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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카페] 입과 귀가 함께하는 소통

2024년은 불통의 시간이었다. 견고한 불통과 불통의 싸움박질 속에서 소통의 ‘말길’은 끊어지고, 다른 생각과 의견은 난타당하고 사라졌다. 야당은 입법으로, 여당은 재의 요청으로, 대통령은 재의권 발동으로 불통했다. 끈질긴 맞불 불통의 융단폭격으로 국민은 충분하게 다사다난하고 절절하게 고통스러웠다. 신기한 건 정치인들이 국민과 나라의 앞날을 앞세울수록 불통의 골짜기는 깊어 가고, 국민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거였다. 그런 불통의 끝은 결국 어이없는 비상계엄 소동이었다.     사실 불통하기는 쉽다. 상대를 무시하고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상대가 못하는 점만 찾아내 규탄하면 된다. 잘못된 것은 상대 탓으로 돌리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듣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입은 열고 말을 듣는 귀는 닫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은 쉽지 않고 어렵다. 상대의 의견을 잘 듣고 반영하며 상대와 보조를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며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려 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자신의 귀를 활짝 열어 놓은 채 사려 깊게 생각하고 극단의 지지층만이 아닌 모든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지혜로운 말을 고르려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소통은 어렵고 불통은 쉬운 것이다.   불통의 어두운 힘에 눌린 속수무책의 무력감 속에서 “사람은 사람답게 소는 소답게”라는 말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상대를 인정하는 긍정과 배려가 있는 고결한 말이었다. 이 말은 전남 장흥군 대흥읍에 소재한 ‘풀로만 목장’의 조영현 대표의 소신이다. 조 대표는 지난달 24일 ‘창립 멤버 소’ 은퇴식을 열었다. 2011년 11월 서울 생활에서 귀농하며 마련한 암송아지 12마리 중에서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는 3마리의 고마움을 기리는 자리였다. “목장을 위해 큰일을 했던 소들에게 신세를 갚으려 한다.” 은퇴 소는 그동안 경제 동물로 일해 오다 반려동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새끼를 낳지 못하는 암소의 예정된 코스인 도축장 대신 초원에서 새끼들과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며 감사할 줄 알고 공생하라는 조 대표의 언행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우리 공동체가 소통과 공생의 삶에서 많이 멀어졌단 반증일 것이다.   입만 사용하고 귀의 역할을 무시하는 소통은 불량품이 될 수밖에 없다. 소통의 출발점인 경청은 귀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경청이 없으면 소통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경청의 부재가 지속되면 확증편향과 진영 논리가 무성해지고 거짓이 공공연하게 여론이 되고 사회의 구조로 정착한다. 경청은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말을 하는 상대에 대해 귀를 기울여 듣고, 주목을 기울여 듣고,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노력을 갖추어야 한다(『Listening』, Wolvin & Coakley). 듣기·주목·이해의 3개 차원이 각각 그리고 결합적으로 작동해야 경청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의 100년이나 전인 1926년에 랜킨(Rankin)에 의해 최초로 실시된 기념비적인 조사는 사람의 언어 행위(듣기·읽기·쓰기) 중에서 ‘듣기’가 가장 빈번하고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 행위임을 밝혔다. 이후의 연구에서도 경청의 중요성은 지속해서 확인되었다.   경청이 언어 행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소통하면 의례적으로 떠올리는 ‘말하기’보다 ‘진지한 듣기’를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경청은 자기만 옳은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여 대화와 타협을 통한 소통의 가치를 일깨운다. 자신의 생각은 소중하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고 소통을 통하여 ‘상대와 나 사이의 의미(meaning between people)’를 공유하고 공생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 입과 귀가 함께 하는 소통이 소중한 이유이다. 김정기 /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소통카페 귀가 소통 맞불 불통 사실 불통하기 언어 행위

2024-12-30

[우리말 바루기] 배가 땡길까? 땅길까?

얼마 전 급히 먹은 음식이 잘못됐는지배가 뭉치고 잡아당기는 듯한 복통이 일어났다. 포털 사이트에서 증상에 대해 검색해 보니 ‘복통’과 더불어 ‘배 땡김’이란 주제어가 많이 나왔다.   이렇듯 “저녁 먹은 뒤부터 배가 살살 땡기고 아프다” “너무 웃어서 배가 땡긴다” 등처럼 배가 단단하게 되거나 팽창하게 될 때 ‘땡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땡기다’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예 나와 있지도 않다. 왜 그럴까? ‘땡기다’가 아니라 ‘땅기다’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다.  따라서 ‘배가 땅기고 아프다’ ‘배 땅김’ 등으로 고쳐 써야 맞는 표현이 된다.   “피부가 건조한지 얼굴이 너무 땡긴다” “다리 상처가 땡긴다”에서의 ‘땡기다’ 역시 ‘땅기다’로 바꾸어야 한다.   그럼 “요즘 영 입맛이 땡기지를 않는다”에서의 ‘땡기다’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여기서의 ‘땡기다’는 ‘땅기다’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은 ‘당기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영 입맛이 당기지를 않는다”고 해야 한다. ‘당기다’는 물건이나 시간 등을  앞으로 옮길 때도 쓰인다. “방아쇠를 땡겼다” “귀가 시간을 땡겼다”에서의 ‘땡겼다’도 ‘당겼다’로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귀가 시간 다리 상처 포털 사이트

2023-10-26

[우리말 바루기] ‘귓볼’일까, ‘귓불’일까

부처님을 형상화한 석가모니상은 만든 이에 따라 모양이 각기 다르다. 그런데 석가모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신체 부위가 하나 있다. 바로 귀다. 두툼하고 길게 늘어진 귀가 석가모니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귓바퀴 아래에 붙어 있는 살을 뭐라 불러야 할까?   ‘귓볼’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뺨’을 의미하는 ‘볼’을 연상해서인지 ‘귀’와 ‘볼’이 만나 ‘귓볼’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귓볼’이 아니라 ‘귓불’이 바른말이다. “귓불이 참으로 복스럽게 생겼다”처럼 ‘귓불’이라고 해야 한다.   귀와 관련해서는 ‘귓밥’도 잘못 쓰기 쉬운 단어다. 귓구멍 속에 낀 때인 ‘귀지’를 일반적으로 ‘귓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귓밥’은 귓바퀴 아래쪽에 붙어 있는 살을 가리킨다. 즉 ‘귓밥’과 ‘귓불’은 의미가 같은 동의어라 할 수 있다. 강원·전남·제주 등에서는 ‘귀지’를 ‘귓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사투리일 뿐이다.   그럼 귀지를 파내는 도구는 뭐라 불러야 할까. ‘귀지개·귀쑤시개·귀후비개’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귀이개’가 바른 표현이다. 귀이개는 ‘우비다·후비다’의 옛말인 ‘우의다’가 붙은 ‘귀우개(귀+우의+개)’가 변한 말이다. 따라서 “귀이개로 귀를 팠다” 등과 같이 표현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귓볼 귓불 귀가 석가모니상의 귓바퀴 아래쪽 신체 부위

2023-09-18

[우리말 바루기] 식욕이 땡긴다고요?

“요즘 입맛이 땡겨서 뭐든 맛있게 느껴진다” “뭘 봐도 식욕이 땡기니 다이어트 하기가 너무 힘들다” 등과 같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입맛이 돋우어진다고 표현하고 싶을 때 ‘땡기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땡기다’는 잘못된 표현으로 ‘당기다’가 바른말이다. “입맛이 당긴다” “식욕이 당긴다” 등처럼 써야 한다.   ‘당기다’는 입맛이 돋우어진다는 의미 외에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린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호기심이 당기는 이야기” “어딘지 그 사람에게 마음이 당긴다”가 그런 경우다.   ‘당기다’는 “숨을 죽이고 방아쇠를 당겼다”에서와 같이 물건을 어떤 방향으로 오게 한다는 의미로도 쓸 수 있다. “이달부터 귀가 시간을 당겼다”에서처럼 시간이나 기간을 앞으로 옮기다는 뜻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가을이 되니 건조해서 얼굴이 땡긴다”에서와 같이 몹시 단단하고 팽팽해진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도 ‘땡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이때는 ‘땡기다’가 아니라 ‘땅기다’가 맞는 말이다. “한참을 웃었더니 수술한 자리가 땅겼다”와 같이 쓰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하나. “그의 초라한 모습이 내 호기심에 불을 ○○○”의 빈칸에는 ‘당기다/댕기다/땅기다/땡기다’ 중 어떤 낱말을 넣어야 할까.   정답은 ‘댕기다’. 불이 옮아 붙는다는 의미의 단어는 ‘댕기다’이다. 정리하면  사물이나 마음, 입맛 등을 끌어당긴다는 의미를 나타낼 땐 ‘당기다’, 팽팽해지다는 ‘땅기다’, 불과 관련된 표현엔 ‘댕기다’를 쓰면 된다. ‘땡기다’는 사전에 아예 없는 말이다.우리말 바루기 식욕 마음 입맛 요즘 입맛 귀가 시간

2023-06-23

[우리말 바루기] 배가 땡길까? 땅길까?

얼마 전 급히 먹은 음식이 잘못됐는지 복통이 일어났다. 포털 사이트에서 증상에 대해 검색해 보니 ‘복통’과 더불어 ‘배 땡김’이란 주제어가 많이 나왔다.   이렇듯 “저녁 먹은 뒤부터 배가 살살 땡기고 아프다” “너무 웃어서 배가 땡긴다” 등처럼 배가 단단하게 되거나 팽창하게 될 때 ‘땡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땡기다’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예 나와 있지도 않다. 왜 그럴까? ‘땡기다’가 아니라 ‘땅기다’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다.  따라서 ‘배가 땅기고 아프다’ ‘배 땅김’ 등으로 고쳐 써야 맞는 표현이 된다.   “피부가 건조한지 얼굴이 너무 땡긴다” “다리 상처가 땡긴다”에서의 ‘땡기다’ 역시 ‘땅기다’로 바꾸어야 한다.   그럼 “요즘 영 입맛이 땡기지를 않는다”에서의 ‘땡기다’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여기서의 ‘땡기다’는 ‘땅기다’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은 ‘당기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영 입맛이 당기지를 않는다”고 해야 한다. ‘당기다’는 물건이나 시간 등을  앞으로 옮길 때도 쓰인다. “방아쇠를 땡겼다” “귀가 시간을 땡겼다”에서의 ‘땡겼다’도 ‘당겼다’로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에 불을 땡겼다”에서의 ‘땡기다’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불이 옮아 붙는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댕기다’가 맞는 표현이다. 따라서 “그의 마음에 불을 댕겼다”로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귀가 시간 다리 상처 포털 사이트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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