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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Die Hard

서량 정신과 의사

서량 정신과 의사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서 습관적으로 손목이며 팔에 칼로 상처를 내는 버릇이 있는 환자에게 그녀의 자해 행동은 우울증 증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Old habits die hard, 오래된 버릇은 버리기 힘들어요”라고 그녀가 응답한다. ‘세 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보다 더 빨리 귀에 들어오는 표현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열연한 액션 스릴러, ‘Die Hard’(1988)가 우리 고유의 격언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있구나.
 
셰익스피어의 ‘햄릿’ 5막 1장. 햄릿은 그의 현명한 친구 호레이쇼와 어깨를 나란히, 30년 동안 같은 일에 종사했다는 교회 묘지기와 대화를 나눈다. 주야장천 삽으로 묘지를 파고 해골들을 접하는 일을 어찌 그리 콧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냐고 햄릿이 학구적인 질문을 던진다.
 
“Has this fellow no feeling of his business? He sings at grave-making.” - “이 작자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아무런 감정이 없단 말이야? 무덤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다니.” - 호레이쇼가 응수한다. “Custom has made it in him a property of easiness.” - 습관이 그 사람 안에 태평한 자산(資産)을 만들었답니다. (본인 譯)
 
로마가 하루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습관 또한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법. 악기에 익숙해지는 일도 악기를 연습하는 습관이 오래 쌓여 생기는 결과다. 사람을 사귀는 과정도, 남녀의 사랑이 익어가는 경로도, 정신상담의 결과도 마찬가지 수순을 밟는다.
 
“See one. Do one. Teach one.” 1890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외과 수련의 제도를 창시한 존스 홉킨스 병원의 외과과장 William Stewart Halsted(1862~1922)가 수련의들을 고무시키던 슬로건이다.
 
이 금언을 지금도 많은 의학도가 입에 달고 산다. 어떤 의료시술을 한 번 보고, 한 번 하고, 한 번 가르쳐보면 초입생 수련의가 그 시술을 할 수 있다는 격려사. 악사나 글쟁이에게 이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 시에서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추천한다. 많이 읽고 많이 짓고 많이 생각하란다.
 
자해라는 나쁜 습관을 고쳐야 되겠다고 그녀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Knowing is one thing. Doing is another,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서로 다르답니다.” 정말이지 앎이란 말처럼 무의미할 때가 많다.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 말보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넷플릭스 한국 의료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유심히 들었다. 주인공 외과의사가 “현장은 교과서와 다르다”라고 짧게 말하는 것을.
 
그 영민한 한국 외과의사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라면 환자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라고 크게 소리치며 이론과 현실의 엄청난 차이를 지적한다. 삶의 현실을 교과서적 지식 하나만으로 다스릴 수는 없다. 예외투성이의 현장은 즉각적 행동을 요구한다. 한 번의 시술 대신 무수한 ‘practice, 연습’에서 오는 노련한 경험과 경륜을 필요로 한다.
 
“See one. Do one. Teach one” 하는 슬로건만으로는 미흡하다. “See many. Do many. Teach many” 하면 너무 힘겨운 교훈일까. 외과적 재질, 예술적 재능 없이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저 눈물겨운 ‘노력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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