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노인의 시 공부
은퇴한 후, 치매 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늙었기에, 내 두뇌 또한 늙었다. 두뇌가 늙었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보았다. 이때 바로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가 유행되었다. 시바타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00세에 시집을 발간했다. 그 시집이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렸다. 한국에도 그녀 시집이 번역되어 많이 읽혔다. 시바타를 보고서, 두뇌가 늙었어도 시를 쓰는 데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말테의 수기’에서 독일 시인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젊어서 시를 쓴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닌 것이다. (감정이라면 젊었을 때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시는 경험인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도시와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한다…. 추억이 많아지면 추억 또한 잊혀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말이 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늙어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미국 도서관에 가 보았다. 한국소설이나 수필 책은 수두룩하게 많아도,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시집을 구해서 많이 읽었다.
막상 시를 쓰려고 하니까 전연 써지지 않는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첫째 시를 쓰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사색(思索)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시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의 천재는 배움 없이 시를 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 쓰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 시 선생을 찾았다. 뉴욕에는 시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2017년, 내 나이 80. ‘중앙일보 문학 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해서 참여했다. 김정기 선생님을 만났다. 시 작법을 배웠다. 많은 시간을 시 공부에 열중했다. 시라는 게 배운다고 해서 쉽게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 알았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고된 연습을 하는 식으로, 시 또한 매일 써보고 또 써보면서, 고치고 또 고쳐가면서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 나태주는 “산문은 작정하고 쓸 수 있지만, 시는 작정하고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시 자체가 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상(詩想)은 뜬금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떠오른 시상은 금방 없어진다. 없어지기 전에 얼른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기억해내기 어렵다. 종이에 적어놓은 시상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수정한 후에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써놓은 시를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좋아할 때까지 혹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시를 고치고 수정한다. 시를 쓰다 보면 짜증도 나고 골치도 아프다.
그런데 다 써놓은 후 완성된 시를 읽어볼 때의 기분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었을 때의 만족감이다.
조성내 / 시인·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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