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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떠난다. / 청동의(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 하나의 소리가 되어. /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 청동의 벽에 / ‘역사’를 가두어 놓은 / 칠흑의 감방에서 / 나는 바람을 타고 /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 먹구름이 깔리면 /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 뇌성(雷聲)이 되어 /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박남수의 ‘종소리’     시인의 종소리는 청동의 벽에 갇혀 있다. 종소리는 벽을 뚫고 세상에 울음으로 퍼져 나간다.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으로, ‘하나의 소리’가 되어 세상을 진동시킨다. 역사 속에 갇혀 있었던 시간을 해방시키는, 꼭지 터지는 천둥 소리가 되어 자유를 찾아 푸르름이 되고 웃음이 되고 새가 된다.     유년의 종소리는 즐거웠다. 시작을 재촉하는 종소리도 끝을 알리는 종소리도 모두 좋았다. 선생님이 교무실 앞에 달린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 종을 치며 “얘들아” 하고 부르면 하던 재미있는 놀이를 멈추고 동무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교실로 달려 갔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1984년 이화여대 음대 김메리교수가 유일하게 작사 작곡한 동요다. 유년의 종소리는 청명한 울림으로 시작과 멈춤을 알리며 생의 곳곳을 스며 든다. 시작과 끝은 아련한 반복으로 세월의 종을 울린다.   이젠 아무도 종을 쳐 주지 않는다. 언제 시작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어느 쯤에서 길고 긴 방황을 끝을 접어야 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아득한 길 위에서 길을 찾으며 길을 잃고 길을 헤맨다. 또 다시 지난 해의 그 자리에 서있다. 달라지려고, 좀더 나아지려고 애를 썼지만 달라진 것 하나 없이 빈 손으로 바람 앞에 내가 서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다. 태산도 원래는 평지였다. 하나 둘 모여 육지가 되고 바다가 되었다. 우주 기원의 가설인 빅뱅(Big Bang)에 의하면 태초에는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있었다. 물리학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 Lemaitre)는 ‘최초에 모든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 후 폭발이 있었고 하늘이 연기로 가득 찼다’라고 주장한다. 찬란한 불꽃놀이와 엄청난 폭발, 앞이 안 보이는 혼돈 속에 탄생한 우주 속에 한 개의 점으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지면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는 우주의 주인공이다. 내가 없으면 그대 사랑도 허공을 맴돈다. 후회와 미련으로 지난 날을 닦달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세월의 끈을 푼다. 묶여 있던 것들을 떠나 보낸다. 그리움의 언덕에는 갈대가 서걱인다. 무겁고 힘든 것들의 매듭을 풀지 않으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세월의 끝자락은 흔들린다. 달력의 마지막 장은 펄럭인다. 유년의 일기장, 빛 바랜 추억 속 얼굴, 작별 담은 그대 편지, 소복 입은 어머니의 무명치마는 바람 앞에 서면 펄럭였다. 마음의 끈 다잡아도 그리움의 빈 칸을 눈물로 채웠던 날들이 바람개비로 허공을 맴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면 된다. 슬픔은 삼키면 약이 된다. 고통은 용기가 되고 절망은 희망의 뿌리가 된다. 아픔은 진주처럼 영롱하고 그리움은 별이 된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잠시 멈추고 있을 뿐이다. 시행착오는 반복되고 세월이 연륜을 만든다. 인생 역전 드라마는 아직 방영되지 않았다. 누가 더 잘 사는지, 잘났는지 키 재기 하지 말고, 소중한 내 모습 그대로 세월의 끝자락에 내일의 꿈을 새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끝자락 세월 바람개비로 허공 우주 기원 천둥 소리

2023-12-26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지상 최대 아이스 쇼를 만나다

갈까 말까 재다 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한정판 여행지가 있다. '오픈런'이 아니고 '여행런'이 시급한 파타고니아 얘기다.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는 가장 크고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불리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가 빠르게 녹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의 이유로 빙하가 녹는 속도가 최소 350배 이상 빨라졌다고 한다. 국립과학기술연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페리토 모레노 빙하의 길이는 무려 765야드나 줄었다. 1년에 평균 380야드씩 빙하가 사라진 셈이다. 남미 대륙에서도 남쪽 끝자락에서 이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품고 있는 파타고니아는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 불리는 곳이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초록숲 아직 살아있는 거대한 빙하와 그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호수… 파타고니아는 자연이 오롯이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다. 특히 11~2월의 파타고니아는 바야흐로 꽃 피는 여름. 눈 시릴 정도로 청명한 하늘 따사로운 햇볕 아래 야생화가 꽃망울을 '툭툭' 하고 터뜨린다.     파타고니아의 명소로는 토레스델파이네 엘칼라파테 푸에르토 나탈레스 그리고 지구의 최남단 땅끝마을인 우수아이아 등이 대표적이다. 특별히 우수아이아에서는 마젤란 펭귄섬에 상륙해 귀여운 펭귄들을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고 엘 찬텐에서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5대 미봉 피츠로이(Fitz Roy)에서 카프리 호수까지 근사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압도하는 풍광들로 가득한 장관은 단연 페리토 모레노 빙하다. 로스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바다에 둥둥 뜬 빙하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한다. 일단 규모부터가 길이 19마일 높이 240피트 두께 560 피트로 압도적이다. 문자 그대로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가늠하듯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얼음 평원은 켜켜이 눈이 쌓이고 그 눈이 얼어서 만들어진 시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1981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모레노 빙하는 빙하가 계속 움직이는 신비로움으로 더욱 특별하다. 때때로 빙하들은 '우루루 쾅쾅' 땅이 갈라지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린다. 호수 면과 맞닿은 빙하 끝자락은 거대 빙하에서 떨어져 나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이곳에서는 투박한 쇠뭉치 같은 아이젠을 차고 빙하를 오를 수도 있어 더욱 특별하다. 빙하 위를 뒤뚱뒤뚱 걷다 보면 유구한 세월을 담은 차가운 공기가 발아래서부터 올라오고 눈앞에는 얼음산과 얼음 계곡들이 나타난다. 걷다가 목이 마르면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을 떠서 마시면 그만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그 감각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빙하 트레킹의 피날레는 풍미 좋은 위스키에 빙하를 부숴 넣은 '위스키 온 더 락' 한 잔이 장식한다.     상상해 보라. 지구의 끝을 떡하니 막고 있는 거대한 빙하. 여기서 유빙이 떨어져 나가는 엄청난 아이스쇼를 직접 감상한다는 것을… 심장이 뛰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조건 '여행런'이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아이스 모레노 빙하 빙하 끝자락 빙하 트레킹

2023-08-17

야생 레드베리 예찬

    이맘때(6월말~7월중순)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서면 길을 걸으며  빨갛게 열매 맺은 야생 레드베리를 찾곤 한다.    산책길에는 야생 레드베리 나무가 한 100그루도 넘게 자라고 있다. 베리는 마음이 간절한지 유난히 빨갛게 열매 맺고 눈길을 기다리는 듯 하다.  야생 레드베리는 그로서리에서 파는 레드베리보다 1/5도 안되는 크기지만 나무에서 직접 따 먹을 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오묘한 맛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비타민이 충만해서인지 아니면 이슬에 맺힌 신비한 맛이 주는 기분인지 잘 모르지만 자연이 주는 기막힌 축복의 선물임은 틀림없다.   찬송가 'How Great Art'를 흥얼거리며 아침을 연다.  산책길 끝자락의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다다르면 맨손체조와 요가를 한다. 심호흡을 하며 눈길을 돌리니 시냇물 내려가는 언덕 위로 빨갛게 잘 익은 야생 레드베리가 보인다. 체조를 중단하고 언덕을 타고 내려가다 비탈진 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거주춤으로 일어나 조심스레 손을 뻗어 레드베리를 따서 먹는다.   누군가는 그깟 레드베리를 따려고 목숨까지 걸고 비탈길을 내려가느냐며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데 가치는 충분하다.  퇴근해 저녁 식사 후 집 주변의 베리를 50-60개쯤 따서 물에 헹구어낸다. 한 10개를 먹었을 즈음 아침에 맛보았던 이슬을 머금은 레드베리의 신비한 맛이 더이상 나질 않는다. 일전에 산책길에 피어 오른 깻잎에 관한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이맘때 나의 관심은 온통 베리에 쏠려 있다. 아침에는 레드베리와 블루베리를 꼭 먹는다. 지난 5월에는 블루베리 4뿌리를 사다 산책길에 심어 놓았었다.   매일 열매가 맺히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유심히 들여다 보아도 아직 열매를 맺기에는 나무의 성장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참 신기하게도 이 기막힌 맛의 야생 레드베리를 사슴이나 기타 동물들은 따먹지 않는다. 듬성듬성 있는 이웃들도 관심이 없는지 베리를 따가는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어느 누구도 길쌈도 안하고 가꾸지도 않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불쌍한 생에게 내려 주시는 야생의 만나 열매가 아닐까.   올해도 7월 중순까지 열매 맺는 야생레드베리를 먹으며 혹서의 여름을 무난히 극복하면서 나만의 작지만 행복한 여름을 지내고자 한다.  레드베리 야생 야생 레드베리 산책길 끝자락 블루베리 4뿌리

2023-07-18

한인 유튜버들 이번엔 '치킨집' 홍보

한인 유튜버들의 한인타운 경제 살리기 프로젝트인 ‘힘내라 K타운’이 또 한 번 선한 영향력 나눔에 나섰다. 이번 홍보 업소는 한인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코지코(Kozyko) 순살 치킨집이다.     유튜버 마당쇠 니콜라는 “이번 신청은 로컬 유튜버들이 신청 사연을 검토하던 중 생겨난 가이드라인에 맞춰 선정하게 됐다”며 “반드시 어렵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고객 리뷰가 좋아야 하고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업소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홍보에는 유튜버 캘리라이프, 허당 그레이스, 주비, 아티조아, 프로출장러 앤하우스티비, 엘에이혜나, 딜리전스 마이클 등이 대거 참여했다.     캘리남녀, 아티조아, 주비, 앤하우스티비 등은 코지코의 치킨, 떡볶이, 치킨 샌드위치, 핫도그 등 먹방 영상을 촬영해 솔직담백한 리뷰를 남겼다. 유튜버 허당 그레이스는 ‘힘내라 K타운’ 프로젝트의 요지와 계기를 설명하며 독자들의 프로젝트 이해를 도왔다. 또 남다른 개그 감각으로 시청자들의 재미를 더했다.     허당 그레이스는 “늘 하던 대로 우리의 일상을 담았다”며 “이번 영상 덕분에 평소 하고 싶었던 먹방을 해봐서 즐거웠다. 저희의 작은 노력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유튜버 캘리라이프는 영상을 통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국식 치킨을 소개한다. 또 코지코 업주와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한국식 치킨의 인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LA 로컬 한인 유튜버들이 함께 모여 찍은 코지코 홍보 영상은 조회 수 3300을 넘기며 유튜브 이용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코지코는 편안하고 아늑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코지(Cozy)와 코리아의 코(Ko)를 따 만든 이름이다. 가게는 한인타운 피코 불러바드와 웨스턴 애비뉴 코너에 있다.   한편 코지코는 유튜버들이 올린 영상을 시청하고 오는 손님에게는 아이스크림, 소다, 핫도그 중 하나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홍보 영상은 링크(www.youtube.com/watch?v=Nwx7KOdZcBI&list=PLLiMI49-KrsSkVcZSCUKsg96X7wRL0hTX&index=1)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김예진 기자치킨집 한인 치킨집 홍보 한인타운 끝자락 한인타운 피코

2022-10-25

[살며 생각하며] 참 진리가 주는 자유함

지난 한주 무척 바빴다. 월요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뉴욕주 끝자락에 위치한 Lake Placid에 머물다 금요일 저녁 돌아왔다. 인구 2638명의 작은 산골 마을이 1932년, 1980년 겨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일약 유명 관광지로 발돋움하면서 찾는 이들로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은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는 마지막 겨울 끝자락의 눈 나라였다면 이번은 가을의 찬란한 시작이 거기 있었다.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골마다 흘러간다 맑은 물줄기, 황금빛 논과 밭에 풍년이 왔네. 드맑은 하늘가에 노래 퍼진다. 눈이 닿는 우주 공간에 손이 닿는 구석구석에…”라는 찬송 가사가마음에 와 닿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산 White face를 오른 것이다. Adirondack park의 랜드마크 격인 1483m(4867ft)의 이 산은 4600피트까지 차가 올라간다. 나머지 267피트는 돌산 한 중앙을 꿰뚫고 꼭대기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외곽 등산로를 15분 정도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야호! 하늘과 구름, 굽이굽이 이어진 산과 들판, 호수 사이로 북쪽으로는 몬트리올, 동북으로는 버몬트주가 손에 잡힐 듯 저 앞에 고개를 디민 모습을 굽어볼 수 있다.   다시 336마일을 돌아 토요일,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로 갔다. 수개월 전 예약한 성극 ‘David’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팬더믹 이전 본 작품들도 좋았지만, David는 정말 대단한 영감을 준 명작이었다. 전반부는 인간 다윗의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과정이라며 후반은 실수와 범죄, 참회 그리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다. 명장면을 꼽으라면 끝부분, 다윗이 넘어져 절망 중일 때 화면 가득 비친 구세주 예수의 모습과 함께, 용서의 상징인 듯 온 극장에 가득 흩날리는 흰 눈발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화음들! 2000명 관객은 자신도 모른 채 눈가를 훔치며 아멘, 할렐루야 하고 화답한다.   성극 관람 후 찾은 곳은 ‘아미시 타운’이다. 1720년대 독일에서 건너온 재세례파 극보수주의 신앙촌 격으로 지금도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옛 방식을 고집하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직접 만든 검은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고 4마리의 말이 끄는 쟁기로 땅을 갈며 작은 수확에도 만족해하는 듯하다. 전기도 가능한 직접 사용치 않고, 셀폰 대신 마을 전체가 공용전화 한 대로 비상시를 대비해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자녀들은 마을 내 학교에서 읽기 쓰기 더하기 빼기 정도만 배우고, 주 이동수단은 마차이고 단거리는 바퀴가 두뼘 정도에 지나지 않는 씽씽이를 사용한다.   요즘 세상이 변하고 있다. 금과옥조처럼 알고 지켜왔던 윤리와 도덕 신앙적 기준들이 무너지고 있어 혼란하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교재나, 책을 무심코 펼치다 보면 민망한 내용과 장면들로 가득하고, 상대를 he, she 대신 they로 부를 것을 가르침 받고 그것이 옳다고 알고 있어 답답하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에서 가증하다고 규정한 동성애 문제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당하고, 싫으면 당신들이 떠나라는 항변이 불편한 진실이다.   아미시인! 그들에게 세상은 무엇일까? 참 진리가 주는 자유함을 누리며 작은 불편을 신앙으로 감수하며 평안을 누리는 그들이 오늘 한없이 부럽고 귀한 존재로 느껴진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진리 자유 극보수주의 신앙촌 뉴욕주 끝자락 산골 마을

2022-10-14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세상의 끝, 호수 위에 뜬 동굴

40년 가까이 매일 밥 먹듯 여행하며 살아왔음에도 매번 느끼는 것이 '세상은 넓고 여행할 곳은 많다'는 사실이다.     남미 대륙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파타고니아는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 불리는 곳이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초록 숲, 아직 살아있는 거대한 빙하와 그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호수… 파타고니아는 자연이 오롯이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다. 특히 11~2월의 파타고니아는 바야흐로 꽃 피는 여름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한 하늘, 따사로운 햇볕 아래 야생화가 꽃망울을 '툭툭' 하고 터뜨린다.     파타고니아의 명소로는 바릴로체 캄파나리오 언덕, 토레스델파이네, 푸에르토 나탈레스, 피츠로이산, 모레노 빙하, 마블 동굴을 꼽을 수 있고 바릴로체, 엘칼라파테, 엘찬텐, 푼타아레나스, 땅끝마을 우수아이아가 대표 도시다.     시선을 압도하는 풍광들로 가득한 파타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관 중 하나는 단연 모레노 빙하다. 로스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모레노 빙하는 바다에 둥둥 뜬 빙하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한다. 일단 규모부터가 길이 19마일, 높이 240피트, 두께 560 피트로 압도적이다.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가장 큰 모레노 빙하는 문자 그대로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가늠하듯, 거대한 얼음 평원은 켜켜이 눈이 쌓이고 그 눈이 얼어서 만들어진 시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1981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모레노 빙하는 빙하가 계속 움직이는 신비로움으로 더욱 특별하다. 때때로 빙하들은 '우르르 쾅쾅' 땅이 갈라지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린다. 호수 면과 맞닿은 빙하 끝자락은 거대 빙하에서 떨어져 나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아이젠을 신고 얼음 산을 오르는 미니 빙하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파타고니아의 또 다른 명물로는 주저 없이 헤네랄 카레라 호에 떠 있는 ‘마블 동굴(Marble Caves)’을 꼽을 수 있다. 보트를 타고 잔잔한 호수를 가로지르면 빙하의 압력과 긴 세월 침식작용으로 기묘한 자태를 뽐내는 바위들이 우뚝 서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황홀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동굴 속은 선명한 블루를 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청록 물빛이다. 굴과 터널,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형은 긴 세월 빙하와 파도에 의해 깎여서 형성된 것이다. 호수가 옥색 융단처럼 흐르고, 호수가 마블 터널과 벽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일렁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천국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한 이곳에서는 잡념이 말끔히 사라지고 저절로 힐링이 된다. 그러한 기막힌 세상이기에 여행자들은 남미 대륙 깊숙한 곳에 있는 마블 동굴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호수 동굴 모레노 빙하 마블 동굴 빙하 끝자락

2022-09-15

[살며 생각하며] 사순절에 떠나는 천로역정 3

지난 회에 이어 천로역정의 나머지 이야기다.   ‘아름다운 궁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주인공 크리스천을 기다린 곳은 ‘겸손의 골짜기’였다. 여기서 ‘아블루온’이란 악룡에게 무시무시한 불화살의 공격을 받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이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정, 올가미, 귀신, 괴물들을 만나지만 주의 권능에 힘입어 용케 피한다. 그런 뒤 광야 저쪽 야트막한 언덕에서 앞서 걸어가던 ‘신실’이란 친구를 만나 같이 걸으며 염려, 고통, 여러 유형의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광야를 거의 다 지날 무렵 순례 초기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던 ‘전도자’를 만나 고난의 순간들을 하소연하지만 전도자는 오히려 “아무런 고통 없이 순례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제 광야를 벗어나면 원수들이 죽일 작정을 하고 덤벼들 테고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믿음의 피’를 입증해 보여야 한다”는 무서운 예언을 남긴 채 떠난다.   전도자와 헤어진 두 사람은 이제 광야 끝자락에 위치한 ‘허영의 도시’ 에 이른다. 이 도시는 수천 년 전부터 집, 토지, 지위, 명예, 진주, 보석 같은 허영물을 전시하고 순례자들을 유혹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허영 명품에 조금의 관심조차 기울임 없이 갈 길만 재촉하자 상인들은 ‘입은 모양새나 말씨가 전혀 다르다’며 시비를 걸어 싸움을 유발한 뒤 관가로 끌고 가 ‘폭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겼다. 결국 ‘신실’은 사형 언도와 함께 죽임을 당하고 크리스천만 살아 홀로 걷다 ‘소망’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이후 두 사람은 탐욕, 구두쇠, 돈, 데마에 이어 ‘소금기둥이 된롯의 아내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뒤 그림처럼 아름다운 ‘생명수강’ 도착, 모처럼 긴 휴식을 취한다. 그런 뒤 길을 잘못 들어 ‘절망의 거인성’에서 ‘의심의 감옥’에 갇혀 자살을 종용받지만 품속에 있던 ‘약속의 열쇠’로 감옥 문을 열고 나와 ‘기쁨의 산’에 이르게 된다.   이 산에서 두 사람은 지식, 경험, 경계, 성실 같은 네 목자로부터 풍부한 영적 지식과 경계의 교훈을 얻지만 ‘미혹의 땅’에서 ‘무지’를 만나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또 ‘마법의 땅’에서는 미혹에 빠져 잠시 영적으로 혼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담대히 모든 유혹과 혼란을 극복한 뒤 순례길 마지막 안식처 ‘뿔라의 땅’에 입성, ‘주의 신부’ 된 기쁨과 함께 ‘주의 만찬’에 초대되어 떡과 잔을 나눈다. 그리고 저 멀리눈 앞에 펼쳐진시온의 언덕을 바라보며 새 힘을 받아 성문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죽음의 강’조차 가뿐히 건넌다. 그리고 빛나는 영들(천사)의 환영 속에 당당히 천성에 입성하는 것으로 천로역정의 대단원은 막을 내린다.   2000년 전 예수는 죽임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예루살렘에 입성, 어제 ‘성금요일’ 밤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오늘 유대교 안식날, 실패자의 모습으로 무덤에 갇혀 지냈다. 그리고 3일만인 내일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사실 천국은 ‘크리스천’ 같이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의 공로로 가는 곳이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작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을 통해 좁은 문이나 십자가보다는 ‘허례와 위선’ 같이 넓고 평탄한 길만 탐하는 오늘날 우리 신앙 자세를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천로역정 사순절 주인공 크리스천 광야 끝자락 광야 저쪽

2022-04-1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의 사랑, 나의 몽당

나의 사랑, 나의 몽당       깎아지고, 부러지고, 닳아지고 몽땅 사라지고 남은 몽당     모양이 왜 그래 그래 내 모양이 좀 그래 인생이 그래     누군가 흔들어야 깨어날 짧아진 몽당     손에 잡히지 않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밤은 내리고 아침이 핀다 겨울과 봄 사이 수천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사라진 길이만큼 패이고 깎인 구불한 흔적을 벗는다     간이역에서 기차를 탄다 차창 따라오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사라진 시간 낯선 간이역에 기차는 서고 몇은 내리고 몇은 탄다 여행 같은 삶, 삶 같은 여행 나타남과 사라짐 사이로 벌써 끝자락, 몽당     빛 바랜 활동사진처럼 인생이 왜 그래 인생이 그래, 그런 거야     엄지와 인지를 모아 세운다 깃털같이 가벼워져 이젠 날아갈 날도 되었지   버려진 것은 하나도 없지 세상 어느 구석 삶의 어느 순간 스며 석양을 몰고 간 밤 하늘처럼 푸르고 푸른 색 가득 반짝이다 사라진 삶의 메타포처럼 몽땅 사라지고 남은 몽당 온 몸을 하늘로 불 사른   나의 사랑, 나의 몽당이여         서랍을 정리하다 몽당연필 한 자루를 발견했다. 까만색 4B Tombow 미술 연필이다. 거의 집을 수 없는 작은 연필 끝에 볼펜 자루를 끼워 그 기능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작은 몽당연필이다. 한 뼘이나 될 길이가 깎이고 닳아져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집을 만큼이나 작아졌다. 수 없이 많은 밑그림을 그렸고 숨겨진 모양과 명암을 그리며 소중히 사용했던 손 때 묻은 연필이다. 그림의 시작은 밑그림부터 시작되기에 이 연필은 그림의 시작이었고, 아이디어의 사유였고, 그림의 구성이었다. 깎이고, 부러지고, 닳아버린 모든 길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그림의 뼈대로, 요소로 남아 있음을 믿고 싶다. 지금은 작고 쓸 모 없는 몽당연필 이지만 닳아 없어진 길이만큼 감당한 그의 존재는 귀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끔 양로원을 방문한다. 지금은 기력도 몸도 쇠하셔서 휠체어에 의지하시는 몸이 되었지만 그분들을 뵐 때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옴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식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리며 밤낮으로 수고하셨을 노고에 머리가 숙여진다. 주름진 얼굴이며 굽은 허리에 연약해진 모습이지만 지난 시간 남겨 놓은 아름다운 씨앗들은 세상의 곳곳에서 다시 꽃 피울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우리는 기차를 기다리고, 어딘가에서 다가오는 기차의 울음에 귀를 기울인다. 기적이 울리며 서서히 간이역을 향해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우리는 짐을 꾸린다. 우리는 서로의 거리에서 다가 가기도 하지만 멀어지기도 한다. 다정해지기도 하지만 미워하기도 한다. 철로의 뻗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결코 한 길로 만날 수는 없다. 차창에 부딪혀 오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고 겨울과 봄을 맞이 하기도 한다. 어느 낯선 간이역에 기차가 선다. 몇몇은 굽은 허리로 내리고 몇몇은 짐을 들고 기차에 오른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 여행같이 흐르는 삶은 노을을 밤하늘로 사라지게 한 삶의 메타포 아닌가. 몽땅 닳아서 사라진 시간이 지난 후 마주하는 추억이며, 그림이며, 사랑이 된 몽당이 아니겠는가.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사랑 몽당 끝자락 몽당 나무 사이 지난 시간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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