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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추억은 아름답다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

얼마 전, 신문에서 서울 경복궁 향원정(香遠亭)이 복원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붉은 단풍 속에 서있는 향원정은 고고한 여인의 자태처럼 아름답다. 오랜 지기(知己)를 만난 듯 반가웠다.   
 
고종 때 세운 것으로 알려진 향원정은 사각형 향원지 안에 지은 육각 이층 정자로 왕과 왕비의 휴식처였다. 향기가 멀리 퍼진다는 뜻의 향원(香遠)과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醉香)이라는 멋스러운 이름처럼 북악의 백악산과 정자의 그림자가 물 위에 어우러지는 이곳의 풍취는 다소곳한 조선의 미인을 보는 듯하다. 향원정의 아름다움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경회루와 곧잘 비견되곤 한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새로운 향원정 사진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달랐다. 6·25 전쟁 때 부서졌다가 1953년 원래 자리와 반대인 향원정 남쪽에 건설된 취향교(醉香橋)는 분명 이번 공사에서 원래 자리인 북쪽에 제대로 복원됐다고 하는데 도무지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보이지 않는다. 쭉 뻗은 교각 여섯 개, 마치 철로 만든 것 같은 질감의 하얀색 아치형 나무다리는 20세기에 건설된 것이라고 해도 믿겨질 만큼 현대적이다. 근대 런던이나 피리의 건축물 같은 모양으로 주위의 고색창연한  분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생경해 보이는, 얼핏 보면 고증이고 뭐고 대충 현대식으로 만든 것 같은 이 다리가 철저히 고증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어리둥절해진다. 1901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촬영한 사진, 1903년 미국 장교 그레이브스가 촬영한 사진에 모두 이 ‘하얀색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이 같은 옛 사진에 대한 3D모델링을 거쳐 크기와 모양을 복원한 것이라고 하니 그냥 믿을 수밖에. 
 
여기서 우리는 향원정이란 건물이 철저히 근대의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향원정 다리가 북쪽으로 난 것은 그곳에 건청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이 다 끝난 1873년 고종 임금이 기존의 궁궐 구조를 무시하고 경복궁 가장 깊숙한 곳에 따로 만든 ‘궁궐 속의 궁궐’이었다.
 
건청궁 건립이 부친 흥선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흔히 해석하지만, 군왕이 법궁을 버리고 구석에 숨었다는 것은 오히려 대원군을 포함한 다른 정치세력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건청궁은 단청이 전혀 없어 마치 궁 밖 양반 가옥 같은데, 이것은 열두 살 때까지 민간에서 살았던 고종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됐을 것이다. 훗날 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비극적 사건 을미사변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건청궁은 우리나라 전기사(電氣史)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다. 그러니까 향원정을 지은 지 2년 뒤인 1887년 3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청궁 안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장안당 곤녕합의 대청과 앞뜰, 궁의 담 밖, 향원정 주변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전깃불을 밝히게 된다. 너무나 신기한 전깃불을 향원지에서 끌어올린 물을 이용했다고 해서 물불, 자주 꺼져 제구실도 못하고 돈만 쓰는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전기란 것이 만들어낸 불이 하도 신기해서 묘화(妙火) 등의 이름을 얻었지만, 한 달 남짓 단명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것을 ‘고종의 근대화 의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주문을 받은 에디슨은 “신난다. 동양의 신비한 왕궁에 내가 발명한 백열등이 켜지다니 꿈만 같다.”라고 일기에 썼다고 한다. 국내 첫 전력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된 것은 1898년의 일이었다. 고종이 미국인 콜브란의 조언을 듣고 만든 이 회사는 동대문발전소에 발전설비를 만들고 전력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가로등 3개를 설치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민간에 켜진 최초의 전깃불이었기에 1966년 이 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했다. 
 
경복궁 향원정이 지어진 지 25년 뒤, 건청궁에 전등이 들어온 지 23년 뒤, 그리고 종로에 민간 최초의 가로등이 세워진 지 10년 뒤에, ‘조선왕조의 불빛’은 영영 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복궁의 향원정은 그 쓸쓸한 ‘조선왕조  말기의 꿈’이 깃든 유산인 셈이다.
 
향원정은 우리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다. 30여년 전이었던 것 같다. 햇살이 따뜻한 어느 봄날 점심시간에 우리 부부는 내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 부근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경복궁으로 산책을 갔다. 고요한 고궁을 거닐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겼다. 산책로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구중심처 향원정에 닿았다. 
 
여기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미국 이민 올 때 갖고 왔고, 지금도 거실에 걸려 있는데 가끔 들여다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곤 한다. 그때 50대였던 나는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부부는 해묵은 골동품 같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를 아는가? 나이 든다는 것은 고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골동품이 되는 것’이라고…. 고물은 버릴 때에도 값을 치러야 하지만, 골동품은 세월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는 기특한 관념으로 다시 일어선다. 
 
옛 사진을 다시 본다. 입가의 엷은 미소가 새색시처럼 어여쁘다. 한평생을 동고동락해온 소중한 반려자…“여보, 사랑해요!”
 
추억은 아름답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억의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향원정은 우리 부부에게 알사탕 같은 그리움이다. 그날의 감흥을 적어두었던 졸시‘고궁에서’를 읊으며 행복했던  그날의 데이트를  떠올려본다.  
 
한낮의 고궁은 고요가 흐르고/ 따사로운 햇살이 조는 듯 한가롭다// 북악의 나무 등걸/ 이끼 긴 숨결이/ 아련히 들릴 듯도 하지만/ 근정전 만조백관 보이지 않고/ 구중심처 향원정엔/ 비빈궁녀 간 곳 없구나.
 
아아, 바람이여 세월이여/ 오백년 사직의 영화는/ 어디 가고// 오늘은 개나리 앞에 선/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고궁은 아련한 노스탤지어/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 할 수 없어/ 먼데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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