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디<해발1만64피트> 맨발 등정…"나는 나를 이겼다"
80세 한인 산악인 탁재홍씨
10년 전 볼디 오른 80대 보고
'나는 80 되면 맨발로' 다짐
매일 4마일씩 맨발 등정 연습
간 질환 아내 등산으로 완치
하산 즉시 아내에 생존 신고
해발 1만64피트 높이의 마운트 볼디는 높은 고도와 험한 길, 가파른 경사로 ‘악산’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조난사고가 빈번한 곳이다.
30여 년 경력의 산악인 탁재홍 씨는 오는 16일 팔순 생일을 맞아 지난 8일 마운트 볼디를 등정했다.
일반인도 오르기 힘든 산길이지만, 탁 씨는 이날 과감하게 신발을 벗고 올랐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한미산악회 소속인 탁 씨는 “10년 전, 80세의 산악회원이 마운트 볼디를 정복한 적이 있다”며 “내가 80이 되면 이에 더해 맨발로 오르리라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온은 105도에 육박했다. 자갈과 돌로 가득한 길은 가파른 경사와 만나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탁 씨는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산에서 탁 씨를 마주친 이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놀라움을 표했다. 어떤 이들은 믿을 수 없다며 탁 씨의 발을 만져보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2~3시간 걸릴 거리이지만 탁 씨는 오전 5시 반에 출발해 장작 5시간이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늦게 출발한 한미산악회 동료들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탁 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탁 씨가 중간에 신발을 다시 신거나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동료들은 마운트 볼디 정상에서 준비해온 케이크와 풍선을 꺼내 탁 씨의 80세 생일을 축하했다.
탁 씨는 “누군가는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내가 자랑스럽다”며 “또한 산을 오르는 타인종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보여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탁 씨는 이번 등정을 위해 매일 집 근처 앞산을 4마일씩 맨발로 다녔다. 처음 맨발로 마운트 볼디를 등정하겠다고 했을 때, 동료들과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다.
탁 씨는 “아내는 아침에 내가 나갈 때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함께 산을 다니며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걱정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라고 했다.
2018년, 탁 씨와 에베레스트를 함께 오르던 도중 고소증이 온 아내(탁경숙 씨)는 이후 1년 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악산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아내였다.
탁 씨는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걱정하고 있을 아내에게 달려가 생존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사실 탁 씨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지난 2000년, 간호사였던 아내가 간 질환으로 급격히 몸이 나빠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탁 씨는 간에 좋다는 ‘인진쑥’을 마련하기 위해 강원도까지 찾아갔다.
그러던 중 건강 서적인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를 발견해 읽었다.
그 책에서 산을 타며 병이 치유된 사례를 보고 아내와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3년 뒤 아내는 완치되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산의 ‘참맛’을 본 탁 씨는 그때부터 에베레스트, 킬리만자로산, 매킨리산, 마운틴 위트니 등 유명한 산들을 다니며 산행을 시작했다.
탁 씨는 “산은 나의 삶의 일부다”며 “산을 오를 때면 몸은 피곤하지만 동시에 치유되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산을 타는 재미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아 안타깝다”며 “한미산악회는 수십 년 경력의 산악인 베테랑들이 많다. 많은 분이 오셔서 함께 산을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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