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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나우] 뜻대로 안 되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 봉쇄

미국은 왜 중국 반도체에 기술봉쇄를 시도했을까? 경제사학자 크리스 밀러의 『칩워』(2022)에 따르면, ‘병목기술’(전체의 성능을 제한하는 기술)을 통제하면 기술개발 저지가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검증할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됐다.
 
중국 화웨이는 스마트폰 메이트60에 7nm 칩을 장착하고 위성통신 기능까지 추가했다. 중국 파운드리 SMIC의 매출은 3년째 20% 이상 성장 중이다. 메모리 기업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장비 부문에서도 매출이 1조원을 넘는 기업이 등장했다.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은 어센드910C를 출시해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에 도전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봉쇄 전략은 실패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라고 하지 않는가. 기술에는 한가지 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대안기술 중 하나가 선택되면 더 많은 세부 기술이 함께 개발되면서 주력 기술이 된다. 만약 ‘강제적’으로 대안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보조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또 다른 주력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
 
예컨대 기술봉쇄의 최후의 보루로 네덜란드 기업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가 있다고 보고 있지만, 중국은 EUV보다 더 짧은 파장의 빛을 만들 수 있는 방사광가속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를 쓰려면 광원 활용 방법, 감광 물질, 노광 시스템 등 개발이 필요한 기술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방사광가속기로 EUV를 대체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로 여겨졌지만, 봉쇄라는 극한상황은 기술개발 양상을 바꿀 수 있다.
 
봉쇄의 여파로 중국 반도체가 ‘갈라파고스’(독자적 기술 생태계 구축)가 되건 ‘와칸다’(‘초격차’ 기술 선진국 수준에 도달)가 되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는 득이 될 일이 없다. 당장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소재 산업에 타격이 심각하다. 한편, 일본은 한국에 직접투자를 늘리면서 소부장 시장에 대한 침투력을 강화하고 있어서 한국의 자생력이 약화되고 있다.
 
미국 정책에서 봉쇄의 이면인 내재화(자체 개발과 생산) 또한 미국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인텔의 파운드리 분사 결정은 반도체 내재화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첨단 반도체 제조를 TSMC나 삼성과 같은 외국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자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글로벌 분업은 부가가치 수준에 따라 저절로 발생한 측면이 있는데, 미국과 중국은 자의든 타의든 자국 이익을 위해 인위적인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이 문제다.

이병훈 /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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