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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나그네 젖은 눈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9월17일이 민족의 명절 추석이란다.
 
둥밝은 보름달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그리운 고향 찾아가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푸짐하고 맛있는 잔치 음식과 송편 배불리 먹고….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어울리는 명절.
 
한국에서는 해마다 추석이면 대단한 귀향 전쟁이 벌어지는 모양인데, 뉴스를 보니 올해는 의료분쟁 때문에 그렇게 흥겹지 못할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 바쁘다는 소식이다.
 
우리 타향살이 나그네에게는 추석 같은 명절이 반갑기보다 그저 강 건너 불 보기, 남의 일 같기만 하다. 한국에 부모님이 살아계신 이들은 전화로라도 안부를 여쭐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젖은 눈으로 멍하니 보름달 올려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잠긴다. 디아스포라의 서글픔이다.
 
나처럼 삼팔따라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렇다 할 고향도 없는 무향민(無鄕民)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떠나온 나라의 친구들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겠구나, 그런 막연한 그리움… 나그네의 젖은 눈.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먼 데 있는 친구들 혹은 나그네들의 손을 잡고 서로 껴안고, 글썽한 눈끼리 눈으로만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리움의 달무리에 정이 번지면, 시와 시인을 또 자극하는 시간의 바다가 출렁거린다.” -고원 시집 ‘나그네 젖은 눈’ 머리글의 한 구절
 
시인은 ‘달 둘이 떠서...’라고 노래한다. 고향에도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도 같은 달이 뜬다는 표현, 고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달이 어디 둘 뿐이랴? 하나의 달이 천(千)개의 강을 고루 비춘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온 세상을 고루 비춘다. 그러니까, 지구 구석구석에 사는 나그네 모두가 같은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요새는 떠돌이 나그네, 이방인, 경계인, 유랑민 같은 말 대신에 ‘디아스포라’라는 멋쟁이 서양말이 널리 쓰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아스포라 정신’ ‘디아스포라 문학’ 같은 식으로….
 
이 말은 본디 제 나라에서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 난민을 뜻하는 정치성 강한 용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떠나온 곳은 있는데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주민을 뜻하는 말로 폭넓게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디아스포라인 셈인데, 어쩐지 어색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화예술에서는 디아스포라가 창작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유대인 예술가들의 막강한 업적과 영향력이 대표적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변방의 힘’ 같은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 ‘-너머’를 뜻하는 dia와 ‘씨를 뿌리다’는 뜻의 spero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뿌리 뽑힌 떠돌이 나그네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뜻하는 이산(離散)과 새로운 세계의 개척이라는 적극적인 뜻의 파종(播種)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씨를 뿌린다’는 말이 매우 매력적이다. 새로운 땅에 뿌리내린 우리 이민자들의 존재 의미를 말해준다. 고향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 간절한 그리움을 창조적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인 우리 2세들을 잘 가꾸고 보살펴,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그러기 위해서 정신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도록 이끌어 주십사….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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