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유래와 의미] 한 해에 감사하며 가족의 소중함 되새겨
원주민 호의로 개척자 청교도들 목숨 건져
신대륙 첫 수확물로 원주민과 보은의 시간
생스기빙데이 자체가 ‘미국 건국 정신’ 상징
미국에 사는 이들이 추수감사절을 진심으로 대하는 이유는 뭘까. 연방 국무부는 웹사이트를 통해 ‘추수감사절은 온 가족이 한 해 동안 받은 수확 등 결과물에 감사하며, 나이 든 연장자와 이웃을 대접하는 날’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꼭 기려야 하는 사연이 담긴 날이라는 의미다.
추수감사절의 역사와 이야기가 곧 ‘미국의 건국정신’ 자체를 상징한다. 추수 감사절에는 박해와 폭력을 피해 자유의 항해를 나섰던 ‘순례자의 시조들(Pilgrim Fathers)’의 고난과 개척정신, 낯선 이방인을 가족처럼 반겨준 ‘원주민(Native American)’의 환대가 담겨 있다.
▶ 원주민, 굶주린 이민자를 품다
1600년 전후 시작된 미국 역사는 ‘영국 이민자 중심으로 미 동부에 정착해 13개 식민지를 건설, 원주민을 내쫓고 영토를 서부까지 확장했다’로 요약되곤 한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은 당시 영국 등 유럽발 이민자가 겪은 혹독한 정착기와 낯선 이민자를 대한 원주민의 포용 정신이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두 문명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초기에는 적대와 대결 대신 ‘포용과 통합’을 추구한 셈이다.
특히 당시 원주민이 굶어 죽어가던 영국발 이민자에게 생존의 방법을 알려준 역사적 사실은 추수감사절이 지닌 의미와 상징을 한층 깊게 한다.
연방의회 도서관과 국무부에 따르면 가장 잘 알려진 추수감사절은 1621년 가을 열렸다. 1620년 9월 16일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출항한 메이플라워호에는 청교도로 알려진 순례자의 시조 102명이 승선했다. 이들은 당초 목표로 한 미국 허드슨강 하구 버지니아주가 아닌 북쪽으로 600마일 떨어진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11월 21일 닻을 내렸다. 종교적 박해와 폭력을 피해 자유를 찾고자 이민 길에 오른 이들은 배에서 내리기 전 ‘메이플라워 서약’을 작성, 자치·민주·평등의 원칙에 기반해 독립된 식민정부를 세우자고 약속했다. 1607년 4월 26일 버지니아주에 당시 국왕 이름을 딴 정착촌 제임스타운이 건설됐지만, 이민자가 자체 규약을 맺고 공동체를 이뤄 새로운 세상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미국 이민 선조로 꼽힌다.
하지만 신대륙에 도착한 순례자의 시조들은 낯선 땅에서 정착하는 데 어려움에 부닥쳤다. 겨울을 나면서 46명이 추위와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부무 웹사이트는 “이들에게 첫 겨울은 힘들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었고, 식량도 부족해 절반이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당시 역사를 전한다.
이들의 생명을 구한 은인은 현지 ‘이로쿼이(Iroquois), 왐파노그아(Wampanoag)’ 원주민이었다. 이듬해 봄 원주민들은 물고기 뱃속에 씨앗을 넣어 옥수수를 재배하는 법을 알려줬다. 또한 이민자들이 낯선 땅에 적응해 재배할 수 있는 여러 작물, 사냥법, 낚시법도 선입견 없이 공유했다.
국무부 웹사이트는 “1621년 가을 이주민들은 옥수수, 보리, 콩, 호박 등 풍성한 작물을 수확했다. 이주민들은 첫 수확물 등 감사할 일이 많아 잔치를 계획했고, 원주민 추장 등 90명의 원주민을 초청했다. 원주민은 칠면조, 사슴을 구웠고 이주민은 원주민에게 크랜베리, 호박 요리법을 배웠다”며 가장 널리 알려진 추수감사절의 시작을 설명한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수확기 사흘 동안 먹고 마시던 원주민 전통과 이주민의 미국 개척사가 모두 담겨 있다. 원주민은 전통에 따라 낯선 이민자를 호의로 환대했다. 하지만 늘어난 이주민들은 원주민을 배척하고 정복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아이러니한 미국 역사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추수감사절을 통해 미국의 참된 아메리칸 드림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민자의 후손들이 새로운 이민자를 배척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순교자의 시조들과 원주민들이 서로를 보듬고 함께 감사할 줄 알았던 지혜가 미국의 건국정신이다.
▶ 추수감사절은 연방 국경일
추수감사절은 연방 국경일이다. 연방 의회와 정부가 11월 네 번째 목요일에 기념한다고 수정했다.
추수감사절을 연방 공휴일로 처음 선포한 이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다. 워싱턴 대통령은 1789년 11월 26일을 ‘국민 추수감사의 날(Day of Publick Thanksgivin)’로 선포했다. 앞서 연방 의회는 1789년 9월 28일 추수감사절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마지막 목요일을 지정하면서 날짜도 고정됐다. 하지만 11월에 네 번째 목요일, 다섯 번째 목요일이 있는 해는 혼선을 빚었다.
결국 1941년 연방 의회는 네 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기념한다는 결의문을 통과시키며 공휴일 날짜를 못 박았다.
▶ 원주민의 상처도 치유해야
순교자의 시조들 등 건국 초기 유럽발 이민자에게 원주민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하지만 이주민은 경작지를 넓힌다며 원주민을 총으로 학살했고, 원주민 수백만 명은 이주민이 옮겨 온 감염병 세균에 면역력이 없어 몰살됐다. 1830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서명한 ‘원주민 강제이주법(Indian Removal Act)’은 폭력의 역사다. 정부 차원에서 당시 미시시피강 동쪽에 살던 원주민을 강 서쪽의 척박한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원주민은 1970년부터 추수감사절을 ‘국가 애도의 날’로 삼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왐파노아그 부족을 중심으로 유럽인의 원주민 학살, 노예화 등 참상을 잊지 말자는 취지의 연례행사다.
원주민들은 1975년부터 추수감사절에 반추수감사절(Unthanksgiving Day) 행사를 열어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을 추모하고 있다. 2005년에는 원주민 강경파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1969년 11월부터 19개월간 점거농성을 벌였던 샌프란시스코 앨커트래즈섬을 찾아 기념식을 치르며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아니라 추수강탈절(Thankstaking Day)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원주민에게 추수감사절이 기쁘지만은 않다. 유럽계 이주민의 만행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미국 역사의 주인공을 편향되게 서술해서도 안 된다는 문제 제기다. 미국에 뿌리내린 이민자와 자손이라면 진지하게 공유해야 할 안목이기도 하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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