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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고향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아서, 스며드는 솜사탕 같아서, 언젠가 마주했던 싱그런 파란 바람 한 점 같아서,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 닦아 주는 엄마 눈물 같아서, 누군가에게 달려가 전해 주고픈 반가운 편지 같아서, 깨어 보니 멀리서부터 온 굽은 인생길 같아서, 길 따라 소담히 핀 들꽃 같아서, 무심히 걸었던 가로수길 느티나무 그늘 같아서, 붉게 피었다 이내 자취를 감춰버리는 서글픈 서쪽 노을 같아서, 하늘 멀리 달아나는 연 꼬리 따라 마냥 뛰었던 숨 가쁜 오솔길 같아서, 싸리비로 쓱쓱 쓸어낸 말끔한 안마당 같아서, 숲길 오르다 잠자리 날갯짓에 걸음을 멈춘 까까머리 친구 뒷모습 같아서, 뿌리치지 못한 애정한 손잡음 같아서,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 같아서, 그렇게 또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저미고, 그래서 또 다지고, 어느 사이 가슴을 열게 하는, 바람 불어오는 들녘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는, 엄마 누운 한 평 남짓 로즈힐 세미토리, 먹먹한 그리움으로 유년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소식 끊긴 친구 얼굴 흐르는 구름에 밀려가는, 노랑 보라 잔잔한 들꽃들이 반갑게 손짓하는, 노랑나비, 흰나비 한 쌍 날개 겹치며 뒤뚱뒤뚱 언덕 넘어 사라지는, 그 숲길에서 나를 잃고 너를 잃어버리게 되는, 노을 그 깊은 회한의 물감이 별빛에 풀어지는, 싸리문 열면 정갈한 장독대 그 옆 기슭에 앉아 편지를 읽는, 그림 하같은 풍경을 집안에 가득 들여놓고 잠들지 못하는, 그렇게 또 그래서       물병에 들꽃   한나절 햇살은 지고   싸리문 열고 들어온 노을과   가지런한 고무신 한 켤레       나에게 흐르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고요를 모두 내어 드리이다   가슴을 풀으려니   그 자리에   한 송이 꽃으로 오시오       나에게 오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 하리다   두 팔을 뻗으리니   그대 떨리는 별자리로   파랗게 손짓해 주시오      나에게 별이 뜨고   소리 없이 밤이 오고 있소   내 그대를 향해   숲이 되어 흐르리니   내 눈 가득   그대 어디라도 오시오   그렇게 또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계단의 끝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작은 실개천이 강물로 이르고, 강이 바다 향해 흘러가듯 계단 끝에는 이상의 존재 고향이라는 아득함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날마다 고향을 향해 한 계단만큼 가까이 가고, 호수에 풀어놓은 달빛은 헤어진 기억을 어루만져 올이 풀린 고향의 등을 도닥거리고, 훤히 드러난 시간을 견고한 위로의 손으로 도닥여 준다 고향이라는 위로는 풍랑 이는 바다 한가운데 높은 파도에 깊은 심지의 뿌리를 내리고 다시 살아나고,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닮지 않았다 봄이 겨울을 닮지 않았듯이 생소한 너의 얼굴에 하얀 포말의 바다가 보이고, 가보지 못한 외로운 섬이 보이고, 싸리문의 작은 집이 그리움으로 보인다 저만치에서 고향이 손짓하고, 나를 부르고, 겨울나무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그려보고, 그렇게 또 그래서       눈이 떠지고   귀가 뜨이는 거야   터지고 트여   보지 못한 것이 보이고   듣지 못한 것이 들리는 거야   그렇게 또 그래서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들꽃 한나절 친구 얼굴 노랑나비 흰나비

2024-07-29

[이 아침에] 노랑나비

마른 나뭇가지에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움튼다.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꽃봉오리 주변에 노랑나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늘하늘 춤추는 화사한 나비들은 노란 꽃의 영혼이 피어남을 알리는 전령사일까.     싸한 가을바람 속 우리 집 화단에서는 감사의 계절을 맞아 나비와 꽃의 한바탕 축제가 막을 올리는 것 같다. 요염한 노란 꽃 위에 노랑나비들의 흥겨운 춤사위는 눈부시게 현란하다. 화사하게 단장을 마친 노란 꽃은, 웨딩마치에 따라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새신부같이 수줍어하면서 조심스레 꽃을 피워간다.    해가 떠오르면 환하게 벙그는 꽃은 나의 희망이고 기도이다. 내일은 어느 곳에서 예쁜 꽃이 고운 마음을 열까 조바심하면서 기다린다. 꽃들은 나의 바람을 눈치챈 듯, 앙증맞은 꽃망울을 하나씩 터트리며 자신만의 세상을 황홀하게 열어간다. 노란 꽃들이 줄지어 환상적인 세상을 펼치자, 부지런한 나비들은 기다렸다는 듯 분주해진다. 푸른 하늘에 간단없이 직선과 곡선을 그어가며 현란해지는 나비들의 춤사위는, 신명 난 사물놀이꾼의 몸짓같이 흥겹기만 하다..     나비는 어디에서 태어나 영혼과 육신을 이곳에 나투는 것일까. 할딱할딱 온종일 날갯짓을 하면서 꽃마다 점을 찍는 나비.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부르던 ‘날비(낣이)’가 ‘나비’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나비는 행운이나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날개의 색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정해지는데, 노랑나비는 좋은 뜻으로, 하얀 나비는 죽음의 의미로 통한다. 가냘픈 날개에는 삶의 축복과 죽음의 어두움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숙명처럼 나비도 삶을 영위하면서 죽어가고, 죽음 속에 삶이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 보면 삶과 죽음은 한 몸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나비의 변신은 다양하다. 화사한 아침 온몸을 단장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돋보이려는 요염한 여인으로 변했다가, 아른거리는 날갯짓으로 아장아장 걸음을 떼는 앙증맞은 어린아이로도 변신하는가 하면, 암술과 수술을 맺어주는 극성스러운 중매쟁이 아줌마로도 되었다가, 애벌레에서 파격적으로 하늘을 비상하는 나비가 되기도 하며  결단력 있는 힘센 남자로도 변신하기도 한다.     애벌레의 몸을 뚫고 불끈 하늘로 비상하는 나비의 영혼. 영구 불멸의 혼은 하늘에 올라 신의 경지까지 등극하는지, 여리디여린 날개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무덤가의 죽음과 세상의 삶을 이어 주기까지 한다.     가냘프고 여리지만 다양한 변신으로 불가해한 힘을 뿜어내는 노랑나비에 마음이 머문다. 문득 오늘 하루 노랑나비가 되고 싶어진다. 세상일을 모두 내려놓고, 한 마리의 노랑나비로 변신하여 피안과 차안을 넘나들며 나르바나의 세상에 흠뻑 빠지고픈 꿈을 꾼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노랑나비 중매쟁이 아줌마 꽃봉오리 주변 피안과 차안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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