박물관에 가서 그 조각상을 바라보며 소름 끼치는 경이로움에 전율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높이 186cm의 거대한 조각상이 완성되기에는 많은 손길이 필요했는데 제자이며 연인이며 모델이기도 하며 작품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했던 타고난 천재적인 여성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것일까. 둘은 서로의 아티스트 뮤즈가 되어 꿈과 열정과 야망과 광기의 애증을 불태웠으나 결국 시대적, 가정적, 피해자가 되어 정신적 파멸로 끝나는 비운의 여인, 브루노 누이땅 감독의 영화 ‘까미유 클로델’까지 보고 나니 어둠이 내린 창에 새벽이 환하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라고 말하던 키팅 선생님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 삶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만의 영화 같은 소설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응축된 한 편의 시가 되고 싶은 건가, 11월 위령성월의 상념은 번지어 이 가을! 팔을 턱에 고인 채로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새벽별을 바라본다.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가을 로댕 오후 생각 지옥문 입구 조각가 오귀스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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