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내가 번 돈 내가 쓴다"
45%가 "즐기고 싶다" 부의 이전 지연 예상
수명 늘고 생활비·의료 비용 상승에 영향

찰스 슈왑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시니어의 45%가 상속보다는 살아 있는 동안 내 돈으로 즐기고 싶다고 답해 전통적인 상속 개념에서 벗어나 노후 자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의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베이비붐 세대는 역사상 보유 자산이 가장 많은 최대 규모의 인구 집단으로 은퇴가 시작되면 사상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연방 센서스국은 앞으로 2년간 매일 1만2000명이 65세가 되는 이른바 '실버 쓰나미'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UBS는 지난해 발간한 '2024년 글로벌 자산 보고서'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보유한 부의 가치가 83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인구 21%가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 쓰나미와 거대한 보유 자산은 사상 최대의 세대간 부의 이전으로 귀결하면서 경제 전반에 전례 없는 파급효과를 낳을 것처럼 보였다. UBS는 앞으로 20년~25년 사이에 부동산과 현금이 세대를 건너 이전된다고 예상했다. 주택 이전도 주목을 받았다. 베이비붐 세대가 보유한 주택 자산은 약 17조 달러 규모로 지난해 기준 전국 주택 자산의 절반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나온 설문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은퇴 이후 생활 설계 투자회사로 유명한 '에드워드 존스'가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자산 중 약 40%만 생전에 자녀에게 상속할 계획이었다. 나머지 자산은 사후 상속이었다.
지난해 말 노스웨스턴 뮤추얼의 설문조사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22%만 유산 상속 계획을 마련한 상태였다. 40%는 유언장 작성을 하지 않았고 유산 상속을 가장 중요한 재정 목표로 삼은 비율은 11%에 그쳤다. 17%는 유산을 누구에게 상속할지 확신이 없었다. 찰스 슈왑의 설문조사에서 45%가 내 돈은 내가 쓰고 싶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태도는 이전 세대가 보여줬던 상속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상속 미루기가 아닌 자산 활용 의지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한다.
자산과 은퇴에 대한 시각은 베이비붐 세대만 바뀐 것이 아니다. '재정 독립, 조기 은퇴'를 지향하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나 '다 쓰고 죽자(Die with Zero)'는 대놓고 직설적인 태도는 여러 세대에게 공감을 얻었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에 가치를 둔다. 베이비붐 세대가 여행과 여가, 건강 관리 등에 집중하며 적극적으로 자산을 소비하려는 것은 젊은 세대의 방식을 흡수한 부분도 있다.
현실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평균 수명이 늘면서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이 계속 증가하는 첫 번째 세대다. 은퇴 후에도 늘어나는 생활비는 자산을 빠르게 소진하는 주요 요인이다. 특히 최근의 인플레이션으로 노년층은 저축 인출률이 높아졌다.
의료비와 장기 요양비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피델리티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인 65세 은퇴자가 평생 지출하는 예상 의료비는 장기요양 비용을 제외하고도 16만5000달러다. 장기요양은 베이비붐 세대의 최대 고민 중 하나다. 피델리티에 따르면 지난해 65세를 기준으로 앞으로 장기 요양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70%에 이른다. 장기요양 재정설계회사 젠워스에 따르면 지난해 요양시설 중간 비용은 연 6만4200달러였다. 개인 병실 요양원은 연 11만6800달러나 됐다. 베이비붐 세대의 '내 돈 내가'도 이해가 간다. 수명 증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비 상승, 막막한 의료비가 '상속보다 내 노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베이비붐 세대가 재산 축적과 상속이라는 전통 가치에서 완전히 벗어나리라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상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주택이다. 집은 오랫동안 순자산 증대와 재정 안정의 필수 자산이었다. 문제는 집값이 젊은 세대에게 절망적일 정도로 급등했다는 점이다. 마침 베이비붐 세대는 집을 많이 갖고 있다. 2022년 프레디맥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보유 주택은 3200만 채였다.
자녀 세대의 상속 기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노스웨스턴 뮤추얼 조사에서 밀레니엄 세대의 32%가, Z세대의 38%가 상속을 기대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상속이 재정적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와 '필수적'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밀레니엄 세대의 59%, Z세대의 54%였다.
연방준비제도의 통계도 상속과 재정적 안정, 주택 구입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연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평균 은퇴 저축액은 35세 미만 1만9000달러, 35세~44세 4만5000달러였다. 상속이 주택 구매와 은퇴 준비에서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프레디맥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주택 소유자의 75%가 집을 상속하거나 팔아서 수익을 물려줄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베이비붐 세대도 자식 세대의 상황을 잘 이해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대별 고민을 바탕으로 상속을 놓고 솔직한 대화를 권한다. '에드워드 존스'의 조사에서 나타났듯 가족과 상속을 논의한 이들은 35%에 그쳤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는 불안감이든 노후를 즐기든 자산을 더 오래 갖고 있으려는 이들이 50% 육박한다. 반면 찰스 슈왑 설문조사에서 '살아있는 동안 내 돈으로 내가 즐기겠다'고 응답한 밀레니엄 세대는 15%였다. X세대는 11%에 머물렀다. 젊은 세대는 즐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다르다. 그만큼 상속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상속이 지연되면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는 주택 구입과 은퇴 준비까지 순차적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20대~30대와 자녀 양육비가 많이 드는 40대~50대도 돈이 필요하다. 가족간 신뢰와 재정적 안정을 위해 상속을 놓고 현실적인 고려 요소와 기대치, 시기를 대화로 조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유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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