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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맛을 번역하다

한국어의 번역에서 정말 어려운 어휘는 맛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한국어의 형용사가 가장 발달한 부분도 맛이나 색깔 관련 어휘로 보입니다. 아마 한국어의 맛을 다른 말로 번역한다면 금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따라서 그 맛의 느낌을 구별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올바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번역은 어휘 대 어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휘 대 표현 혹은 표현 대 어휘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우리말에서는 한 단어인데 외국어에서는 설명해야만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한국어 단어를 외국어에서 문장으로 길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맛 관련 어휘입니다. 한국어의 맛에 관한 어휘를 볼까요? 달다, 쓰다, 맵다, 시다, 짜다 등이 있겠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세밀한 맛을 나타내는 어휘도 많습니다. 갑자기 ‘텁텁하다’가 떠오릅니다. 또한 우리말의 감각어는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물이 시원하다고 하는데, 이는 맛을 나타내는 미각어도 될 수 있고, 날씨를 나타내는 촉각어도 될 수 있습니다. 종종은시각어나후각어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눈도 시원하고, 코도 시원하니 말입니다. 하긴 행동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달다의 경우에 외국어로 번역하면 한 단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정말 복잡합니다. 우선 달다라는 말은 안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달다는 말을 들으면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어 미각은 반복해서 사용하면 맛이 좋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달달하다’가 바로 그 예입니다. 달달한 것은 좋은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달달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달다는 표현을 입맛 돌게 하려면 ‘-콤’을 붙이면 됩니다. 달콤이라는 말의 느낌을 한국인이 좋아하는 듯합니다. 상표에도 달콤은 자주 등장합니다. 아주 달지는 않고 약간 단 경우에는 달짝지근하다고 합니다. 단맛이 좀 덜한 경우에는 모음을 음성모음으로 바꾸어 들쩍지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달다의 경우만 봐도 정말 복잡합니다. 들다라는 말이 달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쓰다의 경우도 한국어에서는 나쁜 맛이 아닙니다. 써도 좋은 맛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역시 달달하다처럼 쓰다를 반복하는 겁니다. 그런데 씁쓸하다고 하면 맛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음을 바꾸어 쌉쌀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맛있는 쓴맛이 되기도 합니다. 맵다의 경우는 반복해서 쓰지는 않고, 콤만 붙여서 사용합니다. 매콤하다는 표현입니다. 맛있게 매운 느낌입니다.     시다의 경우는 시큼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역시 모음 때문인지 맛있는 신맛의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이때도 모음을 ‘애’로 밝게 바꾸어줍니다. 새콤하다고 하면 맛있는 신맛의 느낌이 납니다. 짜다는 쓰다와 비슷합니다. 콤이 붙을 수는 없고 반복해서 짭짤하다고 합니다. 짭조름하고 찝찔한 맛으로 조금씩 느낌이 변화해 갑니다.    한국인의 입맛이 복잡하네요. 맛에 관한 말이 많다는 것은 맛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맛은 달달하고, 쌉쌀하고, 짭짤한 맛입니다. 또한 달콤하고, 매콤하고, 새콤한 맛입니다. 정말 복잡하면서도 다양하네요. 그 밖에도 외국인이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맛의 표현이 있습니다. 얼큰한 국물과 칼칼한 맛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새콤달콤한 맛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만약 이런 말을 잘 번역하려면 설명을 더 해 주어야 할 겁니다. 번역을 맛있게 해야겠네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역 한국어 단어 한국어 미각 색깔 관련

2024-12-08

[우리말 바루기] ‘연도’와 ‘년도’ 구분

연말이 되면 신년 계획을 세운다.  ‘2025년도’ ‘신년도’ ‘연간’ ‘연도’ 등의 내용이 나올 때 ‘년도’와 ‘연도’ 가운데 어느 것을 써야 하는지 헷갈린다. 각각 다르므로 경우에 따라 구분해 적어야 한다.   ‘년도’는 ‘2025년도’에서와 같이 해(年)를 지칭하는 말 뒤에 쓰여 일정한 기간 단위로서의 그해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연도’는 ‘결산연도’ ‘1차 연도’ ‘졸업 연도’에서처럼 편의상 구분한 1년 동안의 기간이나 앞의 말에 해당하는 그해를 가리킬 때 쓰인다.   맞춤법에 따르면 ‘녀·뇨·뉴·니’로 시작하는 한자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여·요·유·이’로 표기해야 한다.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어야 한다.   따라서 ‘결산연도’는 단어의 첫머리가 아니므로 ‘결산년도’와 같이 본음대로 적기 십상이다. 하지만 독립성 있는 단어에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두 개의 낱말이 결합해 합성어가 된 경우 뒤의 단어에도 두음법칙이 적용된다는 예외 규정 때문에 ‘결산연도’로 쓰는 게 바르다.   숫자 뒤에는 ‘년도’가, 숫자가 아닌 낱말 뒤에는 ‘연도’가 붙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다만 ‘신년도’는 숫자가 아닌데도 ‘년도’라고 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신(新)+년도(年度)’ 구성이 아니라 ‘신년(新年)+도(度)’로 이루어진 단어라 보기 때문이다.우리말 바루기 구분 단어 첫머리 신년 계획 예외 규정

2024-11-20

[손원임의 마주보기] 신나는 단어 게임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성들 중에는 호기심과 의구심이 있다. 그리고 이는 세상에 대한 찬사와 경탄, 놀라움, 경외심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인간과 자연의 것들을 대단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이는 결국 의문을 낳고 또 다른 호기심 및 탐구심으로 발전한다.     말하자면, 아이가 처음으로 아주 큰 나무를 보고서 매우 놀라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경이로움은 “왜 나무는 자랄까?” 혹은 “내가 나무를 심는다면, 어떻게 해야 잘 자라게 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직접 실험과 탐구에 임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이는 바로 “I wonder if ~.”이다. 이를 번역하자면 “~라면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가 되겠다. 예를 들면, “내가 공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곧장 직선으로 땅에 빨리 떨어질까, 아니면 곡선을 그리며 천천히 떨어질까?”를 묻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경이, 경탄, 궁금증과 호기심이 제 2의 천성이라 할 정도로 매우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나는 이를  ‘자발적 경이로움(spontaneous wonderness)’이라고 부르고 싶다. 즉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의 환경, 사물, 사람들에 대한 놀라움과 궁금증으로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좀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보이는 타고난 본성과 자질과 잠재력은 이후 꽃을 피워 열매와 결실을 맺도록 지속적으로 계발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나서 가장 먼저 신기해하고 경이로움을 갖는 단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들 자신의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쓰기(name writing)’는 아이가 제일 먼저 배우고 싶어하는 것 중의 하나다. 어린이에게 있어서 실로 자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신나는 일이다. 물론 다 큰 성인들도 자신의 이름을 무척 중요시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여러 인간관계에서 갖는 비즈니스 모임이나 사교적 만남에 있어서, 상대방의 이름을 인식하고 불러주는 것은 사회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친밀감의 출발점이 아닌가.     학창시절로 돌아가보자. 새학기에 시작한 수업 시간에 교사가 내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기분이 으쓱해지고 좋아져서 그 과목에 더욱 열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이용해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놀이인 “신나는” 단어 게임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놀이나 게임에 사용하면, 반응도 크고 재미도 있고 효과도 좋다. 이 게임을 교사 교육시에 활용했는데, 대학생들도 매우 좋아했었다.     이 게임은 영어 이름을 구성하는 모든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색깔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색깔이름 찾기를 시작으로 해서 미국의 주와 도시의 이름, 더 나아가 다른 나라 이름 등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히 확대 적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름의 알파벳에 매칭하는 색깔을 찾았다면, 그 결과는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가로 세로 표를 그려보아도 된다. 이 게임은 친구와 짝을 지어 하거나 여러 그룹이 함께 해도 좋고, 가정에서 엄마 아빠와 즐겁게 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내 이름을 예로 들어보자. 나의 이름은 ‘손원임’이다. 영어로는 ‘Wonim Son’으로 표기하는데, 여기서 성을 빼고, WONIM으로만 해보자. 일단 내 이름은 다섯 개의 알파벳 글자로 구성된다. 그래서 각자에 해당하는 색깔 이름을 맞추자면, W로 시작하는 색깔은 White이다. 그리고 O는 Orange, N은 Neon green, I는 Indigo, M은 Maroon을 들겠다. 그리고 줄여서 몇 가지만 더 예를 들자면, W로 시작하는 미국의 주는 Wisconsin으로, N으로 시작하는 미국의 도시는 New York, 나아가 I로 시작하는 나라의 이름은 Israel을 들 수 있겠다.     물론 각각의 알파벳에 따른 여러 개의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고,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게 해서 문제 해결 능력도 함께 키워갈 것이다. 이 신나는 단어 게임은 아이들의 흥미와 경이를 자아내고, 단어 학습의 반복으로 문해능력의 교육적 효과 또한 높일 수 있다. 또 지리와 문화, 역사 분야 등 다양한 학과목에 걸쳐서 확대 적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순발력과 협동력, 창의성도 함께 키워준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성은 결국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낱말 교육은 아이들의 개념 정리와 사고 체계 구성에 매우 좋다고 추천한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단어 게임 단어 게임 색깔이름 찾기 색깔 이름

2024-10-08

[우리말 바루기] ‘요새’와 ‘금세’의 관계

‘요새’는 ‘요사이’의 준말이다. 이제까지의 매우 짧은 동안이란 의미다. ‘그새’란 말도 있다. ‘그사이’가 줄어든 것으로, 조금 멀어진 어느 때부터 다른 어느 때까지의 매우 짧은 동안을 이른다. 밤이 지나는 동안을 일컫는 ‘밤새’도 마찬가지다. ‘밤사이’가 줄어들었다. 이들 단어의 ‘새’는 모두 ‘사이’를 줄여 쓴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지금 바로’를 이르는 말로 ‘금새’가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곧을 뜻하는 ‘금(今)’과 사이가 줄어든 말인 ‘새’가 결합한 구조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금새 광고 효과가 나타났다” “입소문이 금새 퍼졌다”와 같이 흔히 사용한다.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말 ‘새’에 이끌려 ‘금새’로 쓰기 쉽지만 모두 ‘금세’로 바루어야 한다. 의미상으로도 ‘바로 지금의 사이’가 돼 말이 안 된다.   ‘금새’는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물건의 값 또는 물건 값의 비싸고 싼 정도를 나타낸다. “금새만 잘 쳐 주면 당장 이곳에 넘기겠습니다”처럼 쓰인다.   시간과 관계있는 말은 ‘금세’다. 바로 지금이라는 뜻의 한자어 ‘금시(今時)’에 조사 ‘에’가 붙은 ‘금시에’가 줄어든 말이다.  “금세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금세 피로해졌다”와 같이 쓰인다. 무엇이 줄어든 말인지를 알면 헷갈릴 이유가 없다.우리말 바루기 관계 금새 광고 이들 단어

2024-08-28

[우리말 바루기] ‘원활’?, ‘원할’?

많이 쓰면서도 헷갈리는 단어가 ‘원활/원할’이다. “정부는 ‘원활/원할’하고 안정적인 정책을 위한 별도 조직 운영에 나섰다” “‘원활/원할’한 운영을 위해 사전 예약 서비스도 함께 도입할 예정이다” 등처럼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낱말이지만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바른 표현은 ‘원활’이다. ‘원활(圓滑)’은 거침이 없이 잘되어 나감을 뜻하는 한자어다. ‘둥글 원(圓)’ 자와 ‘미끄러울 활(滑)’ 자로 이루어져 있다. ‘활(滑)’은 거침없이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원할’은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낱말, 즉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원활’은 모난 데가 없고 원만한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인간 상호 관계의 원활은 상대와의 충돌이 없음을 의미한다”처럼 사용된다.   ‘활’을 써야 할지, ‘할’을 써야 할지 망설여지는 단어로는 ‘역활’과 ‘역할’도 있다. 이때는 ‘역할’이 바른 말이다. ‘역할(役割)’은 ‘부릴 역(役)’ 자와 ‘나눌 할(割)’ 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역활’은 없는 낱말이다. ‘원활’과 같은 모양의 ‘역활’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활인’‘할인’ 역시 헷갈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활인/할인 행사가 어제 시작됐다”처럼 나올 때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나눌 할(割)’ 자와 ‘끌 인(引)’ 자를 쓴 ‘할인’이 바른 말이다.우리말 바루기 원활 할인 행사 단어 가운데 사전 예약

2024-08-20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단어에 대한 어린 시절의 고민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비슷한 말 하나가 한동안 괴롭혔다. 국어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효과’의 비슷한 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한참동안 답이 나오지 않으니 직접 답을 말씀하셨다. ‘보람’이란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효과’는 어떤 원인에 대한 좋은 결과가 있을 때 사용한다. 반면에 보람은 의미 있는 일을 한 뒤에 느끼는 좋은 기분이 아닌가? 하지만 당시에 학습지와 교사용 교재에는 모두 효과의 비슷한 말이 보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번은 반대말 때문에 혼자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정답은 대부분 ‘어머니’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아버지의 반대말은 ‘아들’이 아닐까? 가족관계를 옆으로 보면 어머니가 맞다. 하지만 위 아래로 보면 ‘아들’일 수도 있다. 성별과 위 아래까지 완전히 바꾸어 버리면 아버지의 반대말은 딸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미워한다’ 또는 ‘증오한다’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관심이 없다’일 수도 있다. 미워하거나 증오하려면 최소한의 관심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의 반대말이 ‘사랑했다’라고 말한다. 국어 선생님이 아시면, ‘사랑했다’는 반대말이 아니라 과거형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했다’는 말은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반대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단어에 대한 고민들은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초등학교 동창 하나가 서울에서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예전 친구들이 다같이 한번 만나자고 한다. 늘 서울에 갈 핑계거리만 찾던 나는 좋다고 했다. 그런데 몇 일 후에 그 친구가 시무룩하게 다시 연락을 했다.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듣기에 거북한 소리를 하더라는 것이다. “너와 나는 예전부터 결이 달랐잖아.” 이 말을 듣고 속이 상했다는 것이다. 주위에 물었다. '결'이 다르다는 것이 듣기 싫은 말인가? ChatGPT는 ‘두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 방식이 서로 다를 때” 쓰는 말이란다. 주위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서 듣는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특히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에게 자신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은 아직도 계속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말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 할 때는 더욱 그럴 수도 있단다.   단어들의 반대말과 비슷한 말을 생각해 보려는 노력들은 때로 혼란스럽다. 하지만, 말은 그 의미와 사용 맥락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말은 단순히 단어의 정의를 넘어서서 의도와 상황, 말하는 사람의 평소의 생활 태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말이나 비슷한 말은 강조하는 하나의 기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말도 말하는 사람,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친구들 덕분에 오랜만에 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말은 언제나 듣는 이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한다. 반면에 듣는 사람 역시 늘 말하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어머니께서 생전에 늘 나에게 말씀해주시던 구절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단어 고민 반대말 때문 예전 친구들 교사용 교재

2024-08-01

[우리말 바루기] ‘한랭전선’? ‘한냉전선’?

한랭전선(寒冷前線)이란 무거운 찬 공기가 가벼운 더운 공기를 밀어내고 그 아래를 파고들 때 생기는 경계면을 일컫는다. 한랭전선이 통과하면 찬 공기가 밀려들기 때문에 기온이 내려간다.     ‘한랭전선’을 ‘한냉전선’이라 적으면 어떻게 될까? 인터넷에는 ‘한냉전선’이란 표기가 적잖이 올라 있다. 심지어 기사에서도 ‘한냉전선’이란 표현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한냉전선’이라 적으면 틀린 말이 된다. 단어 첫머리의 ‘ㄹ’은 두음법칙 적용으로 ‘ㄴ’으로 적지만 첫머리가 아닌 경우엔 본래 음대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즉 냉난방(冷煖房)·냉각(冷却)·냉정(冷情)처럼 ‘차가울 랭(冷)’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냉’이라 적는다. 하지만 한랭전선·고랭지(高冷地)·급랭(急冷)·온랭(溫冷)과 같이 단어의 첫머리가 아니면 본음대로 ‘랭’이라 표기해야 한다.   ‘랭(冷)’자가 들어간 것뿐 아니라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대부분 단어가 마찬가지다. 연도(年度)·여자(女子)·노인(老人)·낙원(樂園) 등은 두음법칙에 따라 ‘해 년(年)’ ‘계집 녀(女)’ ‘늙을 로(老)’ ‘즐길 락(樂)’을 어두에서 각각 ‘연’ ‘여’ ‘노’ ‘낙’으로 적는다.   그러나 이들 역시 어두가 아닌 경우에는 연년생(年年生)·부녀자(婦女子)·촌로(村老)·희로애락(喜怒哀樂) 등처럼 원래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한랭전선 한냉전선 단어 첫머리 두음법칙 적용 대부분 단어

2024-07-29

[에듀 포스팅] 대입 에세이에 생각 명확히 담으려면 독서 등 통해 풍부한 어휘력 쌓아야

대학 입학 지원 에세이를 쓸 때 학생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표현력 부족뿐 아니라 핵심 단어를 생각해내지 못해 중언부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저는 커뮤니티 서비스 활동을 통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합니다”라고 쓴다면  “I want to help people because I like making them happy” 대신 “I aspire to impact lives positively through community service”라고 쓴다면 더 명확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핵심 단어를 찾아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면 읽는 사람이 더 정확하게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하기 좋다. 이와 같은 경우가 독해에서는 나타난다.     다음 두 문장을 보자: Tim assumed that Larry was mendacious(팀은 래리가 허위라고 가정했다). Jerry was surprised to see his colleagues arrogate authorship for the article(제리는 그의 동료들이 그 기사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만일 이 문장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면, 아마도 그것은 mendacious(허위)와 arrogate(주장하다)와 같은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에서는 이와 같은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디지털 SAT에서 어휘력의 비중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SAT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독해 능력을 평가하는데, 어휘력은 이러한 능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어휘가 부족하면 텍스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지므로, 어휘력은 독해와 글쓰기 모두에서 필수적이다.   ▶독해와 어휘력   독해와 어휘력의 연관성은 매우 깊다. 연구에 따르면 어휘 지식은 독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독해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에 등장하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mendacious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면 그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AP와 SAT 및 대학입학 준비를 도와주면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어려서부터 형성되어야 할 중요한 습관인 읽기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다. 모르는 단어를 그냥 지나가며 이야기의 흐름을 짐작으로 읽는 학생들은 분석적 독해가 되질 않는다.  충분한 어휘 습득과 올바른 분석적 독서 능력을 쌓아온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치르는 PSAT, SAT, ACT는 물론 대학원 진학을 위해 치르는 MCAT, LCA, GRE 등 대학원 진학 시험까지도 남들보다 수월하게 치를 수 있으며 이런 학습 능력을 갖춘 학생들은 진학 한 학교에서도 학업에 높은 성취를 보이게 될 것이다.     ▶글쓰기와 어휘력   글쓰기와 어휘력 또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여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은 제한된 단어로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 하므로, 글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풍부한 어휘력은 글을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어준다. 이는 특히 학문적인 글쓰기나 논술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Cunningham과 Stanovich(1997)는 1학년 때의 어휘력이 중고등학교 시절의 글쓰기 능력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어휘력 학습   어휘력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학습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꾸준히 사고하며 읽는 독서가 중요하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단어를 접하게 된다. 둘째, 단어장을 활용한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새로운 단어를 정리하고 반복하여 암기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셋째, 일상생활에서 배운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보는 것이 좋다. 직접 사용해보는 과정에서 단어의 의미와 용법을 더 확실히 익힐 수 있다.   이처럼 어휘력은 독해와 글쓰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SAT와 같은 표준화된 시험에서도 어휘력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독자적인 독서와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풍부한 어휘력을 갖추는 것은 성공적인 학업과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의:(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에듀 포스팅 에세이 어휘력 어휘력 학습 대입 에세이 핵심 단어

2024-06-02

[우리말 바루기] ‘원활’, ‘원할’

많이 쓰면서도 헷갈리는 단어가 ‘원활/원할’이다. “‘원활/원할’한 공급을 위해 사전 예약 서비스도 함께 도입할 예정이다” 등처럼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낱말이지만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바른 표현은 ‘원활’이다. ‘원활(圓滑)’은 거침이 없이 잘되어 나감을 뜻하는 한자어다. ‘둥글 원(圓)’ 자와 ‘미끄러울 활(滑)’ 자로 이루어져 있다. ‘활(滑)’은 거침없이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윤활유(潤滑油)’의 ‘활’ 자를 생각하면 ‘원활’도 바르게 적는 데 도움이 된다. ‘원할’은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낱말, 즉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원활’은 모난 데가 없고 원만한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인간 상호 관계의 원활은 상대와의 충돌이 없음을 의미한다”처럼 사용된다.   ‘활’을 써야 할지, ‘할’을 써야 할지 망설여지는 단어로는 ‘역활’과 ‘역할’도 있다. 이때는 ‘역할’이 바른 말이다. ‘역할(役割)’은 ‘부릴 역(役)’ 자와 ‘나눌 할(割)’ 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역활’은 없는 낱말이다. ‘원활’과 같은 모양의 ‘역활’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활인’‘할인’ 역시 헷갈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활인/할인 행사가 어제 시작됐다”처럼 나올 때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나눌 할(割)’ 자와 ‘끌 인(引)’ 자를 쓴 ‘할인’이 바른 말이다.우리말 바루기 원활 할인 행사 단어 가운데 사전 예약

2024-04-14

[우리말 바루기] ‘오지랖’

세상만사에 온갖 참견을 해대는 사람을 보면 어떤 표현이 떠오르는가. MZ세대라면 ‘오지라퍼’라고 대답할 듯하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 염치없이 행동하고 참견하는 사람을 가리켜 요즘 말로 ‘오지라퍼’라고 한다.   ‘오지라퍼’는 ‘오지랖’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사 ‘-er’을 붙여 만든 신조어다. 그런데 ‘오지랖’이 원래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오지랖’을 ‘오지랍’으로 잘못 알고 쓰는 사람도 많다.   ‘오지랖’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의미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오지랖을 자꾸 여미게 된다” “엄마는 오지랖을 걷어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그만큼 다른 옷을 덮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일을 모두 감쌀 듯이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고 표현하게 됐다. 이후 ‘오지랖이 넓다’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사람을 비꼬는 관용구로 자리 잡게 됐다.   ‘오지랖이 넓다’란 관용구는 많이 쓰이는 데 반해 ‘오지랖’이란 단어 자체만으론 잘 쓰이지 않다 보니 ‘오지랖’의 원래 뜻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또 관용구가 아닌 ‘오지랖’만 떼어내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표현하는 이도 많아졌다. “오지랖 좀 그만 부려” 등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관용구의 영향력이 강해져 원뜻이 소멸해 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우리말 바루기 오지랖 영어 접사 단어 자체

2024-03-21

[우리말 바루기] ‘만’과 반대인 ‘간’

조사나 어미는 앞말에 붙여 쓰고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그러나 단어에 어떤 것은 조사이고 어떤 것이 의존명사인지 표시돼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어떤 것은 쓰임새에 따라 조사나 어미가 되기도 하고 의존명사가 되기도 한다. 그런 단어 가운데 하나가 ‘간(間)’이다.   ‘간’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까지의 사이나 관계를 나타낼 때는 의존명사로 띄어 쓴다. “고속철을 타면 서울과 부산 간에 2시간40분이 걸린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가 이런 경우다.   앞에 나열된 말 가운데 어느 쪽인지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일 때도 띄어 쓴다. “공부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간에 열심히만 해라”가 이런 예다.   이와는 달리 ‘동안’의 뜻을 나타낼 때는 접미사로 붙여 쓴다. ‘이틀간, 한 달간, 30일간, 2년간’ 등이다. 기간이나 시간을 나타내는 명사가 앞에 오면 ‘간’을 붙이면 된다.   ‘간’이 거리를 나타낼 때 띄어 쓰는 것은 자연스럽게 잘 지켜지는 편이다. 시간일 때도 띄어 쓰는 형태로 대부분 문제가 나타난다. 이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번 다룬 ‘만’과 반대이기 때문이다. ‘만’은 시간을 나타낼 때는 의존명사로 띄어 써야 한다. 즉 “이틀 만에 그 일을 해냈다”처럼 시간 다음에서는 띄어 쓴다. 그러나 ‘간’은 ‘이틀간’과 같이 시간일 때 앞말과 붙여 써야 한다. 따라서 시간을 나타낼 때 ‘만’은 띄어 쓰고 ‘간’은 붙여 쓴다고 기억하면 좋다.우리말 바루기 반대 시간 다음 단어 가운데 대부분 문제

2024-03-07

[우리말 바루기] ‘뒷심’을 발휘해 보자

어떤 일을 끝까지 견디어 내거나 끌고 나가는 힘을 ‘뒷심’이라고 한다. 혹 ‘뒷힘’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힘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면 ‘뒷힘’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사전에서는 ‘심’을 ‘힘’의 강원도 방언이라고 정의해 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표준어는 서울말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서울말인 ‘힘’을 표준어로, ‘심’을 방언으로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뒷심’ 또한 사투리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힘’이 다른 단어와 결합해 합성어가 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다른 낱말과 짝을 이룰 때 ‘힘’을 발음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뚝힘’ ‘밥힘’ ‘뱃힘’ ‘입힘’ ‘헛힘’을 한번 발음해 보면 알 수 있다. ‘힘’을 자연스럽게 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 단어는 소리 내기 쉬운 ‘심’이 붙은 ‘뚝심’ ‘밥심’ ‘뱃심’ ‘입심’ ‘헛심’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뒷힘’ 역시 ‘힘’을 발음하기 힘들어 ‘뒷심’이 표준어가 된 것이다.   ‘뒷심’은 “뒷심이 세다” “뒷심이 약하다” “뒷심이 좋다” 등처럼 쓰인다. ‘뒷심’은 남이 뒤에서 도와주는 힘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뒷심이 든든하다” “누구 뒷심 믿고 삐딱하게 노느냐”가 이런 경우다.우리말 바루기 뒷심 발휘 누구 뒷심 소리 내기 이들 단어

2024-02-0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의 꿈은 새벽에 영글어 가고

금방 하루해가 저물었다. 뉘엿뉘엿 흐린 하늘에도 분홍의 노을이 진다. 붉거나 보라의 것에서 풍기는 강렬함 보다는 꿈같은 아련함이 온 몸에 소복히 내려앉는다. 새들도 제 집으로 날아가 버리고 토끼도 제 보금자리를 찾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등을 기대야 하는 어둠이 오고 잠깐만에 세상은 고요 안에 스스로 잠겼다. 숨죽이고 견디다 보면 저 깊숙이 살아나는 것들이 보이고 지나쳤던 꿈들이 노래가 되어 가까이 들려온다. 나무의 꿈은 영글어 가는데….   숲속에 걸터앉은 나무가 보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가지마다 제 몸무게만큼이나 눈송이를 안고 있어도 도무지 흔들리는 일이 없다. 살아 있으나 죽은 듯 전혀 미동이 없다. 찬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넌 언제고 정지된 나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숲으로 돌아가 누웠다. 별빛 아래 가늠할 수 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고 깊이 잠들었나 보다.   나무를 보려고 새벽 커튼을 젖혔다. 어둠 저편 언덕 너머에 동이 트고 있었다. 팔을 뻗어 잔 가지의 눈을 털어주려다 되돌아왔다. 나무 둥지에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고 별빛이 스치고 간 한 밤의 짧은 미련도 사라진 시간.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손길에 뒤돌아 보았다. 그것은 창살을 통해 들어온 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한 마디 말도 걸어볼 수 없는 너의 그림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왼쪽 팔을 길게 뻗어 팔베개를 했다. 나무를 향해 누웠다. 나무는 잠들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이 새벽에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나무가 되어 너의 창가에 서 있다. 깊은 밤 눈길을 걸어 그대에게로 가서 잠든 너의 눈시울을 잠깐 바라보다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를 둥글고 따뜻한 물방울, 네 등 뒤에서 맡을 수 있는 너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긴 그림자이고, 겨울 가지를 닮은 봄으로 뻗은 뿌리처럼 깊은 나의 하루가 되었다. (시인, 화가)         눈 덮인 뒤란에 나무 한 그루 서있다 모두 잠들은 이른 아침 하루가 깨어 나는 숲에서 건져 올린 사랑이라는 단어   사랑이 사랑이 되지 못하는   너를 잃고 나마저 잃은 세상에 새벽으로 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깨부터 기대오는 내 안 가득 당신입니다     총총걸음으로   구름길로 걸어야 하는 곳 한 평 남짓 발 뻗은 자리에도 가는 햇살로 녹이시고 흐르는 새벽으로 챙기시는 그대의 긴 손, 향기     장독대 장들이   느리게 익어가는 별빛 아래 희끗희끗 하얀 새치처럼   눈발이 날리고 나이 먹는 어리둥절 속에 사랑을 느리게 깨달아 갈 때 아픔이 무르익기 전 그대는 잠들어야 해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손     나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을 꼭 닮은   그대의 손은 약손입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 새벽 나무 둥지 새벽 커튼 단어 사랑

2024-02-05

[우리말 바루기] ‘쎈’은 잘못

‘감염력이 70% 쎈 변이 코로나’ ‘마스크 벗으니 더 쎈 놈이’에서 ‘쎈’이라는 표현은 맞는 것일까? 강력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쎄다’로 생각해 아마도 ‘쎈’이라 적은 것 같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쎄다’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활용한 ‘쎈’이라는 표현은 맞는 말이 아니다.   강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는 ‘세다’이다. 이 ‘세다’를 더욱 더 강한 느낌으로 전달하려다 보니 ‘쎄다’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지만 적을 때는 ‘세다’ ‘센’으로 정확하게 표기해야 한다.   ‘세다’를 ‘쎄다’로 적는 것처럼 본래 단어와 다르게 된소리로 잘못 쓰는 낱말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빨’이다. “약빨이 떨어졌는지 열이 다시 오르고 있다”와 같은 경우다. 여기에서 ‘약빨’은 ‘약발’의 잘못된 표현이다. ‘말빨’ ‘화장빨’ ‘글빨’ 등도 ‘-빨’로 쓰기 쉬운 단어다. 모두 ‘-발’로 고쳐야 바르다.   “속이 너무나 상해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셨다”에서와 같이 ‘깡소주’라 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안주 없이 먹는 소주는 ‘깡소주’라 불러야 말맛이 날지 모르지만 적을 때는 ‘강소주’로 바르게 표기해야 한다.   이처럼 ‘쎈’이나 ‘-빨’ ‘깡-’ 등으로 발음하는 것은 된소리가 자신의 느낌이나 의사를 더욱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말할 때는 크게 관계없으나 적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본래 단어 단어 자체 된소리가 자신

2024-02-01

[우리말 바루기] ‘연도’와 ‘년도’ 구분

새해가 되면 각종 기관이나 회사 등에서는 그해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신년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신년도’ ‘연간’ ‘연도’ 등의 내용이 나올 때 ‘년도’와 ‘연도’ 가운데 어느 것을 써야 하는지 헷갈린다.   ‘년도’는 ‘2024년도’에서와 같이 해(年)를 지칭하는 말 뒤에 쓰여 일정한 기간 단위로서의 그해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연도’는 ‘결산연도’ ‘1차 연도’ ‘졸업 연도’에서처럼 편의상 구분한 1년 동안의 기간이나 앞의 말에 해당하는 그해를 가리킬 때 쓰인다.   맞춤법에 따르면 ‘녀·뇨·뉴·니’로 시작하는 한자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여·요·유·이’로 표기해야 한다.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어야 한다.   따라서 ‘결산연도’는 단어의 첫머리가 아니므로 ‘결산년도’와 같이 본음대로 적기 십상이다. 하지만 독립성 있는 단어에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두 개의 낱말이 결합해 합성어가 된 경우 뒤의 단어에도 두음법칙이 적용된다는 예외 규정 때문에 ‘결산연도’로 쓰는 게 바르다.   보통 숫자 뒤에는 ‘년도’가, 숫자가 아닌 낱말 뒤에는 ‘연도’가 붙는다고 생각하면 구분하기 쉽다. 다만 ‘신년도’는 숫자가 아닌데도 ‘년도’라고 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신(新)+년도(年度)’ 구성이 아니라 ‘신년(新年)+도(度)’로 이루어진 단어라 보기 때문이다.우리말 바루기 구분 단어 첫머리 신년 계획 보통 숫자

2024-01-01

[우리말 바루기] ‘한랭전선’? ‘한냉전선’?

한랭전선(寒冷前線)이란 무거운 찬 공기가 가벼운 더운 공기를 밀어내고 그 아래를 파고들 때 생기는 경계면을 일컫는다. 한랭전선이 통과하면 찬 공기가 밀려들기 때문에 기온이 내려간다.     ‘한랭전선’을 ‘한냉전선’이라 적으면 어떻게 될까? 인터넷에는 ‘한냉전선’이란 표기가 적잖이 올라 있다. 심지어 기사에서도 ‘한냉전선’이란 표현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한냉전선’이라 적으면 틀린 말이 된다. 단어 첫머리의 ‘ㄹ’은 두음법칙 적용으로 ‘ㄴ’으로 적지만 첫머리가 아닌 경우엔 본래 음대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즉 냉난방(冷煖房)·냉각(冷却)·냉정(冷情)처럼 ‘차가울 랭(冷)’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냉’이라 적는다. 하지만 한랭전선·고랭지(高冷地)·급랭(急冷)·온랭(溫冷)과 같이 단어의 첫머리가 아니면 본음대로 ‘랭’이라 표기해야 한다.   ‘랭(冷)’자가 들어간 것뿐 아니라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대부분 단어가 마찬가지다. 연도(年度)·여자(女子)·노인(老人)·낙원(樂園) 등은 두음법칙에 따라 ‘해 년(年)’ ‘계집 녀(女)’ ‘늙을 로(老)’ ‘즐길 락(樂)’을 어두에서 각각 ‘연’ ‘여’ ‘노’ ‘낙’으로 적는다.   그러나 이들 역시 어두가 아닌 경우에는 연년생(年年生)·부녀자(婦女子)·촌로(村老)·희로애락(喜怒哀樂) 등처럼 원래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한랭전선 한냉전선 단어 첫머리 두음법칙 적용 대부분 단어

2023-12-22

메리엄웹스터 올해의 단어는 ‘진짜’

‘진짜의’, ‘진품의’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어센틱’(authentic)이 미국 유명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의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27일 메리엄웹스터는 단어 조회수와 검색량 증가 정도 등을 토대로 올해의 단어를 ‘어센틱’으로 선정했다. AP통신은 “인공지능(AI)이 발전하는 가운데, 딥페이크(deepfake·AI를 활용해 인물의 이미지를 실제처럼 합성하는 기술)가 흥하고 객관적 사실·진실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탈 진실(post truth) 시대의 양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어센틱’의 검색량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올해에는 일 년 내내 전례없이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에서 ‘어센틱’을 찾아보면 “거짓이나 모방이 아닌, 진짜의, 실제의”라는 풀이가 첫 줄에 나온다. 이어 “자신의 인격이나 정신, 성격에 충실한”, “원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거나 수행된” 등이 뒤따른다.   메리엄웹스터는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랐던 다른 단어들도 함께 소개했다. ‘엑스’(X)는 트위터의 새 이름이 되면서 검색량이 급증했다. 이스라엘 집단농장·정착촌을 뜻하는 ‘키부츠’(kibbutz)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후 찾아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메리엄웹스터 단어 메리엄웹스터 올해 단어 조회수 영어 단어

2023-11-28

[우리말 바루기] ‘오지랖’

세상만사에 온갖 참견을 해대는 사람을 보면 어떤 표현이 떠오르는가. MZ세대라면 ‘오지라퍼’라고 대답할 듯하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 염치없이 행동하고 참견하는 사람을 가리켜 요즘 말로 ‘오지라퍼’라고 한다.   ‘오지라퍼’는 ‘오지랖’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사 ‘-er’을 붙여 만든 신조어다. 그런데 ‘오지랖’이 원래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오지랖’을 ‘오지랍’으로 잘못 알고 쓰는 사람도 많다.   ‘오지랖’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의미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오지랖을 자꾸 여미게 된다” “엄마는 오지랖을 걷어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그만큼 다른 옷을 덮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일을 모두 감쌀 듯이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고 표현하게 됐다. 이후 ‘오지랖이 넓다’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사람을 비꼬는 관용구로 자리 잡게 됐다.   ‘오지랖이 넓다’란 관용구는 많이 쓰이는 데 반해 ‘오지랖’이란 단어 자체만으론 잘 쓰이지 않다 보니 ‘오지랖’의 원래 뜻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관용구의 영향력이 강해져 원뜻이 소멸해 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우리말 바루기 오지랖 영어 접사 단어 자체

2023-10-30

[우리말 바루기] ‘받다’의 띄어쓰기

‘버림받다’는 한 단어로 사전에 올라 있는데도 띄어 쓰는 경우가 많다. ‘받다’는 동사이므로 앞말과 띄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받다’가 피동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사일 때는 붙여야 한다. ‘버림받다’는 사전에 올라 있어 띄어쓰기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모든 낱말이 그런 건 아니다. ‘고통받다’ ‘눈총받다’의 경우 사전에 한 단어로 나와 있지 않다. 접사 ‘-받다’의 용례에도 없어 ‘고통 받다’ ‘눈총 받다’로 띄워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접사가 붙는 말은 확장 가능 범위가 넓어 사전에 전부 등재하지 못한다. 사전에 없어도 ‘고통받다’ ‘눈총받다’도 ‘버림받다’처럼 한 단어로 볼 수 있으므로 붙여야 한다. ‘감동받다·사랑받다·놀림받다·할인받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 단어 뒤의 ‘받다’가 접사인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앞의 단어가 구체적인 사물이냐 아니냐를 판단 근거로 삼는다. ‘감동·사랑·놀림·할인’은 실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단어 뒤의 ‘-받다’는 접사이므로 앞말에 붙인다.   ‘상·편지·월급·선물’ 뒤에 ‘받다’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 받다’ ‘편지 받다’ ‘월급 받다’ ‘선물 받다’로 띄어야 한다. ‘상·편지·월급·선물’은 구체적인 형태가 있어서 실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바루기 띄어쓰기 이들 단어 확장 가능 판단 근거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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