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MAGA의 상식, LA의 상식
워싱턴DC는 붉은 수도였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붉은 물결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로 DC를 가득 메웠다.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를 취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극렬 지지자들 탓에 이번에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출장을 앞두고 ‘몸조심하라’는 지인도 적잖았다. DC에 도착하니 MAGA의 물결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호신용’으로 20달러짜리 붉은색 MAGA 모자를 구입해 쓰고 다녔다.
하지만, 실제 거리에 나서자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류 미디어 등을 통해 트럼프 지지자의 모습을 접하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선입견이 굳어졌던 것일까. 취임식이나 축하집회 등에서 만난 지지자들은 모두 밝은 얼굴로 ‘YMCA’ 노래를 부르며,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슨 축하공연이나 피크닉 나온 사람들 같았다.
동양인 기자의 취재에 친절하게 응해줬다. 혼자 왔느냐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먼저 제안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행사장 인근에는 취임식 전날부터 트럼프 모자와 티셔츠 등을 판매하는 매대가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뭔가 하나쯤 사지 않고는 못배길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차량진입이 통제된 차도를 걸으며 ‘MAGA’ ‘Fight’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호전적인 인상을 주기보다는 페스티벌에 가까웠다.
취임식 당일, DC의 기온은 14도(섭씨 -10도)까지 떨어졌음에도 많은 인파가 시내로 모여들었다.
백악관과 취임식이 열리는 의회, 그리고 스크린으로 행사를 볼 수 있는 실내 경기장 인근 경비는 매우 삼엄했다. 군 병력과 장갑차, 경찰들이 빼곡히 배치됐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곳곳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검색 요원들은 가방 안에 모든 물품을 하나씩 꺼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비행기에 갖고 탈 수 있는 전자담배도 허용되지 않았다. 아깝지만 버려야 했다.
의사당 앞에 도착하니 검색대에서의 삼엄했던 공기는 사라지고, 축제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대통령 차량 행렬을 지켜본 한인 여대생들은 “와” “멋있다” 등 감탄사를 연신 쏟아내며 인증샷을 찍기 바빴다.
어린 아들과 DC를 찾은 버지니아주 주민 제이슨은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루이지애나주에서 단체여행을 온 청소년 합창단원 데이비드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취임식에서 만난 트럼프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상식 회복’을 강조했다. 국경 통제 강화, 성전환자의 여성 스포츠 참여 금지, 오일 시추를 통한 가스값 안정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게 그들의 상식이었다.
21일 LA에 도착하니,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공항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대뜸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둘이랴. 불체자 단속과 추방, 국경 통제, 성 다양성에 대한 비관용, 지구환경을 배려치 않는 정책…
양쪽 모두 미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일 테지만, 관점은 정반대다. 한쪽의 상식은 다른 한쪽의 비상식이다. DC의 붉은색과 LA의 푸른색만큼이나 이질적이다. 그 간격은 좁혀질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벌어질까. DC에선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김영남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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