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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있기? 없기?

 요사이, 사람들이 더 힘들어진 건 분명하다. 멀쩡하던 사람이 공황장애가 생기고, 강박증, 우울증을 호소한다. 내가 일하는 케어플러스의 상담자 대기 명단은 길어만 간다. 이런 요즘, 계속 감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어 우울과 불안을 줄여주는 세로토닌 활성화에, 감사보다 더 좋은 약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감사가 어렵다면, ‘비교’를 처방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 중에 법륜 스님이 있다. 삶의 자세와 인간관계에 관한 이 분의 지혜가 보통이 아니다. 완전 인지행동치료를 하신다. 유머도 있으셔서 이분의 즉문즉설을 한동안 차에서 들으며 다녔다. 한 번은 감사의 기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들이 전교 일등을 놓쳤다고 속상해하는 엄마가 있다. 그 엄마에게 다른 엄마가, 자기는 애가 꼴등만 면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다. 다른 엄마는 애가 매일 집에서 게임만 한다며, 꼴등이라도 학교만 갔으면 좋겠다고 탄식이다. 또 다른 엄마는, 학교는 안 가도 집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자기 아이는 소년원에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자 다른 엄마가 소년원에 있어도 건강하니 감사하지 않냐고, 우리 아이는 지금 병원에 있다며 운다. 그때, 마지막 엄마가 하는 말, 여러분은 그래도 아이가 살아 있잖아요. 우리 아이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답니다. 갑자기, 우리 아이가 문제아가 되어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엄마가 감사해진다.  
 
사람들이 글쎄 난 힘든 일이 별로 없는 줄 안다. 매일 이리 생글생글 웃고 다니니. 남편 빼고 다 있는 사람이 뭐가 힘드냐고 타박을 주기까지 한다. 근데 나, 힘들 때 많았고, 지금도 있다. 대학원 상담 공부 첫 학기 마치고 나오던 밤, 여보, 나 이번 학기 끝났어 이렇게 전화하면, 와우, 당신 수고했네, 고생했어, 이렇게 받아줄 남편이 없다는 사실에, 전화기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던 강의실 밖 가로등 빛은 왜 그리도 서러웠던지. 비행기에서 가방도 좀 척 얹어주고 맘 편히 함께 여행 다닐 남편이 없어, 키도 안 큰 내가 낑낑대며 올릴 때, 이런 거 나 짜증 지대로 났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내가 좀 달라졌다. 비교라는 약을 나에게 처방하면서부터다. 대상은 남편이다. 좀 어이가 없긴 하다. 세상에도 없는 사람과 뭔 비교를. 그런데 또 가슴이 스멀스멀 불행해지려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해 봐. 물론 그는 이사한 천국에서 참으로 행복하겠지. 그래도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못 하잖아. 이리도 보들보들한 손주 아가들 볼에 키스하는 것도, 꼬옥 안아주는 것도, 깊어가는 가을 햇살 아래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도, 맛있게 끓여진 김치찌개 뚜껑을 여는 것도, 너만이 하고 있잖아. 이 모든 행복이 덤으로 느껴진 순간 남편에게 미안하면서,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걍 감사해졌다.  
 
앗, 지금 남편이 뭐라고 한다. 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몰라서 그래. 나 지금 무지무지 행복함. 그리고 나 원래 커피, 김치찌개,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함, 하하하.  
 
감사할 거 있기? 없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제로와 비교하면 아무리 작은 것도 크다. 없는 것과 비교하면 있는 모든 것이 플러스다. 감사를 가능케 하는 인생의 부등식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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