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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고 성공한 입양아, ‘엘리트 위선’ 꼬집다

베스트셀러 『Troubled』 저자 로버트 김 헨더슨

친부모·양부모에 버림받고 위탁가정 10여곳 전전
마약·범죄 저지르던 문제아의 인생을 바꾼 군복무
“가족 개념 파괴·마약 합법·경찰 축소 주장은 위선”
'사치스러운 이상'이 실현되면 피해자는 서민계층

로버트 김 헨더슨 [인스타그램]

로버트 김 헨더슨 [인스타그램]

로버트 김 헨더슨의 책 'Troubled' [사이먼앤슈스터]

로버트 김 헨더슨의 책 'Troubled' [사이먼앤슈스터]

한인 생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의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한인의 자전적 책이 미국 등 각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고난’, ‘어려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Troubled’란 책의 저자 로버트 김 헨더슨은 미국 언론 ‘더 프리 프레스’와 ‘보스턴글로브’ 등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매년 연말에 발표되는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불우한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 방황기를 거치고 명문대를 졸업한 그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엘리트층과 일반시민, 나아가 서민들 사이의 괴리감이 극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게 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책을 부통령 당선인인 J.D. 밴스가 쓴 ‘힐빌리의 노래’와 비교한다.
 
어린 시절의 로버트 김 헨더슨 [블로그 캡처]

어린 시절의 로버트 김 헨더슨 [블로그 캡처]

그를 버린 세 부모
 
로버트라는 이름은 그의 생부(生父)의 이름에서 따왔다. 생부는 아이가 태어난 직후 어머니와 아들을 버리고 떠났다. 로버트는 멕시코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이라는 이름은 대학교를 자퇴한 한국인 생모의 성(姓) 김에서 따왔다. 로버트에게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밖에 없다. 첫번째 기억은 세 살 때쯤의 일이다. 그는 어머니의 무르팍을 껴안고 어머니의 뱃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고 했다. 숨을 쉴 수 없어 고개를 들자 두 경찰관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어머니를 잃게 될 것 같아 꼭 붙잡고 있었다.
 
두번째 기억은 어머니의 옆 의자에 앉아 초콜릿 우유를 마시는 장면이다.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우유를 땅에 흘렸으나 어머니는 닦아주지 못했다. 수갑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였다.
 
로버트는 이후 4~5년간 10여곳의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 헨더슨이라는 이름의 가족에 입양됐다. 하지만 입양된 가족의 부모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인지 로버트를 아들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버트는 그의 이름을 따온 세 명의 부모 모두에게 버림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
 
미 공군 복무 시절 당시의 로버트 김 헨더슨 [블로그 캡처]

미 공군 복무 시절 당시의 로버트 김 헨더슨 [블로그 캡처]

문제아, 군복무, 예일대
 
로버트는 4세 때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10세 때부터는 마리화나를 피웠다. 12세 때에는 더 심한 마약으로 분류되는 메스암페타민에 손을 댔다. 워싱턴포스트의 서평 기사에 따르면 그는 소년 시절 친구들과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자주 운전을 했으며 싸움에 휘말리는 등 문제아의 길을 걸었다.
 
로버트는 친구 한 명이 술에 취해 강아지를 절벽 밑으로 차버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17세에 공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8년의 군복무 기간 대부분을 파병된 유럽과 중동에서 보냈다. 공군에 입대하기로 했던 결정이 그의 인생을 바꿨고 전역 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교인 예일대에 입학했다. 그는 예일대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 등을 통해 대학 시절 소위 하층민 사회와 엘리트층 사이의 격차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기 전에는 내가 있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예일대 학생이 되고 나서야 현실을 알게 됐다”고 썼다.
 
그는 예일대 재학생의 경우는 미국 내 경제소득 상위 1% 학생 비율이 하위 60%보다 많다며 계층 격차와 신분의 대물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일대 재학생 시절 그는 ‘사치스러운 이상(luxury beliefs)’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치스러운 이상’을 “상류층에 도움을 주지만 하류층에는 더 많은 피해를 끼치는 생각과 이념들”이라고 정의했다. 이 표현은 곧 유명해졌다. 무슨 뜻일까?
 
엘리트층의 위선
 
예일대 재학 당시 한 여성 친구가 “일부일처제는 구식(舊式) 사고방식이며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로버트는 그 친구가 어떤 가정에서 자라왔는지, 본인 자신은 결혼은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자신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일부일처제 형식의 결혼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깨달은 듯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은 구식이며 사회는 이를 뛰어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로버트는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했다. 대학 친구들이 군 복무를 하는 것을 동경하고 2년제 대학교를 다니는 것이 4년제를 다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대학이라는 것 자체가 ‘성공’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하곤 했다. 로버트가 이들에게 ‘자녀들이 대학을 가는 대신 배관공이나 전기 기술자가 되는 것을 바라느냐’고 물으면 모두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답하기를 머뭇거렸다.
 
그가 고안해 낸 ‘사치스러운 이상’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지도 설명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이른바 명품(名品), 혹은 사치품으로 번역되는 ‘luxury goods’를 구매하기 더 쉬워진 사회가 됐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엘리트층은 그들을 일반계층과 차별화하는 개념을 만들어내야 했는데, 이를 물건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생각으로 구분하려 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로버트는 이런 엘리트층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어휘를 사용하고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를 키워도 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또한 이들이 경찰을 없앤다거나 마약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정책이 도입될 경우 실제 피해를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은 서민 계층이라고 했다.  

김영남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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