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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고리] 삶의 뜨락에서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애들이 키가 부쩍 커지면서부터 유별난 질문을 하거나 전에 없던 엉뚱한 요청을 해 오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은 자기도 다른 친구들처럼 귀에 예쁜 귀고리를 하고 다니고 싶다며 부디 엄마가 자기 귀에 구멍을 뚫는 것(pears ear)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때 우리 부부는 한참 이일로 인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공연히 성한 몸에다 손을 대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딸은 민감한 사춘기 시기였기에  혹시 이 일로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할까 하는 생각에 그리하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아들이 요즈음 유행은 남자들도 귀고리를 한다며 자기도 누나처럼 귀에 구멍을 뚫겠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다 큰 사내아이가 귀에다 보석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이건 우리가 그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 큰 두통거리로 다가온 것이다.   여자에게는 예쁜 얼굴 모습이, 그리고 남자에게 어깨와 팔에 탄탄한 근육이 매력의 초점이라면 남자가 귀에다 보석장식을 하고 다니는 것은 도대체 이 둘 중에 어디에 속한단 말인지,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이 모두가 경우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경우에 알맞게 살아야 하는 게 바른길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그런 설명을 덧붙여 가며 단호히 너의 귀고리는 안된다고 거절했다. 더는 떼를 쓰지 않기에 우리는 항상 착한 우리 아들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 당시 내 소아 진료소에 찾아오는 환자의 반수 이상이 남미, 주로 멕시코계 아이들이었다. 남미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약 1개월이 지나면 거의 모두가 집에서 그 작은 아기 귓밥에 바늘로 구멍을 만들고 작은 금장식을 달아주는 풍습이 있다. 가끔 아기 부모가 내 병원으로 찾아와서 그걸 나에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나는 그것만은 사양했다. 내 마음속에는 ‘우리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고전 6:19)’이라는 성경 말씀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지 않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에게 첫해에 놔주어야 하는 예방주사가 자그마치 6~7개가 되는데 그 주사를 놔줄 때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 울음소리를 아기 엄마와 함께 나도 가슴으로 삼켜야 하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에게 다른 어떤 아픔도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방학에도 아들은 야구 캠프에 다녀왔다. 약 3주간의 캠프 생활 동안 얼굴은 검게 그을리고 다리도 길어지고 키도 훌쩍 커진 것 같았다. 누렇게 햇볕에 탄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그의 귀에 부착된 금속 귀고리를 보게 되었다. 너도 기어이 귀에 구멍을 냈구나! 얼마 동안 나는 몰려오는 실망과 배신감을 참으며 할 말을 잃고 서 있는데 아들은 웃는 표정으로 “엄마 나 내 귀 안 뚫었어요. 이거 봐 이건 앞뒤가 자석이지 않아?” 부모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아들의 예쁜 마음을 나는 그날 밤 하나님께 한껏 감사드렸다. 황진수 / 수필가귀고리 뜨락 아기 엄마 아기 부모 아기 울음소리

2022-11-25

[오피니언] 삶의 뜨락에서 양주희

사람의 레이블       삶의 뜨락에서       양주희 수필가       지난해 추수감사절을 보낸 직후 주문 판매를 하시는 분이 스카프 500장이 약간 넘는 박스를 들고 오셨다. 스카프 하나하나에 레이블을 붙여 달라는 주문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그 많은 일을 가게도 바쁜 시기에 가져오시다니. 그분은 내가 2~3일 사이에 일을 마쳐 주어야 자기가 주문받은 손님에게 팔수 있는 여건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할 사람을 찾았으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게 옷을 다른 곳에 내보내고 그 스카프를 내가 하기로 했다. 그분도 이때 팔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되니 나보다 그분의 사업이 걱정되었다. 코로나19로 모든 비즈니스가 땅바닥을 내려친 마당에 조금이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원단이 실크라서 촉감이 부드럽고 반질반질하며 색깔 또한 아름다웠다. 질감을 만지면서 보드라움이 내 손가락을 간지럽혔다. 조그마한 검은색 레이블을 스카프 한쪽 모서리에 부치는 작업이다. 완전히 공장에서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 같이 손을 놀려야 했다. 눈이 침침해서 보이지 않아 손가락을 바늘이 찌르기도 했다. 이런 단순한 일이지만 스카프는 이 레이블이 없으면 상품으로 가치가 없었다. 100% pure silk, dry clean only, made in usa. 우리가 많이 보는 옷마다 부쳐져 있는 레이블. 이 조그마한 딱지도 상품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가게에서 옷을 세탁하기 전 드라이 크리링을 해야 할지 물세탁을 해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꼭 옷에 부착된 레이블을 확인한다. 그 레이블에는 섬유 종류와 세탁방법 손질하는 법까지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면 종류는 물세탁이 깨끗하게 빨아진다. 어쩌다 레이블을 잘못 읽거나 옷에 감촉을 감지하여 드라이 크리링해야 하는 옷을 물세탁 하여 망치는 일이 있다. 폴리에스터가 요즈음 가죽같이부드럽고 보기에도 가죽으로 보인다. 가죽 코트를 폴리에스터로 착각하여 물빨래했다. 세탁기에서 꺼내는 순간 확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행거에 걸어 말렸는데 딱딱하고 도저히 입을 수가 없는 옷이 되어버렸다.    손님이 코트를 찾으러 올 날짜가 되었다. 어떻게 손님을 대할까 옷 가격은 얼마나 비쌀까 손님이 화를 내고 소리치면 난 무어라 대답할까 그리고 협상은 이루어질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온종일 내 머리를 맴돈다. 아니야, 이것은 완전 내 실수니까 손님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돼. 이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두렵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손님에게 설명했다. 가죽 세탁 공장에 보내면 세탁비도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번거로워 여기서 세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내가 배상을 하겠다고 했다. 뜻밖에 손님은 코트를 오래 입었는데 세탁해서 누구를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 누구는 생활이 어려워서 코트를 사 입을 수 없었는데 이 코트를 보면 입고 싶어 했다고 한다. 손님이 코트를 살 수 있는 값을 요구했는데 아마도 그 돈으로는 사기 어려울 것 같았다. 냉큼 나도 네가 요구한 돈만큼 보태겠다고 했더니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사람도 각자 가지고 있는 인성과 품성에 맞는 레이블이 있다. 누구나 보면 알아차리는 그것 말이다. 이 손님처럼 내뿜는 따스하고 인자하고 없는 사람과 나누며 함께하는 레이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오피니언 양주희 뜨락 검은색 레이블 양주희 수필가 가죽 코트

2022-02-02

[삶의 뜨락에서] 추억은 아름답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서울 경복궁 향원정(香遠亭)이 복원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붉은 단풍 속에 서있는 향원정은 고고한 여인의 자태처럼 아름답다. 오랜 지기(知己)를 만난 듯 반가웠다.      고종 때 세운 것으로 알려진 향원정은 사각형 향원지 안에 지은 육각 이층 정자로 왕과 왕비의 휴식처였다. 향기가 멀리 퍼진다는 뜻의 향원(香遠)과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醉香)이라는 멋스러운 이름처럼 북악의 백악산과 정자의 그림자가 물 위에 어우러지는 이곳의 풍취는 다소곳한 조선의 미인을 보는 듯하다. 향원정의 아름다움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경회루와 곧잘 비견되곤 한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새로운 향원정 사진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달랐다. 6·25 전쟁 때 부서졌다가 1953년 원래 자리와 반대인 향원정 남쪽에 건설된 취향교(醉香橋)는 분명 이번 공사에서 원래 자리인 북쪽에 제대로 복원됐다고 하는데 도무지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보이지 않는다. 쭉 뻗은 교각 여섯 개, 마치 철로 만든 것 같은 질감의 하얀색 아치형 나무다리는 20세기에 건설된 것이라고 해도 믿겨질 만큼 현대적이다. 근대 런던이나 피리의 건축물 같은 모양으로 주위의 고색창연한  분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생경해 보이는, 얼핏 보면 고증이고 뭐고 대충 현대식으로 만든 것 같은 이 다리가 철저히 고증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어리둥절해진다. 1901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촬영한 사진, 1903년 미국 장교 그레이브스가 촬영한 사진에 모두 이 ‘하얀색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이 같은 옛 사진에 대한 3D모델링을 거쳐 크기와 모양을 복원한 것이라고 하니 그냥 믿을 수밖에.    여기서 우리는 향원정이란 건물이 철저히 근대의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향원정 다리가 북쪽으로 난 것은 그곳에 건청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이 다 끝난 1873년 고종 임금이 기존의 궁궐 구조를 무시하고 경복궁 가장 깊숙한 곳에 따로 만든 ‘궁궐 속의 궁궐’이었다.   건청궁 건립이 부친 흥선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흔히 해석하지만, 군왕이 법궁을 버리고 구석에 숨었다는 것은 오히려 대원군을 포함한 다른 정치세력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건청궁은 단청이 전혀 없어 마치 궁 밖 양반 가옥 같은데, 이것은 열두 살 때까지 민간에서 살았던 고종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됐을 것이다. 훗날 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비극적 사건 을미사변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건청궁은 우리나라 전기사(電氣史)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다. 그러니까 향원정을 지은 지 2년 뒤인 1887년 3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청궁 안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장안당 곤녕합의 대청과 앞뜰, 궁의 담 밖, 향원정 주변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전깃불을 밝히게 된다. 너무나 신기한 전깃불을 향원지에서 끌어올린 물을 이용했다고 해서 물불, 자주 꺼져 제구실도 못하고 돈만 쓰는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전기란 것이 만들어낸 불이 하도 신기해서 묘화(妙火) 등의 이름을 얻었지만, 한 달 남짓 단명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것을 ‘고종의 근대화 의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주문을 받은 에디슨은 “신난다. 동양의 신비한 왕궁에 내가 발명한 백열등이 켜지다니 꿈만 같다.”라고 일기에 썼다고 한다. 국내 첫 전력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된 것은 1898년의 일이었다. 고종이 미국인 콜브란의 조언을 듣고 만든 이 회사는 동대문발전소에 발전설비를 만들고 전력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가로등 3개를 설치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민간에 켜진 최초의 전깃불이었기에 1966년 이 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했다.    경복궁 향원정이 지어진 지 25년 뒤, 건청궁에 전등이 들어온 지 23년 뒤, 그리고 종로에 민간 최초의 가로등이 세워진 지 10년 뒤에, ‘조선왕조의 불빛’은 영영 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복궁의 향원정은 그 쓸쓸한 ‘조선왕조  말기의 꿈’이 깃든 유산인 셈이다.   향원정은 우리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다. 30여년 전이었던 것 같다. 햇살이 따뜻한 어느 봄날 점심시간에 우리 부부는 내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 부근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경복궁으로 산책을 갔다. 고요한 고궁을 거닐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겼다. 산책로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구중심처 향원정에 닿았다.    여기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미국 이민 올 때 갖고 왔고, 지금도 거실에 걸려 있는데 가끔 들여다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곤 한다. 그때 50대였던 나는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부부는 해묵은 골동품 같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를 아는가? 나이 든다는 것은 고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골동품이 되는 것’이라고…. 고물은 버릴 때에도 값을 치러야 하지만, 골동품은 세월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는 기특한 관념으로 다시 일어선다.    옛 사진을 다시 본다. 입가의 엷은 미소가 새색시처럼 어여쁘다. 한평생을 동고동락해온 소중한 반려자…“여보, 사랑해요!”   추억은 아름답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억의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향원정은 우리 부부에게 알사탕 같은 그리움이다. 그날의 감흥을 적어두었던 졸시‘고궁에서’를 읊으며 행복했던  그날의 데이트를  떠올려본다.     한낮의 고궁은 고요가 흐르고/ 따사로운 햇살이 조는 듯 한가롭다// 북악의 나무 등걸/ 이끼 긴 숨결이/ 아련히 들릴 듯도 하지만/ 근정전 만조백관 보이지 않고/ 구중심처 향원정엔/ 비빈궁녀 간 곳 없구나.   아아, 바람이여 세월이여/ 오백년 사직의 영화는/ 어디 가고// 오늘은 개나리 앞에 선/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고궁은 아련한 노스탤지어/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 할 수 없어/ 먼데 하늘을 바라본다.      뜨락 추억 경복궁 향원정 향원정 다리 반대인 향원정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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