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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유세에서 러시아가 공격해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들이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동맹국에 “나는 당신네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방위비와 결부시켜 나토에서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있어 우려를 자아내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해 이런 발언이 현실화할 경우 과거 한국전쟁 때처럼 전쟁을 부추길 수 있어 위험천만한 일이다.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방위선(애치슨라인)’을 발표하고 미군이 철수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생생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방위비를 내지 않으면 자국의 군대를 철수할 것이고, 우방보다 적국 편을 들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국제질서를 뒤엎겠다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세계 질서에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트럼프는 나토의 집단방위 개념을 믿지 않고, 동맹국들에 자국군에 더 많은 지출을 하라고 압박해왔다. 그러나 역대 어느 대통령도 동맹국을 공격하라고 적국을 선동하겠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의 발언은 나토 동맹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상호 안보협정을 맺은 다른 나라들 역시 미국의 도움을 확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안보협정을 신뢰보다 돈으로 주고받으려 한다면 어느 순간에 한미안보조약이나 한미일안보조약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4년 전 트럼프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자신의 두 번째 임기에 주한미군 철수가 우선순위 의제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만일 북한이나 푸틴, 시진핑이 안보동맹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오판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본다. 한미안보조약, 한미일안보조약이 유명무실해지면 재앙적 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간주했고, 핵을 보유하고 장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한 마당에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트럼프가 방위비를 구실로 나토를 떠받치는 핵심 가치를 와해시킨다면 큰 문제다. 나토협정 제5조는 ‘회원국들은 다른 회원국에 대한 무장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무장 공격 발생 시 ‘무력 사용을 포함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행동을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회원국과 협력해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나토 회원국으로 이 같은 집단방위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사실 나토의 군사력 대부분은 미군이 차지하고 있고 나토를 지휘하는 것도 미군이다.  미국이 없는 나토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트럼프가 재집권하고 지속해서 아시아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금의 과도한 증액을 요구할 경우 군사동맹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의 지형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다. 이는 동북아 패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과 러시아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고, 핵보유국으로서 입지를 다진 북한을 부추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은 미 의회에서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주한미군 숫자 감축 하한선을 2만2000명으로 정해놓았기에 트럼프가 의회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주한미군의 감축을 실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미 의회가 의회 결의 없이 나토 회원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못하도록 결의했지만, 지금 트럼프의 강경 발언을 보면 한국이나 나토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의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주한미군 철수 나토 회원국 나토 동맹국

2024-02-14

[글로벌 아이] G7·나토의 변신과 재세계화

동유럽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국과 일본이 지난해 처음 참석한 데 이어 올해에도 함께한다. 중국은 ‘나토의 동진’이라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정치평론가 쑹궈청(宋國誠) 대만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 고급연구원이 최근 나토의 변신을 ‘재세계화(re-globalization)’라는 틀로 분석한 글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대만 상보(上報)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역 집단안보가 ‘범지역동맹’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파헤쳤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핵 위협에 맞선 한국도 주목해야 할 변화다.    나토에 앞서 주요 7개국(G7)이 먼저 탈바꿈했다. 쑹 연구원은 확대된 ‘G7 플러스’가 곧 G20을 대체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다자틀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히로시마 G7 의장국 일본은 기존 회원국 외에 한국·인도·브라질·베트남·호주를 비롯해 아프리카연맹 의장국, 태평양도서국포럼 의장국, 아세안 순회의장국 인도네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까지 초대했다. ‘G7 플러스’는 소수 부자 클럽에서 이미 벗어나 다국적 전략 협력 플랫폼이 됐다.   G7의 확대에는 두 가지 공통인식이 작동했다. 첫째 중국의 ‘경제적 강압’과 대만해협을 포함해 무력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데 반대한다는 강령이다. 둘째 ‘디커플링(탈동조화) 아닌 디리스킹(위험제거)’이라는 공감대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6~9일 방중 기간 “미국은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이유다. G7의 디리스킹은 제한된 위협 요인만 겨냥하는 전략적 디커플링을 말한다.   나토로 대표되는 지역 집단안보 기구도 바뀌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세계 어디서건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할 수 없다는 인식에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해 나토정상회담은 현존 국제질서와 민주적 가치에 강압 행위를 한다면 안보의 후과(後果)가 있을 것을 천명한 ‘전략개념’을 만들었다. 나토가 유럽의 국경을 넘게 된 근거다.   새로운 집단안보는 국제 시스템의 틀까지 재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겪으며 동슬라브 민족국가에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의 국가(state in relations)’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탈세계화 아닌 이원화된 ‘재세계화’를 가속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가 뒤섞인 재세계화에 한국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다. 신경진 / 베이징총국장글로벌 아이 재세계화 나토 지난해 나토정상회담 최근 나토 지역 집단안보

2023-07-10

'韓정상 첫참석' 나토행 윤대통령, 포괄안보·북핵공조 성과 낼까

'韓정상 첫참석' 나토행 윤대통령, 포괄안보·북핵공조 성과 낼까 '中 견제' 새 전략개념 채택…서방 밀착 속 반중·반러 프레임 줄타기 시험대 4년9개월만에 머리 맞대는 한미일 정상…尹, 북한 비핵화 메시지 발신 한일 독대 무산됐지만 정상화 물꼬 트나…릴레이 양자회담으로 '세일즈 외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29∼30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에 나선다. 취임 후 첫 다자외교 데뷔무대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 통상에서 중요한 파트너인 유럽을 상대로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핵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과 지지를 요청한다는 구상이다. 취임 50일여 만의 첫 해외 방문이자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 참석하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어떠한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이날 오후 출국한다. 부인 김건희 여사도 배우자 세션 참석 등을 위해 동행한다.   ◇ 새로운 '전략 개념' 채택…서방 밀착 속 반중·반러 프레임 줄타기 이번 정상회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패권 경쟁 격화 등으로 국제 질서가 요동치는 와중에 개최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미·유럽의 집단방위 체제인 나토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를 '아시아·태평양 파트너국'이란 이름 아래 초청했다. 모두 중국과 같은 아시아·태평양 권역에 있으면서 미국과 동맹인 나라들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응 방안을 담은 새로운 '전략 개념'(Strategic Concept)도 새롭게 채택할 계획이다. '옵서버' 자격이긴 하나, 한국의 나토 참석은 서방과 중·러간 '신냉전' 양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서방 진영과의 결속을 꾀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윤 대통령은 '포괄적 안보'라는 이름 아래 나토 회원국들과 경제·인권·기술 등 다방면의 협력 강화를 통해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나토와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반중·반러 전선에 본격 동참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할만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의 기간 당초 거론됐던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토 파트너국 정상과의 4자 회담이 안 열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을 두고도 대중 강경노선을 견지해온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의 '밀착'이 자칫 윤 대통령의 반중(反中) 기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北 비핵화 국제사회 공조 견인…4년9개월만 머리 맞대는 한미일 정상 윤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 7차 핵실험 징후가 뚜렷한 가운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력히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할 계획이다. 주목받는 무대는 나토 회원국·파트너국 공동세션 연설이다. 윤 대통령은 약 3분간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계속되는 무력 도발 등 국제적인 안보 위협을 평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의 역할을 언급할 계획이다. 이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다자적 접근을 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토 정상회의 계기 4년 9개월 만에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북핵 문제가 가장 주요하게 다뤄질 전망이다. 한미일 정상이 모두 바뀐 뒤 처음 마련된 이번 정상회담에선 북핵·미사일에 대한 '대북 삼각공조'를 재확인하는 한편, 북한을 향해 대화의 장으로 나서라는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점쳐진다. 한미일 외교장관이 지난달 28일 대북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3국이 최근 대북 공조를 강화하는 와중에 정상들이 어떠한 결과물을 내놓을지도 관심이다. 다만 회담 예정 시간이 약 30분간으로 길지 않은 만큼 현장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보다 앞으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상견례' 성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 한일 정상 독대는 무산…관계 정상화 계기 될까 관심을 모았던 한일 정상회담은 어렵게 됐다. 다음 달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등 일본 국내 이슈와 맞물린 측면이 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양국 정상이 큰 틀의 한일관계 정상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과는 별개로, 집권 자민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 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모양새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 정상이 한미일 정상회담 등 대면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다는 점에서 관계 개선을 추진할 계기가 마련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본회의, 한미일 정상회담, 스페인 국왕 주재 환영 만찬 등을 통해 기시다 총리와 최소 세 차례 이상 자연스럽게 대면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실무 레벨에서 강제 징용 문제 등에 대한 협의 모멘텀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한일 셔틀 외교도 재개될 수 있다"며 "한일 정상이 안 만난다고 해서 한일 간에 문제가 있다고 비치는 것에 대해선 다른 견해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 세일즈 외교도 박차…尹 "여러 정상과 수출 얘기" 대통령실은 이번 나토 참석의 또 다른 의미를 경제 협력에서 찾고 있다. 윤 대통령은 3박 5일간의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9개국 이상과 정식 양자회담 내지 약식회동을 소화할 계획이다. 원자력 수출(체코·폴란드·네덜란드), 반도체(네덜란드), 방위산업(폴란드), 재생에너지(덴마크) 등 국가별로 다양한 현안을 놓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24일 출근길에 "유럽과 아시아 여러 정상이 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다양한 현안들, 또 수출 관련 문제라든지 이런 것도 필요하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윤대통령 포괄안보 북핵 문제 나토행 윤대통령 나토 정상회의

2022-06-27

[J네트워크] 나토가 동쪽으로 간 까닭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 유럽 주요국(영국·프랑스·독일)과 당사국인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주한 대사들을 차례로 인터뷰했다. 가장 껄끄러웠던 건 역시 러시아였다. 안드레이 쿨릭 대사는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면서 이번 침공의 명분을 ‘훈계조로’ 설명했다. 흥미로웠던 건 그가 이번 ‘특수군사작전’(러시아식 표현)을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와 함께 더 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 점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 때 사용했던 ‘예방 전쟁’이란 명분을 그대로 되치기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쿨릭 대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냉전이 끝났는데 왜 해체는커녕 계속 동유럽 국가를 받아들였느냐”다. 실제로 나토 동진의 문제점에 대해선 미어샤이머를 비롯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안에서 이를 대표적 외교적 실수로 꼽는 이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나토가 점진적 팽창을 해온 것만은 아니다.     1949년 나토 창립 멤버였던 프랑스는 1966년 드골 정권 때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 외교노선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탈퇴했다. 복귀는 43년 만인 2009년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도 반대하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보여주듯 EU도 언제나 일심동체였던 건 아니다.   동맹이나 연합은 생명체처럼 수시로 변하고 주권국가는 그 틈에서 독자생존을 모색할 권리가 있다. 돌이켜보면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됐을 때 나토의 문을 열어달라고 한 쪽은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당시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가 벌인 ‘예방 전쟁’의 아이러니는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스웨덴을 나토 쪽으로 밀어냈단 점이다. 무엇을 예방하려 했든지 간에 나토의 동진은 주변 국가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의 후퇴를 수반한다.   더 큰 아이러니는 나토가 이제 동진을 넘어 러시아·중국의 동쪽까지 엿본다는 점이다. 오는 29일 스페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엔 한국을 포함해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도 초청됐다. 앞서 나토 측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전략개념’ 재정비를 예고하면서 러시아 외에 중국까지 겨냥하겠단 뜻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중국이라는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을 미국·유럽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의 파트너와 함께 ‘거대한 포위망’으로 둘러싸는 모양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및 일본 순방 때 가장 강조된 게 ‘경제 안보’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지정학과 지경학이 숨 가쁘게 교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J네트워크 나토 동쪽 나토 정상회의 나토 창립 러시아식 표현

2022-06-12

[삶의 뜨락에서] 우크라이나의 봄

 3월 18일, 짙은 안개가 걷히고 기온이 70도 가까이 올라갔다. 개를 끌고 100분간 바닷가를 걸었다. 완연한 봄이다.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봄꽃이 수줍은 듯 피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경쟁적으로 피어 산책로를 환히 비출 것이다.     포성이 멈추지 않은 우크라이나에도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보다 남쪽에 있으니 눈이 먼저 녹고 꽃도 일찍 필 것이다.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 방공호에 갇혀 있는 그들은 봄이 오는 줄도 모를 것이다. 그저 하루라도 안 죽고 버티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생각할 것이다. 전쟁은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다.     이 세상 재난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예방접종을 한다. 우크라이나, 미국, 나토 유럽은 푸틴이 “큰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했다. 사전에 우크라이나에 방어무기를 대량으로 지원해  러시아가 침략 엄두를 못 내게 했거나, 우크라이나 NATO 가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더라면 푸틴을 덜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전쟁은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일단 터지면 수습하기 힘들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탈레반 반군은 일사천리로 정부군을 물리치고 정권을 쟁탈했다. 아프간 오합지졸은 싸울 생각도 안 하고 대통령이란 사람부터 줄행랑을 쳤다.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러시아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국민은 다시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사생 결단 항전하고 있다. 젊은 대통령은 지하에서 전쟁을 지휘하면서 우방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예상 밖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러시아는 전의를 꺾기 위해 민간인에 포격을 가하고 있다. 현 전쟁상황을 ‘세계 2.5 대전’으로 성격짓는 전략가들이 있다. 푸틴은 전쟁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고, 미국 등의 경제 제재로 코너에 몰리면 핵 위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죽게 돼 있다. 전쟁터 1마일 반경에 수천 개의 비극이 발생한다. 총을 들고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남고 부녀자들, 노인들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피난길에 나선다. 아이를 안전한 나라에 데려다 놓고 남편이 있는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가는 여인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전쟁이 그칠 것인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이런 장면이 있다. 전쟁터 아들은 남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 내 발에 맞는 군화를 보내 주세요. 사이즈 12, 지금 신은 해어져 발가락이 나와요. 죽은 적군의 신은 작아서 안 들어가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신을 보냈다. 며칠 후 전보가 왔다. 아들은 신을 받기 전에 전사했다는 비보였다. 포성이 울리면 산짐승과 새들이 먼저 달아난다. 우크라이나 산야에 뛰놀던 야생동물은 피난민보다 먼저 안전한 나라로 피신하고 국경이 없는 새들은 전쟁터를 떠났을 것이다. 이미 피난민은 200만, 전쟁이 오래가면 400만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평화가 오면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만 한 번 놀란 짐승과 새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분쟁이 종식되고 휴전을 거쳐 평화가 올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리에 쏟아져 나와 부둥켜안고 춤을 출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저자, 러시아의 자랑인 톨스토이도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원망할 것이다. 전쟁터에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 우크라이나 산야에도 향기로운 봄꽃이 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아름다운 봄, 겨울의 압제에서 해방된 봄을 그들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산야 우크라이나 나토 우크라이나 nato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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