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어 외롭게 새해 맞는 한인 시니어
[신년특별기획] “무엇이 고민이세요?”
① 한인 시니어, 범죄·거리 안전·일자리 부족 걱정
시니어센터 부족해 경로회관 포화 상태
노인아파트 입주 원해도 대기 너무 길어
“연락도 없는 자식들에 외로움 느껴”
고령화되는 미주한인사회. 이 말을 증명하듯 취재를 위해 여러 차례 찾은 KCS 경로회관은 한인 시니어들로 붐볐다. "무엇이 고민이세요?"라는 질문에 한인 시니어들은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애로사항을 털어놨다.
◆ 갈 곳 없는 노인들="보세요 기자님. 여기 지금 앉을 자리도 없잖아요." 매일 경로회관을 찾는다는 70대 윤 모 씨가 빈틈없이 꽉 찬 의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윤 씨는 "메디케이드 소지자들은 데이케어센터가 워낙 많아 갈 곳이 넘치지만, 메디케어만 있는 한인 시니어들이 갈 곳은 이 경로회관 하나"라며 "이마저도 포화 상태라 늦게 오면 앉을 자리 찾기도 힘들다"고 전했다.
◆ 집도 더 이상 안전지대 아니다=플러싱의 60대 성 모 씨는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집에 있는데 도둑이 문을 따고 들어온 것. 성 씨는 "달그락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고, 체격이 큰 백인이 들어오다가 내가 안에 있는 걸 보더니 도망갔다"며 "이제는 문소리만 들려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후유증이 크게 남았다"고 전했다. 최근 안전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전기스쿠터'도 골칫거리로 꼽혔다. 건강을 위해 차량을 처분하고 걸어 다닌다는 80대 송 모 씨는 "전기스쿠터가 소리도 없이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데, 한 번은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며 "너무 위험하고, 길거리 다닐 때 두렵다"고 토로했다.
◆ 노인아파트? 죽은 뒤에나 당첨될 것=80대 조 모 씨는 "요즘 눈칫밥을 하도 먹어서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전했다. 조카네 집에서 거주 중인데, 전기·수도요금이 많이 나와서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노인아파트 당첨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조 씨는 "6곳에 신청서를 넣었고 그중 두 곳에서 대기번호를 받았는데, 몇천번대라 죽은 뒤에나 입주가 가능할 것 같다. 뉴욕시에서 안 쓰는 건물을 개조해서 노인아파트를 늘렸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인형 눈이라도 붙였으면=70대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오 모 씨는 "노인들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오 씨는 "남편이랑 각자 2000달러씩은 벌어야 렌트를 감당할 수 있는데, 남성 시니어들 일자리가 없어 외벌이 중"이라며 "여자들은 홈케어, 마트 캐셔 등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남자들은 70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전했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70대 심 모 씨는 "자식들은 타주로 이사 갔다"며 "더 이상 사회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울하다. 인형 눈 붙이는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 고독하게 맞이하는 새해=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라고 시니어들은 입을 모았다. 80대 조 씨는 "자식들은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형편이 어려운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혼자 미국에 남았다"며 "그나마 경로회관에 와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70대 노 모 씨는 "예전에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에는 자식들이 찾아왔는데, 요즘에는 연락도 없다. 공휴일에는 경로회관도 문을 닫아서 갈 곳이 없다. 외롭고 쓸쓸하지만 어쩌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글·사진=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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