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실패한 ‘프로포지션 47’의 교훈
리치먼드는 1990~ 2000년대 초만 해도 살인 사건 비율이 높은 도시에 포함됐다. 하지만 작년에는 살인 사건이 8건에 불과했다. 이는 2020년(22건), 2021년(18건), 2022년(18건)과 비교해도 현저히 적은 숫자다.
리치먼드 시 정부는 범죄 증가의 원인이 사회적 문제에 있다고 보고 이의 해결에 집중했다. 강력한 처벌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 정부는 2021년 ‘이웃안전사무실(Office of Neighborhood Safety, ONS)’을 신설해 폭력 문제 해결에 나섰고,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이니셔티브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에 지역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2021년, 인근 도시인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가 경찰 개혁 약속을 철회하는 동안 리치먼드는 경찰 예산에서 300만 달러를 사회 서비스로 전환해 주목된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2022년 리치먼드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은 298건으로, 2015~2019년 사이 어느 해보다 적은 숫자였다. 또한,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폭력 범죄는 766건에서 565건으로 26%나 감소했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위험했던 도시가 이제는 인근 도시보다 범죄율이 낮은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리치먼드시 ONS의 샘 본 커뮤니티 서비스 부국장은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의 협력 및 관계 구축이 총기 관련 사건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치적으로도 항상 논란이 됐다”고 설명했다.
가주도 지난 10년간 리치몬드 시와 비슷한 정책을 펼쳤다. 2014년 통과된 ‘프로포지션 47’이 그것이다. 프로포지션 47은 문서 위조, 사기, 절도, 마약 소지 등 비폭력 경범죄에 대한 형량을 낮추는 게 골자다. 교도소 수감 인원을 줄여 절감된 예산을 재범 방지 및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에 사용하자는 목적이었다. 경범죄자의 재활 지원을 통해 재범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리치먼드 시가 시행한 것과 의도는 동일하다.
하지만 프로포지션 47은 역효과만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가벼운 처벌을 예상한 범죄자들의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졌고, 마약 중독 치료 등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자원 투입도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경범죄자의 재활은커녕 재범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포지션 47은 LA시에도 범죄율 급증을 초래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LA시에서 절도 범죄는 60% 증가했지만, 경찰 대응은 느슨해지고 법 집행의 억제력도 약화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LA의 치안 시스템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선거에는 프로포지션 47을 무효화하고 경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는 프로포지션 36이 투표에 부쳐진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당파를 초월해 71%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시행된 프로포지션 47이 처참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LA시는 범죄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리치먼드처럼 사회적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인지, 강경 대응을 선택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적 문제 해결 방식이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정책을 쉽게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11월5일 선거에서 프로포지션 36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미래 LA시의 치안 문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유권자들의 결정을 기대해 본다.
장수아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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