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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유의 방과 짙은 안개구름

지난해 한국 여행 때는 전국 여러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녔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과 원주의 뮤지엄 산(SAN), 환기미술관, 제주도 도립 김창열 미술관 등이었다.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장 대표적 전시실로 내세우는 ‘사유의 방’은 국보로 지정된 삼국시대의 금동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분을 모시기 위해 만든 독립된 방이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두 점이 특별히 설계된 넓은 공간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사유의 방’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박물관의 소개를 한 구절 옮겨 본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14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앞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치유와 평안이 다가옵니다.”   어둠을 통과하는 진입로,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반짝이는 천장 등 추상적이고 고요한 전시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집중적으로 감상하게 된다. 두 분 부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신앙의 경지를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지난해 400만명을 넘었는데, ‘사유의 방’의 인기도 상당한 몫을 했다고 한다. ‘사유의 방’이 ‘불멍’의 공간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다. ‘불멍’이란 ‘불상을 멍하게 바라보는 일’이라고 한다. 짙고 아름다운 침묵 속에서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에 빠져들면,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의 내면과 대화를 하게 되고 위로와 치유를 받는 것이다. 어찌 보면, 거칠고 황폐한 정신적 불모지에서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에게 오아시스 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원주의 뮤지엄 산(SAN)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SAN은 산(山)을 의미하기도 하고 Space, Art, Nature의 머리글자를 딴 명칭으로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라는 뜻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빛으로 대표되는 개성적인 건축물과 주변의 산, 물, 정원, 돌, 빛 등의 자연경관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그리고 다양한 미술작품, 정원과 산책로, 개관 5주년 기념으로 건설한 ‘명상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마침 내가 찾았을 때는 비가 알맞게 내렸다. 주위의 산들이 온통 자욱한 운무(안개구름)에 휩싸여, 정말 아름다웠다.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설계자인 안도 다다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큰 행운이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그 신비로운 풍경을 떠올리면, 엉뚱한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지금 선거를 앞두고 시끄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아슬아슬한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터무니없이 목소리만 요란한 정치인들은 의무적으로 ‘사유의 방’을 찾아 ‘불멍’을 하고, 비 내리는 산허리를 감싸는 운무에 젖어보고, 이성을 제대로 되찾은 다음에 정치를 하기 바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안개구름 사유 금동 반가사유상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환기미술관 제주

2024-02-22

[수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한국에 와서 좋은 것 중 하나는 문화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더위와 세찬 장맛비가 번갈아 이어지는 7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우울함을 달래려고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이왕 간 김에 상설관까지 둘러보느라고 온종일 박물관에서 보냈다.     특별관에서는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작가의 작품 52점을 전시하고 있다.  영국 뿐 아니라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상주의까지 유럽 회화의 흐름을 살필 수 있었다. 이번 전시 명은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이다. 미술의 주제가 신화 속 신으로부터 사람을 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렘브란트, 라파엘로, 티치아노, 반다이크, 카라바조, 푸생, 벨라스케스, 고야, 르누아르, 고갱, 반고흐, 마네, 모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양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보며 그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더구나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전쟁 중 작품을 지키기 위해 굴속에 숨기기도 했다는 사연에 더욱 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도마뱀에 물린 소년’은 카라바조의 작품이다. 그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얼마 전 무료해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Arte’라는 방송에서 그에 대한 특집방송을 보게 됐다. 거기서 본 그림이라 더욱 반가웠다. 한 소년이 꽃병의 장미 쪽으로 손을 뻗다가 도마뱀에 물렸다. 깜짝 놀라는 극적인 순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그림이다. 해설가는 “카라바조가 이 그림의 주제를 무엇으로 정하고 그렸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아름다운 사랑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감정표현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혹자는 “짧은 감각적 쾌락 뒤에 숨어 있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소년의 귀에 꽂힌 장미와 꽃병의 꽃 역시 곧 시들어 사라질 덧없음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그래, 사랑은 짧고 아픈 거지!     이번 전시회 포스터는 ‘레드 보이’로 알려진 ‘찰스 윌리엄 램튼의 초상화’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토머스 로렌스의 작품이다. 귀한 집 도련님 같은 하얗게 빛나는 얼굴과 눈빛으로 유명하다. 그림 속 소년의 나이는 예닐곱 살인데 열세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처음으로 우표에 실린 그림이기도 하다. 빨간 옷 입은 소년이 너무 예뻐서 박물관 상품관에서 하나 사 왔다.     세시간 여나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들을 감상했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 2층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기운을 차린 후 그냥 집에 가고 싶었으나 언제 또 오겠나 싶어서 상설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한국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물 만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유물이 다 귀하지만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 유물 중 최고 걸작이다.     ‘반가’란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편 무릎에 얹은 자세를 말한다. 두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 문화재를 대표하는 수퍼 스타이기도 하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신라시대 유물전에서 이 반가사유상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 전시회 알림 포스터의 표지모델로 등장시켰을 정도이다.   반가사유상은 현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상념에 잠긴 미륵보살이다. 왼쪽 무릎 위에 오른발을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미소가 압권이다.  “모나리자를 울려버린 반가사유상의 미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붓으로 미소를 그렸지만 반가사유상의 제작자는 쇠로 미소를 만들었다” 등 세계의 조형미술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라고 인정한 조형물이다.  어떤 이는 위로 받고, 어떤 이는 평온을 느낀다는 그 미소는 어디서 왔을까?!     반가사유상은 단독 전시할 정도로 특별대접을 받는다. 전용 전시실인 ‘사유의 방’을 따로 마련하여 전시하고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우리 박물관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함이다. 2021년 11월, 전시가 처음 시작되자마자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전시된 유물도 훌륭하지만, 박물관 자체에도 큰 감동을 하였다. 지하철과 연결된 넓은 공원과 정자, 보신각 종이 있으며 건물 입구에는 식당, 카페, 편의점 등도 있다. 건물 안에는 특별전시관과 상설전시관, 어린이 박물관, 상품관, 푸드 코트, 카페도 있다. 전시실에는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온종일 있어도 아무런 불편 없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와 여러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며 일곱 번에 걸쳐 이사했던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름도 조금씩 바뀌고 장소도 창경궁, 덕수궁, 중앙청, 남산, 경복궁 등으로 옮겨 다녔다. 현재의 박물관은 2005년 10월, 주한 미군이 용산기지 골프장을 반환하여 조성한 용산가족공원에 신축 개관한 것이다.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박물관리고 한다.  한국에 그렇게 훌륭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로 초대 박물관장(덕수궁 시대)인 김재원 씨는 여학교 동기의 부친이다. 25년간 장기 재직하며 한국전쟁 당시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을 배에 실어 오키나와에 피신시켰다고 한다. 그 동창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덕에 그나마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게 됐다”고. 이전에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설립됐기 때문에 꽤 많은 유물이 일본인에 의해 반출됐다고 한다. 그 친구의 여동생인 김영나 전 서울대 교수는 11대 박물관장을 지내 부녀 관장으로 기록에 남았다.     관람객 중에는 연인, 친구,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간혹 우리 같은 노인도 있고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보였다.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매일 뉴스에서 악에 받친 사람들만 보다가 그런 모습이 신선했다, 아! 한국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게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모르고, 다른 하나는 자기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곳에서 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누가 봐도 잘사는 나라이다.  그런데 왜 맨날 주먹을 불끈 쥐고 시위를 하는가? 이유가 있겠지만 공든 탑이 무너질까 걱정된다.     푹푹 찌는 장마철에 쾌적한 박물관에서 명화도 감상하고 한국의 국보와 유물도 관람하며 알차게 보냈다. 마음이 뿌듯한 하루였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이번 전시회 박물관 상품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2023-08-10

[시 론] 더욱 교묘해진 중국의 한국사 왜곡

중국국가박물관의 ‘한국 고대사 연표 왜곡’ 사건이 최근 한국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그동안 한·중·일 3국은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2년마다 공동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중국국가박물관이 지난 7월 26일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을 개막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과 함께 고구려와 발해가 포함된 연표〈표 오른쪽〉를 제공했는데, 중국은 이 부분을 임의로 삭제한 한국 고대사 연표〈왼쪽〉를 전시했다. 상대국이 제공한 자료를 중국 측이 제멋대로 수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국제 규범 위반이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도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중국의 역사 왜곡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하더라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중 대사관 등을 통해 치밀하게 현장을 미리 점검했어야 했다. 중국이 국제 규범을 지키리라 믿었던 것 같은데, 중국은 국제적 신의를 저버리고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의도에 따라 이번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중국이 2002~ 2007년 추진한 ‘동북공정’을 떠올린 이들이 많을 것이다. 동북공정의 이론적 토대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다. 중국은 1949년 10월 정부 수립과 함께 많은 소수 민족을 편입했다. 중원 왕조만 중국사로 설정하는 종전의 화이론(華夷論)에 따른다면 수많은 소수 민족의 역사를 독립 역사로 다뤄야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중국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고안한 뒤 무수한 소수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했다.   다만 중국은 1980년대까지는 북·중 관계를 고려해 고구려사를 조선사(한국사)로 인정했다. 그런데 1990년대 북한이 체제 위기로 내몰리자 고구려사에도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적용해 중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추진했다. 이때 중국은 정부의 지원 아래 고구려사 관련 연구소를 대거 설치하고 전문가를 양성해 연구 기반을 다졌다.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고구려사 왜곡을 그만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2003년 동북공정이 알려지며 중국의 역사 왜곡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교육부는 2004년 초 고구려연구재단(2006년 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을 설립하며 대응했다. 그해 8월 한·중 양국 외교부는 5개 항으로 된 구두 합의를 발표했다. 그런데 한·중 외교 마찰이 잠잠해지자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고, 정부 지원도 대폭 축소됐다.   고구려연구재단에서 예닐곱을 헤아리던 고구려 전공자가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에는 2명만 남았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재단 예산은 30%가량 삭감됐다니 연구원이 퇴직해도 충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측의 대응 역량이 이 정도라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중국의 역사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또 당할 것이다. 정부 여당이든 거대 야당이든 정기국회에서 재단 예산을 원상 복구하고, 재단은 연구 인력을 충원해 대응 역량을 충분히 갖춰야 할 것이다.   차제에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은 국립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기를 제안한다. 아차산 일대나 임진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을 잘 활용하면 야외 전시관까지 갖춘 번듯한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도 디지털 영상으로 전시할 수 있다. 국립고구려박물관은 세계를 향해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당당하게 알리는 발신처가 될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외교부·교육부는 중국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학계·언론계와 협력해 유기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사건도 국립중앙박물관과 외교부가 긴밀하게 협조했다면 예방했을 것이다. 중국 측에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답게 행동하라고 엄중히 촉구해야 한다. 시진핑 총서기의 말을 인용해 이번 전시회 개막사에 실린 ‘평등과 호혜의 외교 자세’를 중국이 제대로 지키면 된다. 그 출발점은 상대국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여호규 /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시 론 중국 한국사 고구려사 왜곡 역사 왜곡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2022-10-02

[J네트워크] 사유의 방, 공간의 힘

“거기 가보셨어요?” “네, 드디어 저도 다녀왔습니다.”   요즘 모두 가보려 한다고 소문난 곳이 있습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 전시관 얘기입니다.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상설전시관 2층에 새로 마련된 이 방엔 오로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국보 예전 번호 제78호, 제83호)만 별도로 전시되고 있는데요, 지난해 연말까지 벌써 이곳을 다녀간 관람객이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이 본래 박물관 소장품이었는데 새삼 왜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까요. 전시 방식을 완전히 바꾼 기획과 섬세하게 설계된 공간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관람객은 예상을 깬 ‘사유의 방’ 크기(440㎡)에 먼저 압도되고, 기존 박물관 전시실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놀라게 됩니다. 마치 촛불을 들고 들어가 만나는 토굴처럼 어둡고, 아늑하고, 넓은 방에서 관람객은 두 점의 반가사유상에 집중하게 됩니다.   사유의 방은 국립중앙박물관 최초로 건축가 최욱(58) 원오원 아키텍츠 대표에게 협업을 제안해 만들어졌습니다. 서울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부산 현대모터스튜디오 등을 설계한 그는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오감(五感)을 존중하는 공간을 선보여 왔습니다.   사유의 방도 그 맥락에 있습니다. 본래 전시실 크기는 현재의 절반 정도였는데, 건축가는 두 불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과 협의해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축가는 마치 소극장으로 진입하듯이 들고 나는 길에 어둠을 통과하는 골목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유의 방에서 관람객은 계속 움직이게 됩니다. 불상 뒤로 가선 마치 무대에서 객석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나와 반대편에 서서 불상을 바라보는 관람객 무리를 ‘구경’하게 됩니다. 벽과 바닥, 천장과 불상, 그리고 한 공간의 다른 사람들까지 다 흥미롭게 보이게 하는 공간의 힘입니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는 그의 책 ‘분위기’에서 “질 높은 건축은 나를 감동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떠오르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요, 그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들로 “사람들, 공기, 소음, 소리, 색깔, 물질, 질감, 형태” 등을 꼽았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분위기”를 만든다면서요.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생각과 깨달음의 찰나를 상징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불멍’(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는데, 사유의 방은 색다른 공간과 분위기의 힘으로 ‘불멍’보다 더 우아한 힐링의 순간을 선사합니다.   그곳에 가시겠다고요? 감히 조언을 드리자면, 자칫하면 사유의 방의 색다른 분위기에 취해 휴대폰으로 사진만 줄곧 찍다가 올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랬다고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그곳에 다시 다녀와야겠습니다.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을 제대로 보내봐야겠습니다. 이은주 / 한국 중앙일보 문화디렉터J네트워크 사유 공간 국립중앙박물관 최초 건축가 페터 건축가 최욱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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