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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희랍어 시간’을 읽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한 경우가 종종있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한강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가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이아침에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8

[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을 읽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재미가 없어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번에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독후감을 ‘조용한 천재’라고 명명한 후 이 자리에 글을 올렸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한편 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하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 문학사에 숨어있는 천재를 발견한 것이다. 한강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과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0

교실에 기독교 색채 강해진다

보수적인 입법자들이 공립학교 교실에 더 많은 기독교적 요소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읽기 수업에 성경 참조를 포함시키고 교사들에게 십계명 게시를 허용하고 있다.   십계명 게시 등은 정부 주도가 아닌 한 이미 허용된 상태다. 종교와 종교적 텍스트 교육도 허용된다. 일부 주에서는 보수적인 토크쇼 진행자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 프래거 유(Prager U)의 동영상을 수업에 사용할 수 있다. 이 동영상들은 기독교 전파를 긍정적으로 강조하는데 기독교 민족주의적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기독교적 요소 도입 확대 움직임은 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읽기를 장려하겠다고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연방 정부는 주별 교육 과정에 직접 지시하는 할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간접적으로 공립학교 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주 차원의 활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학교 선택제를 지지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부모들이 자녀를 종교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세금으로 지원되는 바우처 사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동안 임명한 사법부 인사들은 공적 영역, 특히 학교에서 더 많은 종교적 요소를 수용하는 판결이 증가한 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옹호하는 단체인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지지하는 미국 연합'의 레이철 레이저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부터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미국 건국의 이념이 무엇이냐는 이론이 있다. 건국 당시 의도는 기독교 국가 건설이라고 믿는 미국인들은 많다. 기독교 민족주의 운동은 이중 소수로 미국과 기독교 정체성의 융합을 지지하고 미국은 기독교적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가들은 이견을 갖고 있다. 미국 건국은 유럽의 국교와 군주제에 대한 대안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요소 도입은 주 단위에서 활발하다. 루이지애나에서는 공화당이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십계명을 게시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17개주의 공화당 소속 주검찰총장들은 최근 루이지애나의 십계명 게시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텍사스에서는 일반 수업과 성경 수업을 결합한 교육과정을 승인했다. 오클라호마에서는 주정부가 5~12학년에 성경을 포함하는 수업을 개설하도록 했다. 유타주 의원들은 십계명을 독립선언문과 헌법과 같은 역사적 문서로 지정해 교실에 게시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의 분위기가 바뀐 대표적인 판결은 스포츠팀의 기도에 대한 판결이었다. 2022년 워싱턴주에서 경기 후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 안에서 기도를 한 고등학교 풋볼 코치가 해고되는 사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학교가 코치의 종교 표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선수 일부가 코치의 기도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느꼈다는 소수의견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공립학교가 종교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의 종교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대해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데릭 블랙 법학과 교수는 공립학교에 더 많은 기독교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공익법률단체 비켓(Becket)의 조셉 데이비스 법률자문은 축구 코치 사건 이후 법원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판결에서 공적 공간에서 종교적 표현이 허용되어야 하며, 그것이 미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면 그렇게 기대되어야 한다는 부분에 주목한 것이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텍사스 밸류스'의 조나단 사엔즈 회장도 역사적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풋볼 코치 사건은 공립학교에서 종교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를 되찾았다"면서 "유권자들과 입법자들은 '하나님 아래 한 나라'라는 유산에 대한 공격에 지쳤다"고 강조했다. 안유회 객원기자기독교 교실 기독교 민족주의자들 기독교적 요소 기독교 민족주의적

2025-02-03

사진 교실 ‘미주 바람의 눈’ 창설

오렌지카운티에 사진 교실 ‘미주 바람의 눈(대표 이정필 사진작가)’이 창설됐다.   미주 바람의 눈은 지난 2011년 한국 수도권을 기반으로 설립된 사진 학교 ‘바람의 눈(대표 김연수)’의 첫 해외 지부다.   ‘바람의 눈’은 전직 언론인들이 만든 사진 학교로 현재 10기까지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아마추어 사진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졸업생들이 계속해서 사진 작업을 이어가는 ‘바람의 눈 사진 동호회’도 운영 중이며 매년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정기 전시회를 열고 있다.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서 30년 간 사진기자로 근무한 김연수 대표는 ‘바람의 눈’ 외연 확대를 위해 이정필(사진) 작가와 협력, 미주 지부를 공동 창립했다. 역시 언론인 출신인 이정필 대표는 지난 8년 동안 어바인 지역의 코암(KoAm) 사진 동호회에서 강의를 해왔고 2021년부터 그룹전과 개인전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미주 바람의 눈은 첫 개강을 앞두고 오는 27일(월) 오후 2시 부에나파크의 AJL 아트 갤러리(관장 줄리엣 이, 8600 Beach Blvd)에서 설명회를 연다. 진행을 맡은 이 대표는 “초심자와 경력자를 위해 시작반과 연구반 강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작반은 4개월 과정으로 사진 촬영은 물론 카메라, 컴퓨터, 프린트까지 마스터하는 집중 코스다. 경력자와 시작반 이수자를 위한 연구반은 토론과 실기 과정을 제공한다. 수강생은 매주 이론 강의와 야외 촬영 등 두 차례 모임을 갖게 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설명회에서 들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올해 한국 바람의 눈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전시 행사가 기획 중인데 미주 바람의 눈 수강생들도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미주 바람의 눈이 남가주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등용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는 전화(714-515-2534)로 하면 된다.바람 교실 미주 바람 협력 미주 사진 교실

2025-01-22

[독자 마당] 미국 초등학교 체험

1976년 한국에서 텍사스주 포트워스로 이주했다. 이사 직후 새 학기가 시작된 탓에 딸 에스더는 초등학교 3학년에 입학했다. 그런데 에스더는 아침마다 학교에서 나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며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부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마음뿐이었다.   우리 모녀의 상황을 눈치챈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나도 에스더와 함께 교실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호의 덕분에 교실에서 딸 옆에 앉아 통역해 주면서 딸의 공부를 도울 수 있었다. 선생님은 때때로 “미세스 이, 읽어 보세요”라고 했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마치 미국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기분이었다.     점심도 식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산 토끼 토끼야‘ ’나비야, 나비야‘ 노래와 율동을 가르쳤다. 그때 쉬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느닷없이 에스더의 피아노 독주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언젠가 에스더가 피아노를 친다고 말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너무나 고마웠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피아노 앞에 선 에스더는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는 자신만만하게 이어졌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 후 에스더가 학교 운동장에 나가면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때부터 에스더의  갈등도 없어졌다. 나도 딸과 함께했던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생활을 중단할 수 있었다. 딸 덕분에 미국 초등학교 학생 체험을 했고,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의 친절과 사랑, 배려의 고마움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딸의 모습을 쿠퍼 선생님에게 보여 드릴 수 있다면…. 이영순·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미국 초등학교 초등학교 체험 초등학교 교실 초등학교 학생

2024-08-06

“한국의 도시락, 워싱턴 사로잡다”

       한미문화예술재단 USA(이사장 이태미) 주최, 한국문화예술 아카데미가 진행한 제18회 찾아가는 한국문화교실 ‘박송희 세프의 한식 세계화 도시락 전시-워크샵’이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미국에서 도시락은 고물가 시대에 외식비를 절약하려는 직장인 등에게 인기가 높은 테이크아웃 식품이다.  이날 선보여진 도시락은 클래식 야채김밥, 유부초밥, 누드김밥, 청경채 김밥, 잎채소 쌈밥 등 영양을 고루 갖춘 다양한 종류의 김밥과 궁중 디저트, 연밥, 연근밥, 호박꽃밥 등 다채로운 도시락이 전시됐다.    자연 재료들이 내뿜는 고유 빛깔과 본연의 맛을 오롯이 살려 담아낸 도시락을 마주한 참석자들은 경탄했다.  한 참석자는 “음식이 너무나 아름답고 정갈해 예술 작품처럼 보여 먹어버리기가 아까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전시 관람 후에는 참가자들이 음식을 만들어 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박송희 셰프는 “K-푸드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이제는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한식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미국에 한식을 홍보할 수 있어 많은 보람과 그들의 반응에 큰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태미 이사장은 “특히 올해 행사에는 3대가 함께 참석한 가족들이 많아 더 뜻깊고 보람있었다”며 “내년에 다시 더 알찬 프로그램으로 ‘찾아가는 한국문화 교실’을 진행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도시락 워싱턴 도시락 워싱턴 주최 한국문화예술 한국문화 교실

2024-07-17

[알뜰정보] 알뜰 핸디맨 직업교육강좌 외'

알뜰 핸디맨 직업교육강좌   '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실생활 도우미 직업교육강좌의 일환으로 핸디맨 교실을 운영한다. 핸디맨 교실은 재료와 공구 선별, 건축 구조 상식, 실내.외 벽과 지붕 수리, 스크린 도어, 문짝 및 문고리 수리, 플러밍 응급조치 및 수리 방법, 타일 및 마루공사, 페인트, 전기상식 등 주택 관련 공사에 필요한 다양한 내용을 총망라한다. 강사는 현재 건축 회사를 운영 중인 허영회 인기 강사가 진행한다. OC 소스몰 지점에서 오는 8일부터 주 1회(수요일 오전 10~오후 12시) 8주 과정이며, 수강료는 재료비 포함 400달러다.   ▶문의: (213)368-2545 / 2546     2024 KACPA 장학생 선발   '남가주한인공인회계사협회(KACPA)'에서 미래의 한인 비즈니스 사회를 이끌어갈 우수한 한인 장학생을 선발한다. 어카운팅, 비즈니스, 경제학 전공/부전공 풀타임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대상이며 남가주 지역 대학 및 대학원 재학생이나 남가주 지역 출신자를 우선 선발한다. 이력서와 성적증명서, 3~5페이지 분량의 에세이를 오는 5월 31일까지 이메일로 제출해 신청할 수 있다. KACPA는 총 5명을 선발해 2000달러를 지원한다. 수여식은 오는 6월 27일 태글리안 콤플렉스(Taglyan Complex)에서 진행된다.   ▶문의: [email protected]     사우스웨스턴 LA 지점 오픈 '사우스웨스턴 내셔널 뱅크(Southwestern National Bank)'가 로스앤젤레스 지점을 그랜드 오픈한다고 밝혔다. 지난 30여 년 동안 고객의 신뢰와 함께 해온 타운 최고의 뱅킹 전문가들이 사우스웨스턴 내셔널뱅크의 새로운 LA 지점과 함께 고객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이를 통해 검증받은 경험과 친숙한 맞춤형 서비스를 한인 커뮤니티 더욱 가까운 곳에서 적극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LA 지점은 윌셔 불러바드와 노르망디 애비뉴 코너에 위치한다.   ▶문의: (213)401-1142   ▶주소: 3530 Wilshire Blvd, Suite 1520, Los Angeles알뜰정보 직업교육강좌 핸디맨 알뜰 핸디맨 핸디맨 교실 지점 오픈사우스웨스턴

2024-04-30

[문예 마당] 속삭임의 삶

  ‘거룩한 천사의 음성  부드럽게 속삭이는  앞날의 그 언약이/어두운 밤  지나고 폭풍우 개이면 동녘엔 광명의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고/     속삭이는 앞날의 보금자리  즐거움이  눈 앞에 어린다.’   멀고 먼 추억 속 무대에서 짐 리브스의  ‘희망의 속삭임’이 맑고 구수한 음성으로 들려 온다.  이 노래는 원래 셉티머스 위너가 1868년 에 발표한 곡이라고 한다.   늘 가족들에게 미소와 사랑을 나누어 주신 처형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가족들은 처형의 90세 생일 축하 특별 이벤트로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합창하기로 했다. 나 역시 이 노래를 배우려 유튜브의 노래 교실을 통해 수십번 따라  불렀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음을 잡을 수가 있게 됐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흥얼거리며 잠을 청하고 가사를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주위의 모든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또 얼마나 필요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날 믿고 따라준 사람들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고진감래라는 말도 있지만 인생이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것처럼  늘 위기의 연속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다리 밑은 강물이요, 뒤로는 갈 수가 없고 어떤 고난이 있어도 넘어야 하는 항상 아슬아슬한 것이 우리의 삶 아닌가.     노년의 삶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건강이 가장 문제다. 나는 아내의 깊은 숨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물론 모든 것을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된다고 하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몇 년간 계속한 투석이 너무 힘에 겨워 중지하고 한동안 주사와 약으로, 그리고 또 다른 치료법으로 몇 년을 견디어 왔다. 팔순이 넘어 병들고 부자연스러운 몸이 되다 보니 과거의 강인한 개척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누군가 도움을 받을만한 인연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씨앗은 흙을 만나야 싹이 트고  물고기는 물을 만나야 숨을 쉰다고 하였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아무리 왕년에 잘 나갔다 하여 큰소리를 쳐봐도 세상엔 독불장군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만나야  행복하고 주변을 살피면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베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우리 부부도 예외 없이 건강상의 이유로 그 기고만장하던 패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딸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엄마, 아빠 함께 살자”고 권유했다. 우리는 곰곰이 생각하고 궁리한 끝에 딸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라스베이거스 레드락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나 역시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딸의 권유가 고맙기만 할 뿐이다.   팔순이 넘다보니  왜 이리  신체의 고장이 많은지. 청력이 약해지다 보니 아내와  주고받는 대화도 늘 반문이 따르게 되고 아내는 그것이 불만이다. 아내도 몸이 쇠약하다 보니 자연히 목소리가 잦아져 좋게 말해서 우리 부부는 속삭임의 대화가 계속된다.     최근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겪었다. 당시 비대면 접촉이 권유되면서 기업들의 재택근무 도입이 늘었다. 이렇게 도입된 재택근무는 팬데믹이 끝난 요즘도 더욱 확대되는 모습이다.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도 한 사람은 아래층에서, 또 한 사람은 이층에서  재택 근무를 하고 있어 우리 부부는 업무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한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작아진 이유도 있지만  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습관이 생겼다. 늘 조용조용 사랑을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대화한다. 속삭임의 삶을 사는 셈이다.     귀가 밝은 딸은 우리 부부의 대화 내용을 다 알아듣고도  모른척 빙그레  웃곤 한다. 가끔 “네 흉보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딸에게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저렇게 귀가  밝은데 우리  시니어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나의  속삭임의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반드시 우리에게  거룩한 천사의 음성이 내 귀를 두드려, 어두운 밤이 지나고 광명의 햇빛이 눈 부시게 비칠 때, 아슬아슬한 인생의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요.’ 오늘 밤도 콧노래를 부르며 잠을 청해 본다. 백인호 / 수필가문예 마당 수필 재택근무 도입 노래 교실 건강 문제

2024-04-18

“실수도 과정” 격려, 동기부여해야.. 가정상담소 부모교실 현장중계

“자녀와의 고민 한인가정상담소에서 털어놓으세요”   27일 오후 12시 50분 한인가정상담소(KFAM)는 10분 뒤 시작하는 부모교실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 자녀교육을 위해 개최하는 부모교실 2월 네째주 주제는 ‘자존감, 자신감, 따돌림’이었다.   KFAM 내 강의실은 영어로 설명하는 김민지 강사와 한국어로 설명하는 케일린 우 강사가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KFAM 노해나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와 오미숙 정신건강 프로그램 디렉터가 온라인으로 실시간 방송되는 비대면 참석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날 강의는 비대면으로 10명의 학부모가 참석해 ‘자존감의 중요성’, ‘자녀의 자존감과 자신감 키우는 법’, ‘자녀가 괴롭힘을 당할 시 부모로서 대처하는 법’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강의는 먼저 김 강사가 영어로 설명하면 우 강사가 한국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 강사는 강의에서 “자존감은 자신감과 독립성, 책임감을 심어준다”며 “부모는 이러한 자녀의 높은 자존감을 위해 자신감을 모범하고 실수했을 경우 질책하지 말고 노력한 것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습관을 기르기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집안일을 돕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안일은 자녀에게 책임감을 실어주며 가족과의 두터운 유대감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자녀의 취미생활 발달, 불완전함을 인정, 사랑 표현, 따돌림 대처법 등에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강의에 참여한 익명의 학부모는 “자녀의 성향에 따라 실수가 동기부여가 아닌 좌절감으로 나타난다”며 “이럴 때 부모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 강사는 부모는 자녀에게 실수도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줘야 한다며 실수를 했더라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및 격려할 부분을 찾아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날 비대면으로 부모교실에 참석한 정모씨는 “현재 9살 아들과 11살 딸을 두고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두 달 동안 부모교실에 참석하고 있다”며 “부모교실은 가장 기본적인 부모 교육을 알려주지만, 매번 강의를 통해 부모로서 책임감을 또다시 깨닫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위로를 받고 힘도 얻는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자녀의 생각을 존중하려고 하지만 부모로서 교육에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불안하다며 “나도 모르게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강압적으로 권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는 부모 교실을 통해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풀이법도 찾았다. 그는 “가족들과 차량 이동 중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게 됐다. 핸드폰을 안 하니까 자녀들과 함께 소통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유대관계를 넓힐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오 디렉터는 “부모교실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와의 소통 문제를 호소하신다”며 “언어적·문화적 차이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     오 디렉터에 따르면 현재 한인 부모들이 가장 큰 관심은 자녀의 성 정체성과 성 소수자 등 성교육 관련으로 나타났다.         한편 KFAM은 1983년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에 의해 설립됐으며 현재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다. KFAM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부모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3월에는  ‘약물 남용’,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스트레스 관리 및 자기 관리’, ‘부정적 감정을 이해하고 대처하기’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수업은 비대면과 대면으로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 진행된다.   부모 교실은 KFAM 오피스를 직접 방문하거나 또는 링크(https://shorturl.at/jsF47)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부모가 대면 참석을 원할 경우, KFAM은 아이 돌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문의: (213)235-4856  김예진 기자 [email protected]한인가정상담소 부모교실 부모 교실 부모 교육 자녀 교육

2024-02-28

[수필] 제자의 고백

그 시절은 6·25전쟁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고향의 모교인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라 설렘과 두려움의 기억이 까마득한 데 오랜 세월이 지나갔건만 추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 건물은 폭격으로 반 이상이 폐허가 되었고 넓은 강당과 교실 10여 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강당을 여섯 개의 교실로 나누었다. 그중 한구석에서 학생들은 송판에 네 다리를 세운 조그만 책상을 각자 가져와서 공부했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매서운 추운 날씨였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맞아 주었던 3학년 1반 남아들이었다.   학생들의 손등은 터서 갈라지고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 벌겋게 부어 있는 가여운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잘 참고 견디며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이 대견했다. 그중에는 산 넘고 들길을 1시간 이상 걸어온 학생도 있었다. 전쟁 중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지내는 학생도 3명이 있었다.   하루는 가정방문을 핑계 대고 보육원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3명의 학생이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시설은 너무도 비참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웃음을 잃고 양지바른 곳에서 병든 병아리처럼 웅크리고 않아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들은 배고픔에 먹을 것만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 당시 보육원은 구호물자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여운 아이들,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은 있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일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매월 기성회비(학교 운영비)를 담임이 독촉하여 걷는 일이었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우리 반이 항상 꼴찌였다. 무상으로 교육할 수 있으면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형벌처럼 전교 학급에서 수납된 기성회비는 나에게 다 가져왔다. 서무과장에게 매일 통계를 내어 돈과 함께 보고하는 업무를 내게 맡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다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다. 받은 기성회비를 교실에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돈이 없어진 것이었다. 가슴은 두근두근 속만 태우고 조심하지 않은 나의 실수라 누구에게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진땀을 흘리며 친지께 사정하여 겨우 해결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산을 바라보니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을의 고운 빛깔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삭막한 내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 듯 황홀하고 포근하게 가슴 속 깊은 곳에 다가왔다.   그런데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웃는 얼굴의 똑똑한 반장, 조윤모가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반장과 함께 집으로 오는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도에서 피난 나올 때 부모를 잃고 작은 엄마와 둘이 삽니다. 작은 엄마는 돈 벌어 오라며 밥도 안 주고 매질까지 해요.” 윤모는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어할까, 마음이 쓰렸다. 나는 저녁을 먹이고 위로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할 말이 있는듯한데 눈치만 보고 망설이다 말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근무했던 4년간 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대전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기며 고향을 떠났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하루는 해군 제복 차림의 말쑥한  군인이 집에 찾아왔다. 어떻게 왔을까? 그는 내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선생님. 저 조윤모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잊지 않고 찾아온 제자가 고맙고 반가웠다. 제자는 단정히 앉아 망설임 없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의 돈을 훔쳤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제자가 그 일로 인해 오랜 세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그러면서 제자의 진정한 고백에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제자를 안아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 그 순간의 감동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모진 세파를 겪으며 참고 견디었으니 잘 살기를 마음 깊이 빌어 주었다.   어려운 시절 만고풍파 겪으며 살았을 불쌍한 아이들,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이 된 제자들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겠지 싶다. 만남과 헤어짐은 우연이 아니고 깊은 인연이 있다 생각한다. 제자는 진심으로 양심 고백을 할 수 있는 심성을 가졌으니 틀림없이 올바르게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정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와 축복을 받을 것이리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몇이나 있으랴. 잠시 있다 가는 인생길, 많이 사랑하고 아름다운 발자취 남기고 싶다. 이복자 / 수필가수필 제자 고백 양심 고백 강당과 교실 반장 조윤모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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