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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가을 로댕, 생각하는 사람

성당을 찾아 나선 시골길은 적막으로 가득한데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노랑, 연두, 초록, 빨강. 수채화 물감을 확 풀어놓은 듯한 색의 절정! 가을이다. 저 많은 나뭇잎이 다 떨어져 마지막 잎사귀까지 흙으로 돌아가 파릇한 새순으로 다시 피어나는 순환을 생각하는 순간, 우연처럼 차는 작은 비석이 즐비한 마을 묘지를 돌아가고 있다.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가톨릭 교회에서 정한 위령의 성월이다. 죽음을 생각하니 번개가 스치듯 뇌리에 떠오르는 책, 두 권 ‘티베트 사자의 서’ 와 ‘단테의 신곡’이 떠오른다. 삼삼히 퍼져오는 나무 향처럼 자분자분 떠오르는 생각을 가슴에 안고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성당, 그날의 미사는 돌아가신 분들을 향한 기도로 그리움이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온 오후,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생각하는 나의 버릇은 위령의 성월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존재의 고뇌로 이어지고, 상념은 탄생과 죽음으로 다시 이어지고 죽음은 말벌, 독충, 뱀에 물려 고통과 두려움에 신음하며 아케론 강(삼도천)을 건너는 죄인들이 연상되는 단테의 지옥 편이 떠오르며 머리가 쭈뼛! 나도 모르게 등을 곧게 자세를 바로 고쳐 앉는다.  
 
이렇듯 상상의 애매한 매혹은 그동안 읽어온 책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관람해온 작품 감상이 골격이 되어 극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삶과 예술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미지의 황홀이며 뛰어난 예술가는 신이 내린 은총이다. 단테의 신곡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작품으로 이어진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1880년 프랑스 파리의 한 박물관 입구에 세워야 할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조각해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로댕은 단테가 지옥을 순례한 기억을 철학적인 질문과 영감, 광기의 번뜩이는 천재적 재능과 고뇌로 탄생시킨 작품이다. 지옥문 입구 위쪽에 앉아 발밑 아수라장에 펼쳐지는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주름진 이마, 벌렁거리는 콧구멍, 굳게 다문 입술, 그 근육, 등과 다리, 꽉 쥔 주먹과 오그린 발가락 작가의 말대로 모든 것을 통해서 생각한다고 하는 그 조각상.  
 
몇 년 전 딸과 함께 박물관에 가서 그 조각상을 바라보며 소름 끼치는 경이로움에 전율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높이 186cm의 거대한 조각상이 완성되기에는 많은 손길이 필요했는데 제자이며 연인이며 모델이기도 하며 작품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했던 타고난 천재적인 여성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것일까. 둘은 서로의 아티스트 뮤즈가 되어 꿈과 열정과 야망과 광기의 애증을 불태웠으나 결국 시대적, 가정적, 피해자가 되어 정신적 파멸로 끝나는 비운의 여인, 브루노 누이땅 감독의 영화 ‘까미유 클로델’까지 보고 나니 어둠이 내린 창에 새벽이 환하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라고 말하던 키팅 선생님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 삶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만의 영화 같은 소설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응축된 한 편의 시가 되고 싶은 건가, 11월 위령성월의 상념은 번지어 이 가을! 팔을 턱에 고인 채로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새벽별을 바라본다.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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