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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단속 소문이 불안 키웠나…LA 아직 평온

르포: '피난처 도시' 현주소
자바 시장, 홈디포 앞 분주
중범죄자가 주요 단속 대상
"역대 행정부 모두 했던 일"

28일 오전 윌셔 불러바드에 위치한 홈디포 주차장에서 구직활동을 하는 히스패닉 남성들. 김상진 기자

28일 오전 윌셔 불러바드에 위치한 홈디포 주차장에서 구직활동을 하는 히스패닉 남성들. 김상진 기자

찻잔 속 태풍일까, 폭풍 전야의 정적일까. 그것도 아니면 언론의 호들갑일까.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미국 전역에 긴장감이 커졌다는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LA에선 우려 속에서도 아직 큰 요동이 없다. 자바 시장,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현장 등이 그렇다. 〈관계기사 3면〉
 
28일 오전 9시, LA 다운타운 피코 불러바드와 메이플 애비뉴 인근의 자바 시장 앞. 한인들이 운영하는 봉제 공장이 밀집된 곳이다.
 
이곳에서 매점을 20년째 운영해온 마리아 전 사장의 고객은 대부분 봉제 공장의 히스패닉계 노동자들이다. 전 사장은 “이민단속국(ICE) 차량을 봤다는 이도 있고, 단속 소문도 무성하지만 실제 무서워서 일을 안 나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뉴스를 보면 단속 때문에 난리 난 것 같은데 이곳은 평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봉제업계 관계자 역시 “히스패닉 직원들이 긴장하고 있지만 평상시보다 크게 동요하는 건 없다”고 전했다. 의류 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업주 역시 “히스패닉 직원들이 정상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꽃 가게가 즐비한 거리부터 자바 시장 주변 지역을 차를 타고 돌아다녀봤다. 업소마다 손님을 부르는 업주와 박스를 나르는 히스패닉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바 시장에서 도매상을 운영하는 앤젤라 하 매니저는 “우리 가게도 마찬가지고 주변 업주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한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며 “트럼프의 이민 정책 때문에 특별히 영향을 받았거나 변화가 생긴 것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바 시장 등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단속이 주로 강간, 살인, 갱단 등의 혐의를 받는 중범죄자(felony)를 대상으로 실시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천관우 이민법 변호사는 “이번 단속은 단순히 체류 신분 적발이 아니라 중범죄를 저지른 범법자가 주요 대상이라는 점을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ICE에 따르면 28일 하루 동안 전국적으로 적발된 불법 체류자들은 ▶음주운전 및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과테말라인(샌프란시스코) ▶기소 전력이 있는 볼리비아 갱단원(볼티모어) ▶불법 체류를 하며 음주운전으로 여러 번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법원 소환 명령에 응하지 않은 볼리비아인(버지니아) ▶강도 및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기소된 온두라스인(보스턴) 등 주로 중범죄자들이다.
 
사업주뿐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들도 큰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28일 오전 11시 이들이 주로 모이는 윌셔 불러바드와 유니온 애비뉴 인근 홈디포 앞에는 100여 명의 히스패닉 노동자들이 몰려 있었다. 대부분 오전 7~9시 사이 이곳에 형성되는 일용직 시장에서 일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정오가 다가오는 시간인데도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다.
 
히스패닉계 안토니오 코즈는 자신을 “불법 체류자”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트럼프가 됐다고 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건 잘 모르겠다”며 “친구들도 이전과 비교해서 크게 두려움을 느낀다거나 하지 않고, 평소대로 여기에 나와 일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곳곳에서 ICE의 단속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법 체류자들 사이에 소문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 25일 한 소셜미디어에는 한인들도 많이 찾는 부에나파크 지역 소스몰에 ICE 요원들이 다수의 불체자를 체포했다는 게시물이 게재됐지만, 본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민 당국의 단속이 소문과 함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25일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세관국경보호국(CBP) 국장이었던 길 컬리코스키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단속은 예상 가능한 일이며 강도가 세질 수는 있겠지만 모든 역대 행정부가 해왔던 일”이라고 말했다.
 
ICE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ICE 추방단속팀(ERO)은 지난해 총 14만6039명을 체포하고, 27만1484명을 추방했다. 체포는 하루 평균 400명, 추방은 743명꼴이었다.

강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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