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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짚방석 내지마라 - 한호(1543∼1605)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병와가곡집   도덕성의 힘   짚으로 만든 방석을 내지 말아라. 낙엽에 앉으면 된다. 관솔불을 켜지 말아라. 어제 졌던 밝은 달이 또다시 뜬다. 가을밤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진수성찬이 무슨 소용이리. 얘야, 변변치 않은 술과 나물일지라도 좋으니 없다 말고 내려무나.   옛 선비들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생활은 안빈낙도였다. 가난함을 편히 여기고, 도를 즐기는 생활이었다. 여기서 도(道)라함은 학문이나 수양의 세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검소한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것이 지식인 사회의 도덕성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금전(金錢)이 부르는 유혹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고관대작들을 보며 전통사회의 청빈 사상을 생각한다. 고도 산업사회로 치달으며 사라져간 선인의 엄격했던 자기관리가 그립다.   한호(韓濩)는 조선 선조 때의 명필이다. 호는 석봉(石峯)으로 왕희지와 안진경의 필법을 익혀 행서와 초서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의 쌍벽을 이룬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시조가 있는 아침 짚방석 한호 고도 산업사회 조선 선조 조선 서예

2023-10-06

[삶의 뜨락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구절이다. 막이 오르면 텅 빈 무대에 말라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외로운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떠돌이는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에스트라공은 벌판 한가운데 앉아 장화를 벗으려고 애를 쓰고 있고 블라디미르가 입장한다. 떠돌이 두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사소한 대화로 하루하루의 시간을 채우며 자리를 떠나지 않고 누군지 모르는 그를 기다린다. 1막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그래도 2막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지 하던 나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연극은 시작과 같은 방식으로 그 막을 내린다. ‘이 연극은 너무나 비관적이지 않은가? 누가 이 연극을 보러 가겠는가?’ 나 혼자 중얼거리며 극장을 나왔던 것이 1969년 한국 초연의 임영웅 연출을 보았던 나의 20대였다.   이 연극을 다시 보게 된 것은 2013년도 12월 말, 브로드웨이의 CORT Theatre에서였다.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한 브로드웨이의 한가운데여서였을까? 무작정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측은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돌이켜 보면 오랜 세월, 남의 나라에 와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나는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훤히 뚫린 길을 따라 누군가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아이들이 꽃처럼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우리의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전에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면 모든 일이 허사로 되돌아갈 것만 같았다.     세 번째로 이 연극을 다시 본 것은 4년 전 여름, 더블린에서였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연기하는 단막극이었다. 제임스 조이스, 새뮤얼 베켓, 오스카 와일드 등 문학의 거장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듀크(Duke)’라는 술집에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그 분위기가 마치 중세기로 되돌아 간듯했다. 술병을 높이 치켜들고 ‘I will have a pint!’라는 아이리시 가요를 부른 후 두 명의 배우가 나와서 2막의 한 부분을 연기한다. 그 후 우리는 모두 다른 술집으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블라디미르 역을 맡았던 배우에게 다가가 “너는 ‘고도’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혹시 하느님 아닌가?” 하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지금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無)에 대한 연극으로 유명하다. 스물두 살에 탈출의 꿈을 이루었고 파리에 상륙하여 제임스 조이스를 도와 일했고, 파리의 어느 포주에게 찔려 간신히 살아남았으며 전쟁에 참여하여 레지스탕스를 위해 일하던 중 게슈타포에 거의 체포될 뻔했던 작가, 그는 그의 육체적·정신적 모든 고통을 ‘고도를 기다리며’에 쏟았다고 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자신들이 왜 지구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한 쌍의 인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빈약한 가정을 하고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Godot을 열심히 찾고 있다. 의미와 방향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으므로 자신의 허무한 존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일종의 고귀함을 얻게 된다는 연극비평가들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다림은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다림 그 자체로 희망적이다. 이춘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고도 떠돌이 생활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2022-12-11

[삶의 뜨락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구절이다. 막이 오르면 텅 빈 무대에 말라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외로운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떠돌이는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에스트라공은 벌판 한가운데 앉아 장화를 벗으려고 애를 쓰고 있고 블라디미르가 입장한다. 떠돌이 두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사소한 대화로 하루하루의 시간을 채우며 자리를 떠나지 않고 누군지 모르는 그를 기다린다. 1막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그래도 2막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지 하던 나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연극은 시작과 같은 방식으로 그 막을 내린다. ‘이 연극은 너무나 비관적이지 않은가? 누가 이 연극을 보러 가겠는가?’ 나 혼자 중얼거리며 극장을 나왔던 것이 1969년 한국 초연의 임영웅 연출을 보았던 나의 20대였다.   이 연극을 다시 보게 된 것은 2013년도 12월 말, 브로드웨이의 CORT Theatre에서였다.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한 브로드웨이의 한가운데여서였을까? 무작정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측은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돌이켜 보면 오랜 세월, 남의 나라에 와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나는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훤히 뚫린 길을 따라 누군가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아이들이 꽃처럼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우리의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전에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면 모든 일이 허사로 되돌아갈 것만 같았다. 늦은 밤, 롱아일랜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늙은 방랑자들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세 번째로 이 연극을 다시 본 것은← 4년 전 여름, 더블린에서였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연기하는 단막극이었다. 제임스 조이스, 새뮤얼 베켓, 오스카 와일드 등 문학의 거장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Duke’라는 술집에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그 분위기가 마치 중세기로 되돌아 간듯했다. 빨간 벽돌로 둘러싸인 이층의 작은 방에는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슬로바키아 등 주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병을 높이 치켜들고 ‘I will have a pint!’라는 아이리시 가요를 부른 후 두 명의 배우가 나와서 2막의 한 부분을 연기한다. 그 후 우리는 모두 다른 술집으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블라디미르 역을 맡았던 배우에게 다가가 “너는 ‘고도’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혹시 하느님 아닌가?” 하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지금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無)에 대한 연극으로 유명하다. 스물두 살에 탈출의 꿈을 이루었고 파리에 상륙하여 제임스 조이스를 도와 일했고, 파리의 어느 포주에게 찔려 간신히 살아남았으며 전쟁에 참여하여 레지스탕스를 위해 일하던 중 게슈타포에 거의 체포될 뻔했던 작가, 그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모든 고통을 ‘고도를 기다리며’에 쏟았다고 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자신들이 왜 지구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한 쌍의 인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빈약한 가정을 하고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Godot을 열심히 찾고 있다. 의미와 방향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으므로 자신의 허무한 존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일종의 고귀함을 얻게 된다는 연극비평가들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다림은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다림 그 자체로 희망적이다. 이춘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고도 떠돌이 생활 제임스 조이스 독일 오스트리아

2022-12-07

[독자 마당] 분쟁의 원인

삶은 심적, 물적 장애물들을 치우며 얽힌 문제들을 풀어가는 여정이다. 이들 장애물이나 문제를 치우고 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알고 적용하기 위해 배움이 필요하다. 배움은 태교로부터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삶의 현장인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렇게 얻은 지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며 더 나은 삶을 지향함으로써 모든 분야가 발전해 오늘의 고도 문명사회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마다의 능력과 필요가 다르다. 자연히 타인과의 비교가 불가피하고 본인이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이에 머무르거나 체념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이  자신과 공동체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다.     한 공동체 내에서의 삶은 각자의 가치관이나 취향이 다르다 해도 큰 맥락에서 보면 보편적 필요나 욕구에 근거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원하는 재화는 공급이 부족하게 돼 경쟁이 유발된다. 한정된 재화를 남보다 먼저 확보하려는 욕구가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넘어 분란, 분쟁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경쟁과 갈등이 심해지면 더 많은 장애물을 치우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의 향상,진보가 개인과 사회, 국가를 그만큼 발전시키게 된다.     그러나 어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르는 게 원리다. 선의의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이에 대한 역작용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삶과 인류사를 복잡다단하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자연재해와 질병,전쟁,경제불안,도덕성 타락 등 정치·사회적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과 주변 환경을 점차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이제 공정한 법도 안에서 신뢰와 공공선을 통해 안정되고 평온한 사회가 되도록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분쟁 원인 분란 분쟁 고도 문명사회 공동체 발전

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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