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빅 브라더와 휴대전화
어느 집 거실에서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부가 금지하는 ‘불온한’ 내용을 말하는 순간,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다.” 빅 브라더의 감시 장치인 텔레스크린이 벽 그림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제복의 무장 경찰이 들이닥쳤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체포되는 장면이다.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는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으로 모든 국민을 감시하고 있었다.텔레스크린과 유사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송수신이 가능한 기기, 즉 휴대전화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 콕스미디어그룹의 홍보 자료에 대해 보도했다. 이 자료에서 콕스는 스마트 기기의 마이크를 통해 이용자의 대화를 듣고 그 내용을 이용, 소비자 표적마케팅을 수행하는 ‘액티브 리스닝(Active listening)’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콕스는 또 그동안 구글과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기술기업과 협력해 왔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이라면, 휴대전화가 빅 브라더의 텔레스크린처럼 우리의 일상적 대화를 기록하고 빅테크에 데이터를 통째로 전달한 것이다.
보도가 나오자 빅테크 기업들은 펄쩍 뛰며 부인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통해 이용자의 대화를 몰래 수집한 사례가 벌써 여러 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부부는 아마존의 AI 스피커 알렉사가 자신들의 사적인 대화를 녹음해 제3자에게 전달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또한 메타는 이용자 동의 없이 페이스북 음성메시지 내용을 녹취한 것이 드러났고, 애플과 구글도 AI 스피커에 녹음된 음성을 기록한 사실이 들통난 뒤에야 이를 인정하고 중단을 약속했다.
이들은 또 자사의 인공지능이 ‘오케이, 구글’이나 ‘헤이, 시리’와 같은 특별한 단어에만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런 단어에 반응하기에 앞서 대화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허락 없이 개인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기업만은 아니다. 중국은 공공 안전을 이유로 안면 인식 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 2018년 중국의 한 콘서트장에서 수십 명의 지명수배자가 체포됐다. 이들을 알아본 것은 행사장에 설치된 안면 인식 장치였다. 어떤 곳에선 무단횡단자의 얼굴을 식별해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전광판에 띄운다. 안면 인식을 해야 비치된 휴지를 쓸 수 있는 공중화장실도 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이 수백만 명의 통화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한때 정보기관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정부가 2008년부터 구글과 메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서버에 직접 접근할 수 있었으며 동맹국과 접근 권한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 정부의 명분은 테러 방지였고 대상에는 일반 시민이 다수 포함됐다. 물론 시민들은 감시당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손 안의 컴퓨터’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의 말과 행동은 언제 어디서나 관찰되고 기록된다. 주로 휴대전화 카메라와 마이크가 눈과 귀가 되지만 CCTV 등 센서가 달린 기기는 모두 감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사적인 대화가 몰래 수집되고 길거리에 널린 카메라가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하는 현실은 『1984』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는 선전 문구에 언제나 노출되는 오세아니아 국민과는 달리, 현실의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데이터를 만들어 바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문자를 보내고 카드 결제를 할 때마다 데이터는 기업과 정부가 관리하는 서버에 차곡차곡 쌓인다. 휴대전화의 잠금 해제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과 지문 등 민감한 생체정보를 넘긴다. 공공 안전을 빌미로 한 권력의 감시와 통제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휴대전화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세상은 『1984』의 일상적 자기검열 사회다. 휴대전화에 감시받고 스스로 검열하며 살 수는 없다.
이재국 /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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