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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고공행진에 시니어 한인도 ‘동거’

#. 시니어하우스를 전전하던 플러싱의 나모(86)씨는 피 안 섞인 동거인과 각 500달러씩, 한 달 1000달러를 렌트로 내고 있다. 렌트 인상을 시도하는 중국계 랜드로드에 항의할 때와 몸이 아플 때 든든한 존재다.   렌트 고공행진에 한인 시니어들도 셰어하우스에 거주하는 일이 늘고 있는 가운데, 퇴거나 렌트 인상 협박을 받는 일도 빈발해 주의가 필요하다. 주거 위기로 도움이 필요한 시니어는 뉴욕주 아동가정서비스국(OCFS) 웹사이트(ocfs.ny.gov)를 통해 성인 서비스(Adult Services)를 통하면 된다. 영어 구사가 어려울 경우 한인 비영리단체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뉴욕시는 ‘렌트 동결 프로그램(Senior Citizen Rent Increase Exemption, SCRIE)’에 따라 62세 이상 시니어에게 최대 20년간 무리한 렌트 인상을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인지한 시니어는 드물다.   나씨가 퀸즈 플러싱 반지하로 이사한 지난 5월 1일, 각별히 챙긴 건 계약서다. 랜드로드 이름이 적힌 서명을 받아야 퇴거당할 때 억울한 일이 없을 거란 조언을 받고 챙겼다. 10여년 전, 조지아주에서 자신을 초청해준 큰 딸이 죽고, 나씨는 대중교통이 편해 시니어들이 차 없이도 이동하기 편하다는 뉴욕주로 짐가방 두 개를 들고 이주했다. 그 때부터 시니어 셰어하우스를 전전했다. 이전 집에선 1층에서 네 명이 지내며 쾌적하게 살았다. 월세 900달러도 나눠 내고, 전립선암에 고통받는 친구도 도왔다.   세입자가 자꾸만 늘더니 14명이 됐고, 이내 뉴욕시 빌딩국(DOB)의 기습 단속이 있었다. 너무 많은 인원이 오간다며 근처 누군가 신고한 탓이다. 이후 시니어들은 무더기 퇴거해야 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법을 모르는 나씨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같은 스트리트의 집으로 옮겼지만, 반지하임에도 월세 1000달러를 내야 했다. 이전 집에서 친해진 최모(85)씨와 이번엔 한 집이 아닌 한 방에서 동거를 하기로 한 건 그 때문이다. 침대 한 칸이 옷걸이로 어정쩡하게 나눈 방에서 나씨가 차지하는 공간이다. 옆 침대 최씨가 지원금을 받는 덕분에 생활비는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다. 두 사람이 나라에서 받는 돈은 한 달 1300달러. 두 사람은 이 돈으로 월세를 낸다.   롱아일랜드시티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최씨는 은퇴 후 딸에게 아파트를 물려주고, 자신은 시니어 셰어하우스서 나와 지낸다. 한국서 받는 지원금은 쓸 수 없다. 뉴욕시에서 소득으로 잡히면 여러 혜택을 잃을까 겁이 나서다. 딸은 아파트를 준 아버지가 고마워 초기 수개월은 월세를 보냈지만, 그마저도 끊겼다. 손주가 장성해 사립대를 갔지만, 빈 아파트에 들어가기도 눈치가 보인다. 1층에 거주하는, 익명을 요구한 80대 시니어 J씨는 네 명이 함께 거주하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돌아가며 요리하고 오전은 경로회관이나 친구들을 만나 보낸 후 오후는 자유롭게 노닌다. 월세는 넷이 나눠 내면 그만이다.   한편 교육 비영리단체 라이프타임 인컴 얼라이언스(Alliance for Lifetime Income)는 2027년까지 시니어가 410만명 늘어날 것이라며, 은퇴 자금 없이 일자리서 물러나는 이들이 늘어나면 2030년 대다수 시니어가 재정 절벽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뉴욕주 렌트가 팬데믹 이전 대비 33% 오른 점을 미뤄보아 앞으로도 고공행진은 이어질 것이라며, 무주택 시니어의 고충은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글·사진=강민혜 기자 kang.minhye@koreadailyny.com시니어 동거 시니어 동거

2024-09-17

[문장으로 읽는 책] 우에노 지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젊은 시절 나는 “오늘의 상식은 내일의 비상식!” “오늘의 비상식은 내일의 상식!”이라고 줄곧 말했다. 정말 그대로 되었다. 이제는 혼자서 죽는 일만 남았다. 혼자 사는 것은 ‘고립’이 아니고 혼자 죽어도 ‘고독사’가 아니다. 그래서 ‘재택사’라는 새로운 말도 만들었다.   우에노 지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증가, 초고령사회를 지나 죽음이 출생을 앞서는 ‘대량죽음’의 시대,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다. 국내에도 인기 높은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가 썼다.   혼자 살다 혼자 늙고 혼자 죽는 시대, 저자는 이를 ‘고독사’라는 이름의 사회병리 현상으로 규정하는 시선을 거부한다. 고독사를 두려워하기보다 살아 있을 때 고립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노후 삶의 질은 신뢰할 수 있는 친구 네트워크와 얼마나 자유롭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싱글 라이프에 대한 만족도가 노년일수록(특히 노인 여성일수록) 높다는 조사 결과도 소개한다.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다. 사실 고령자의 자살률은 예상과 달리 독거 고령자보다 동거 고령자 쪽이 더 높다.” ‘임종 입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자녀들에게도 부모가 살아있을 때, 들을 수 있을 때 충분히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상식을 깨는 도발적인 주장과 함께, 혼자 잘 죽기를 뒷받침하는 간병보험제도, 방문간호 등 돌봄 시스템의 문제도 꼼꼼히 고찰한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우에노 죽기 여성학자 우에노 동거 고령자 독거 고령자

2022-07-29

[수필] 49일간의 동거

“딸한테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참는 게 후회 할 일이   안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해졌다.”     조용하던 집이 꽉 찼다. 결혼한 딸이 20년 만에 가족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서 한 달을 머물 예정으로 이사를 왔다. 집이 여기저기 물이 새고 부서져 수리를 한단다. 코로나로 집 고치는 사람이 부족한 이때 한 달 만에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믿음이 안 갔다. 모처럼의 딸 식구랑 살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둘만 살다가 여섯 명이 되니 부엌에 수저통부터 바뀌었다. 열다섯과 열두 살의 손녀들은 젓가락보다는 포크가 편했다. 음식도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오렌지주스나 향기 좋은 커피가 그들의 조식이었다. 식빵을 아침마다 여덟 쪽을 먹으니 식빵 한 봉지가 이틀이면 없어졌다. 식빵 값이 이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다.       원래는 딸 식구가 다섯 명인데 큰 손자가 대학 기숙사에 있어서 그나마 네 명으로 줄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도 봄 방학이 되어서 늦게 합류하니 일곱 명의 식구가 한 집에서 1주일 복작대면서 살았다. 손자는 침대가 없어 소파에서 자야 했다. 1주일만 지내다 가서 “휴” 하고 한 숨 돌렸다. 화장실 청소는 하루에 한 번씩 꿇어 앉아서 손녀딸들의 머리카락을 줍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은 주어도 주어도 끝나질 않는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머리를 유지하려면 매일 샴푸하고 잘 빗어 내리고 이것저것 영양제를 뿌리고 해야 한다. 그들이 쓰는 화장실은 어느새 젊은이들의 소유물 장소로 바뀌었다. 샴푸와 린스만 있던 옛날의 내 화장실이 더 이상 아니었다.     빨래는 하루에 한 번씩 세탁기를 돌렸다. 커다란 목욕타월은 한 번 쓰고 나면 빨래 통으로 들어갔다. 마치 호텔에 와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요즘은 호텔도 코로나로 일주일 내내 타월을 바꾸어 주지 않던데. 지난번 호텔에 갔을 때 룸서비스가 없다고 프런트 데스크에 쓰여 있었다.     손녀들은 전기 불을 켜 놓고 이방 저방 다닌다. 일일이 지적도 못 하겠고 따라다니며 불 끄는 일도 지쳐서 포기했다. 어느 날은 새벽 한 시에 일어나보니 아이들 방과 복도가 대낮처럼 밝다. 딸한테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참는 게 후회 할 일이 안 생길 거라 마음먹으니 편해졌다.     나도 어릴 적 엄마가 전기 불 끄라고 소리 지르던 생각이 나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전기 사정이 나빴던 한국 60년대 나는 밤에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자기 일쑤였다. 지금은 반세기가 지났고 여긴 미국 아닌가. 어릴 적 습관은 여든 살 간다던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내일 모레면 여든이 가까운데 아직도 어제 일 같이 생생하게 불 아끼고 물 아끼던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 모임에서 딸과 살면서 느낀 얘기를 하니 모두 이구동성이다. 딸과 세대차이도 많은데 손녀들까지 합치면 입 다물고 참는 게 제일 약이라고 한다. 같이 살기로 한 마당에 뒷소리하면 힘들게 참아온 보람이 다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느 수필집에서 읽었던 말대로 가까이 살면서 상처의 골이 깊어 질까봐 제일 두려웠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모처럼 방학을 맞아 찾아온 손자가 아침 10시쯤 일어나서 식사를 챙겨주니 맛있게 먹고 앉아서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때는 지금이다 싶어 차고 문이 오래되어 삐거덕 하는 소리를 내니 차고문과 연결된 기계에 기름을 발라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손자는 고개만 끄덕거린다. 눈을 안 맞추고 대답하는 게 요즘 아이들의 특징이다. 1년 동안 남편한테 졸랐으나 기름만 사다 놓고 뿌릴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몇 분 후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자리에 있어야 할 손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아래층 화장실에서 나온다. “할머니 화장실 물 내리는 도구가 어디 있어요?” 한다. “그건 왜?” 물으니 자기가 변을 봤는데 변기가 넘쳐흘렀다고 했다. 지금 화장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었으니 오히려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한다. 큰 타월로 바닥을 닦고 법석을 떠는 동안 할아버지는 사닥다리를 놓고 차고 문에 기름을 다 칠했다. 그날 있었던 사건을 딸한테 얘기했다. 딸은 화장실 가는 걸 어떻게 늦출 수 있었겠느냐 하며 싫은 소리를 한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일하는 나의 꿈은 예상치 못한 화장실 사건으로 허망하게 끝났다.     그때부터 딸과 나는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법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딸과 사위는 저녁밥을 해 놓으면 늦게 올 때가 많아 그 식은 밥은 다음날 남편과 내 차지였다. 몇 주 지나고 나서 애들과 먹는 저녁은 아예 포기했다. 여고생과 여중생인 두 손녀는 농구 선수로 주중이나 주말에 저녁 9시가 되어서 집에 들어오기 다반사였다.     손녀들이 오면 주말에 같이 아침 먹고 쇼핑하려고 했던 내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다. 저녁에 바다 걷고 옛날 얘기도 들려주고 사진 찍고 하려고 했던 일도 한낮 물거품이었다. 어찌나 바쁜지 그들한테 할머니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저렇게 사는 게 그들의 살아가는 과정인 걸 어쩌겠나. 더 나은 내일과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열심히 뛰는데 내가 할 일은 응원하는 것 뿐이지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딸은 그동안 한 죄수의 무죄를 증명하느냐고 바쁘게 지낸 것을 나중에 알았다. 21살에 살인자로 10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청년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으로 재심을 허락 받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느냐고 정신없이 바빴단다. 열심히 증명한 결과 살인자 누명을 썼던 죄수는 무죄로 풀려나서 모두가 행복한 재판으로 끝이 났다. 그까짓 머리카락 줍고 식빵 사는 일이 무슨 큰일이라고 난 불평을 했을까 갑자기 숙연해진다.   동거 49일 만에 네명의 딸 가족이 떠난 자리엔 주어 담을 윤기 나는 머리카락도, 쫓아 다니며 끌 불도 없는 방이 캄캄하다. 수북이 담은 토스트도 없다. 향기 좋은 이탈리아제 커피향이 새삼 그립다.     김규련 / 수필가수필 동거 할머니 화장실 아래층 화장실 화장실 바닥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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