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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한국에 와서 좋은 것 중 하나는 문화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더위와 세찬 장맛비가 번갈아 이어지는 7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우울함을 달래려고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이왕 간 김에 상설관까지 둘러보느라고 온종일 박물관에서 보냈다.  
 
특별관에서는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작가의 작품 52점을 전시하고 있다.  영국 뿐 아니라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상주의까지 유럽 회화의 흐름을 살필 수 있었다. 이번 전시 명은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이다. 미술의 주제가 신화 속 신으로부터 사람을 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렘브란트, 라파엘로, 티치아노, 반다이크, 카라바조, 푸생, 벨라스케스, 고야, 르누아르, 고갱, 반고흐, 마네, 모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양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보며 그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더구나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전쟁 중 작품을 지키기 위해 굴속에 숨기기도 했다는 사연에 더욱 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도마뱀에 물린 소년’은 카라바조의 작품이다. 그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얼마 전 무료해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Arte’라는 방송에서 그에 대한 특집방송을 보게 됐다. 거기서 본 그림이라 더욱 반가웠다. 한 소년이 꽃병의 장미 쪽으로 손을 뻗다가 도마뱀에 물렸다. 깜짝 놀라는 극적인 순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그림이다. 해설가는 “카라바조가 이 그림의 주제를 무엇으로 정하고 그렸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아름다운 사랑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감정표현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혹자는 “짧은 감각적 쾌락 뒤에 숨어 있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소년의 귀에 꽂힌 장미와 꽃병의 꽃 역시 곧 시들어 사라질 덧없음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그래, 사랑은 짧고 아픈 거지!  
 
이번 전시회 포스터는 ‘레드 보이’로 알려진 ‘찰스 윌리엄 램튼의 초상화’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토머스 로렌스의 작품이다. 귀한 집 도련님 같은 하얗게 빛나는 얼굴과 눈빛으로 유명하다. 그림 속 소년의 나이는 예닐곱 살인데 열세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처음으로 우표에 실린 그림이기도 하다. 빨간 옷 입은 소년이 너무 예뻐서 박물관 상품관에서 하나 사 왔다.  
 


세시간 여나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들을 감상했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라 2층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기운을 차린 후 그냥 집에 가고 싶었으나 언제 또 오겠나 싶어서 상설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한국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물 만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유물이 다 귀하지만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 유물 중 최고 걸작이다.  
 
‘반가’란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편 무릎에 얹은 자세를 말한다. 두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 문화재를 대표하는 수퍼 스타이기도 하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신라시대 유물전에서 이 반가사유상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 전시회 알림 포스터의 표지모델로 등장시켰을 정도이다.
 
반가사유상은 현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상념에 잠긴 미륵보살이다. 왼쪽 무릎 위에 오른발을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미소가 압권이다.  “모나리자를 울려버린 반가사유상의 미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붓으로 미소를 그렸지만 반가사유상의 제작자는 쇠로 미소를 만들었다” 등 세계의 조형미술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라고 인정한 조형물이다.  어떤 이는 위로 받고, 어떤 이는 평온을 느낀다는 그 미소는 어디서 왔을까?!  
 
반가사유상은 단독 전시할 정도로 특별대접을 받는다. 전용 전시실인 ‘사유의 방’을 따로 마련하여 전시하고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우리 박물관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함이다. 2021년 11월, 전시가 처음 시작되자마자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전시된 유물도 훌륭하지만, 박물관 자체에도 큰 감동을 하였다. 지하철과 연결된 넓은 공원과 정자, 보신각 종이 있으며 건물 입구에는 식당, 카페, 편의점 등도 있다. 건물 안에는 특별전시관과 상설전시관, 어린이 박물관, 상품관, 푸드 코트, 카페도 있다. 전시실에는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온종일 있어도 아무런 불편 없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와 여러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며 일곱 번에 걸쳐 이사했던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름도 조금씩 바뀌고 장소도 창경궁, 덕수궁, 중앙청, 남산, 경복궁 등으로 옮겨 다녔다. 현재의 박물관은 2005년 10월, 주한 미군이 용산기지 골프장을 반환하여 조성한 용산가족공원에 신축 개관한 것이다.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박물관리고 한다.  한국에 그렇게 훌륭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로 초대 박물관장(덕수궁 시대)인 김재원 씨는 여학교 동기의 부친이다. 25년간 장기 재직하며 한국전쟁 당시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을 배에 실어 오키나와에 피신시켰다고 한다. 그 동창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덕에 그나마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게 됐다”고. 이전에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설립됐기 때문에 꽤 많은 유물이 일본인에 의해 반출됐다고 한다. 그 친구의 여동생인 김영나 전 서울대 교수는 11대 박물관장을 지내 부녀 관장으로 기록에 남았다.  
 
관람객 중에는 연인, 친구,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간혹 우리 같은 노인도 있고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보였다.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매일 뉴스에서 악에 받친 사람들만 보다가 그런 모습이 신선했다, 아! 한국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게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모르고, 다른 하나는 자기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곳에서 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누가 봐도 잘사는 나라이다.  그런데 왜 맨날 주먹을 불끈 쥐고 시위를 하는가? 이유가 있겠지만 공든 탑이 무너질까 걱정된다.  
 
푹푹 찌는 장마철에 쾌적한 박물관에서 명화도 감상하고 한국의 국보와 유물도 관람하며 알차게 보냈다. 마음이 뿌듯한 하루였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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