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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홀로서기

홀로 피었다   바람에 흔들려 구겨진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도 예상 못 했지만 현실이었다   구겨진 얼굴 피기가 쉬웠겠는가   흔들리는 갈대가 하얗게 울음을 터뜨렸다   비바람 앞에, 천근의 무게를 지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설 때   정면으로 부딪칠 때 그때 비로소   홀로서기는 시작되었다   홀로 핀 당신만 보인다   쏟아 내지 않고 별빛 하나로 모이는   그곳에 서 있어 보면 알 수 있었다.   같은 생각, 같은 걸음을 옮길 때   외로움은 멀어졌다   결국 그 힘은 뿌리에 있는 것이다   당신 앞에 날마다 서는 그 힘은   홀로 견디는 그 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라. 홀로 핀 것들이 너만이더냐. 시름시름 꽃대를 세우더니 백일홍도 홀로 피었고, 씨 뿌리지 않은 과꽃도 여린 꽃망울 홀로 맺었고, 망초도 담장 구석에 기대 안개 같은 하얀 꽃으로 홀로 활짝 웃었다. 그뿐이더냐. 수백 광년을 지나 발밑 아래 홀로 부서지는 별빛은 그냥 서서 맞이하기엔 얼마나 눈물겨운가.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햇살은 또 얼마나 포근하고 따사로워 온몸을 녹이지 않던가.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가 홀로 제 몸을 벗었고, 딱새도 홀로 밤낮으로 알을 품더니 올망졸망 제 식구를 데리고 춤추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홀로 견디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어렴풋이 홀로 사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가 홀로 되신 후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어 내는가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홀로 견디고 홀로 사셨다. 그리고 홀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초에 불을 댕기면 심지가 타면서 불꽃이 보인다. 심지가 곧게 깊이 박혀 있으면 불꽃은 오랫동안 그 빛을 잃지 않는다.     나무도 그 뿌리가 깊게 뻗어있지 못하면 비바람, 눈보라에 쓰러지게 된다. 아무리 버티려 해도 제 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홀로 서려면 그 뿌리가 깊어야 한다. 홀로서는 힘은 보이지 않는 그 심지에서, 그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무성해도 홀로 서는 힘은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다.     나무가 눈을 뜨는 시간에 나도 눈을 떴다. 나무는 자신이 심어져 자란 곳을 불평하지 않는다. 오늘도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지를 휘며 살아감의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깊은 땅을 향해 뻗어 가고 있겠지. 서 있다는 것은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하루를 그냥 맞은 게 아니다.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두렵고 떨리는 하루를 그림자처럼 지내셨다. 노을마저 져버린 서쪽 창가에 어둠이 찾아오면 지친 어깨를 들썩이며 가슴을 저몄을 것이다. 잠든 네 자녀의 이마를 쓸어주며 기도 반, 눈물 반으로 지샜을 것이다. 나는 안다. 그 먹먹했을 하루하루의 시간을. 그 고통스런 날들을 견디며 고개 숙이지 않은 것들에겐 향기가 난다. 그래서 난 홀로인 것들이 좋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 홀로 견디어낸 시간이 자랑스럽다. 홀로여서 외롭다고 생각지 마라. 사람도 홀로 있을 때 가장 사랑스럽지 않더냐.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비바람 눈보라 얼굴 피기 시인 화가

2024-08-19

[영상] 거센 눈보라 일더니 '쾅'…착륙하던 블랙호크 왜 추락했나

 미국 유타주 주방위군 소속 블랙호크 헬기 2대가 22일 오전(현지시간) 훈련 중 스키장 인근에 추락했습니다. 탑승했던 주방위군 4명은 다치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명 관광지인 '스노버드 스키 리조트'에서 스키를 즐기던 수십 명의 스키어들이 사고 과정을 생생히 목격하고 크게 놀랐다고 AP통신이 전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헬기는 정상 착륙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땅에 가까워진 헬기가 엄청난 눈바람을 일으키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눈바람 속에서 '쾅'하는 소리를 내 사고임을 직감했다고 하는데요. 리프트를 타고 있던 몇몇 목격자들은 눈바람 속에서 잔해물이 이리저리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을 봤다고 전했습니다. 눈바람이 가라앉은 사고 현장에는 헬기 한 대가 뒤집혀 있었고, 회전날개는 떨어져나가거나 부러진 상태였습니다. CNN방송은 "첫번째 헬기가 착륙하는 과정에서 날개의 일부분이 분리됐고, 그것이(분리된 날개가) 두번째 헬기와 충돌한 것 같다"는 주방위군 관계자의 설명과 함께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영상 블랙호크 눈보라 주방위군 관계자 스키장 인근 주방위군 소속

2022-02-24

[마음 읽기] 눈보라와 무공용

 최근에 제주에도 한파가 몰아쳤다. 눈보라도 연일 쳤다. 세상이 겨울 들판 같았다. 눈보라가 칠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찼다. 그것은 마치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서 흐르는 월파(越波) 같았다. 눈보라 뒤에는 또 눈보라가 따라왔다. 나는 언젠가 아득하게 너른 들판을 지나가는 눈보라를 한참을 바라보았던 때가 있었다.   눈보라에 대한 느낌은 졸시 ‘눈보라’를 통해서도 쓴 적이 있다. “들판에서 눈보라를 만나 눈보라를 보내네/ 시외버스 가듯 가는 눈보라/ 한 편의 이야기 같은 눈보라/ 이 넓이여, 펼친 넓이여/ 누군가의 가슴속 같은 넓이여/ 헝클어진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가네/ 그보다 더 기다리는 사람이 가네/ 눈사람이 가네/ 눈보라 뒤에 눈보라가 가네”라고 썼다. 정말이지 눈보라는 앞뒤 사정이 많은 한 사람의, 신산한 세상살이 같기도 하고, 우리가 가끔 갖게 되는 쓸쓸한 내면의 풍경 같기도 하다. 눈보라는 치지만 한쪽에는 핀 꽃이 또 있어서, 눈 속에서 동백은 더 붉고 한라봉 열매는 더 샛노랗다. 쌓인 눈을 밀어내고 나면 또 눈이 와 덮였다.     공터에서 엄마와 아이가 눈사람을 만드는 것을 보기도 했다. 두 개의 눈덩이를 굴려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서는 귤껍질을 이용해 눈과 코와 입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꽂아 팔을 만들어 놓고서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흡족하고 내 마음이 양지처럼 밝고 따뜻해졌다.     지붕에 쌓인 눈들은 처마 아래로 털썩털썩 떨어져 내리고, 그때마다 눈이 좋아 마당에 나와 뛰고 있던 강아지는 깜짝깜짝 놀라워했다. 물론 강아지는 곧 잊고 다시 흰 눈 위에 앙증맞은 발자국을 찍으며 뛰어갔다 뛰어왔지만. 처마 끝에는 고드름도 달렸다. 고드름을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거야, 라고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눈을 치우다 몸이 지치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다시 기운이 나면 또 나가서 눈을 치웠다. 눈보라가 성가시다는 생각조차 잊고서. 며칠 동안 무언가를 한다는 의식 없이 눈세상 속에서 살았는데, 밤이면 아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 속으로 이처럼 빨리 깨끗하게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을 왜 대개는 혼미하게 잠이 들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무공용(無功用)’이라는 말이 있다. 무공용은 어떠한 조작이나 작위 없이, 차별이나 분별이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 그대로에 맡긴다는 뜻이다. 작고한 이승훈 시인의 유고시집을 평하면서 송준영 시인도 이 말로 이승훈 시인의 시 세계를 해석했다. 이승훈 시인의 시 가운데 ‘그저 있을 뿐이다’라는 제목의 시는 다음과 같다. “산에 붙은 것도 아니고 산에서 튀어나온 것도 아니다. 오 산사 보고 절한다. 눈이 오기 때문이다. ‘저게 산이야? 산이 아니야?’ 절 앞에서 눈발 맞으며 묻는다. 그저 있을 뿐이다. 모두 그저 있을 뿐이다.”   시인은 산에 갔다가 산사 앞에 이르러 묻는다. 산사는 산이라고 해야 하는지 산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지를.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산사는 그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냥 그곳에, 그 자체로, 그 상태 그대로 줄곧 있다는 것을. 이 시에서처럼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무공용의 가치를 따르는 일일 테다. 신기할 것도 없이 그대로 그렇게 모든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 테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옛일에 대해서도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아쉬운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별문제가 없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게도 한 해가 다 가니 이러하고 저러한 일들이 생각나지만, 무공용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선 한 해를 떠나보내 보는 것이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눈보라 무공용 이승훈 시인 송준영 시인 겨울 들판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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