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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카레와 김치찌개의 불편한 동거

지금은 한국에 사는 어느 분이 오래전 미국에서 유학할 때 이야기다. 한국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롭게 공부할 때,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인도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던 인도 학생 둘이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머물 곳이 필요했다.   자신도 가난한 유학생이지만,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인도 학생들을 돕기 위해 한국 유학생이 자기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자고 손을 내밀었다. 잠잘 곳 없는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마음으로 이들을 불러들였지만, 그때부터 카레와 김치찌개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국 학생에게는 카레 냄새가 인내력의 시험장이었고, 비록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집주인의 김치찌개 냄새는 인도 학생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하루는 한국 학생과 인도 학생들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인도 학생들이 밥을 카레에 버무려 조몰락거리다 까무잡잡한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는 모습에 한국 학생은 그만 밥맛이 떨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도 학생들을 집에 들인 사람도 자기고, 이왕 참기로 했으니 조금만 더 참자며 두 눈을 질끈 감고는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김치찌개를 떠서 먹을 때였다. “너희 한국 사람들은 정말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으로 음식을 먹는구나.” 인도 학생의 갑작스러운 말에 하마터면 김치찌개가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린가? 손으로 밥을 주워 먹는 사람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품위 있게 음식을 떠서 먹는 사람에게 할 말인가? 그것도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 어떻게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 사람이 왜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지 따져 묻자, 인도 학생들이 조목조목 이유를 댔다.     첫째, 김치찌개처럼 뜨거운 음식을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입을 데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인도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의 온도를  재고, 필요하면 손으로 만져서 적당히 식혀 먹으니 얼마나 합리적이냐고 했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음식의 질감을 느끼지 못한 채 허겁지겁 먹기에 바쁘다고 하면서, 밥알과 카레가 만나서 일으키는 그 부드럽고 오묘한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먹는 인도 사람들의 예술적인 식사법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야만적으로 먹는다고 했다.   셋째, 한국 사람들이 식사 때마다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이전에 틀림없이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것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입에 들어갔던 것을 도로 자기 입에 넣을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인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숟가락인 자기 손가락을 사용하기에 위생적이라고 했다.     카레와 김치찌개만 불편한 동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한 사람은 춥다고 옷을 껴입고, 어떤 이는 부채질을 하면서 불편한 동거를 한다.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사람과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한집에 사는 것도 불편한 동거다.   사람들은 불편한 동거인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세상 사람이 다 나와 똑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누군가에는 불편한 동거인이다. 불편하지만 서로 참으며 살다 보면 정도 들고 불편함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불편한 동거인끼리 서로 보듬고 살아가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김치찌개 카레 한국 유학생 김치찌개 냄새 한국 학생

2023-10-04

김치찌개 하나에도 행복했던 ‘베풂의 삶’

      와싱톤중앙장로교회(담임목사 류응렬) 블레싱여성예배에 전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유미 호건 여사가 방문해 특별 간증을 나누었다.    지난 30일,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이날 간증에서 호건 여사는, 8남매의 막내딸로 출생해 귀하게 성장한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안고 스무살에 도미해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싱글맘으로 세 딸을 돌보며 버텨냈던 시간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풀어갔다.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화가의 꿈을 놓지 않고 미대에 진학해 전시회에서 마흔네살의 노총각이던 현 남편 래리 호건(전 메릴랜드 주지사)을 만나 결혼하게 된 사연과 주지사 선거운동 에피소드, 남편의 암 투병기에 대한 진정성 담은 고백으로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호건 여사는 “‘언젠가는 반드시 화가가 되겠다’는 확신에 찬 다짐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며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가 한인 여성의 파워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집회에 참석한 K씨는 “나보다 더 많은 나이에 꿈을 이루신 것을 듣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면서 오랫동안 마음 속에 접어 두었던 꿈을 다시 한번 꺼내 볼 수 있는 행복한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김치찌개 행복 김치찌개 하나 메릴랜드 주지사 주지사 선거운동

2023-03-31

[살며 생각하며] 있기? 없기?

 요사이, 사람들이 더 힘들어진 건 분명하다. 멀쩡하던 사람이 공황장애가 생기고, 강박증, 우울증을 호소한다. 내가 일하는 케어플러스의 상담자 대기 명단은 길어만 간다. 이런 요즘, 계속 감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어 우울과 불안을 줄여주는 세로토닌 활성화에, 감사보다 더 좋은 약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감사가 어렵다면, ‘비교’를 처방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 중에 법륜 스님이 있다. 삶의 자세와 인간관계에 관한 이 분의 지혜가 보통이 아니다. 완전 인지행동치료를 하신다. 유머도 있으셔서 이분의 즉문즉설을 한동안 차에서 들으며 다녔다. 한 번은 감사의 기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들이 전교 일등을 놓쳤다고 속상해하는 엄마가 있다. 그 엄마에게 다른 엄마가, 자기는 애가 꼴등만 면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다. 다른 엄마는 애가 매일 집에서 게임만 한다며, 꼴등이라도 학교만 갔으면 좋겠다고 탄식이다. 또 다른 엄마는, 학교는 안 가도 집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자기 아이는 소년원에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자 다른 엄마가 소년원에 있어도 건강하니 감사하지 않냐고, 우리 아이는 지금 병원에 있다며 운다. 그때, 마지막 엄마가 하는 말, 여러분은 그래도 아이가 살아 있잖아요. 우리 아이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답니다. 갑자기, 우리 아이가 문제아가 되어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엄마가 감사해진다.     사람들이 글쎄 난 힘든 일이 별로 없는 줄 안다. 매일 이리 생글생글 웃고 다니니. 남편 빼고 다 있는 사람이 뭐가 힘드냐고 타박을 주기까지 한다. 근데 나, 힘들 때 많았고, 지금도 있다. 대학원 상담 공부 첫 학기 마치고 나오던 밤, 여보, 나 이번 학기 끝났어 이렇게 전화하면, 와우, 당신 수고했네, 고생했어, 이렇게 받아줄 남편이 없다는 사실에, 전화기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던 강의실 밖 가로등 빛은 왜 그리도 서러웠던지. 비행기에서 가방도 좀 척 얹어주고 맘 편히 함께 여행 다닐 남편이 없어, 키도 안 큰 내가 낑낑대며 올릴 때, 이런 거 나 짜증 지대로 났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내가 좀 달라졌다. 비교라는 약을 나에게 처방하면서부터다. 대상은 남편이다. 좀 어이가 없긴 하다. 세상에도 없는 사람과 뭔 비교를. 그런데 또 가슴이 스멀스멀 불행해지려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해 봐. 물론 그는 이사한 천국에서 참으로 행복하겠지. 그래도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못 하잖아. 이리도 보들보들한 손주 아가들 볼에 키스하는 것도, 꼬옥 안아주는 것도, 깊어가는 가을 햇살 아래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도, 맛있게 끓여진 김치찌개 뚜껑을 여는 것도, 너만이 하고 있잖아. 이 모든 행복이 덤으로 느껴진 순간 남편에게 미안하면서,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걍 감사해졌다.     앗, 지금 남편이 뭐라고 한다. 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몰라서 그래. 나 지금 무지무지 행복함. 그리고 나 원래 커피, 김치찌개,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함, 하하하.     감사할 거 있기? 없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제로와 비교하면 아무리 작은 것도 크다. 없는 것과 비교하면 있는 모든 것이 플러스다. 감사를 가능케 하는 인생의 부등식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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