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9·11 특별기획- 9·11 테러 생존 한인의 ‘그날의 기억’
사건 당일 남쪽타워 79층 후지뱅크 근무 김 모 씨
비상계단 통해 기적적 탈출…아직 일상생활에 어려움
2001년 9월 11일.
23년 전 오늘, 공포의 바람이 뉴욕 하늘을 뒤덮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날의 아픔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 사건 당일 남쪽 타워 79층 후지뱅크에서 근무 중이었던 1943년생 김 모 씨는 40분가량 진행된 전화 인터뷰 내내 떨리는 목소리를 여러 번 가다듬으며 긴박했던 당시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언론에 한 번도 나선 적 없었지만, 모두가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 입을 뗐다. 아직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그는 “지금도 말하다 보면 흥분이 돼서 덜덜 떨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수화기 너머로 긴장감과 두려움이 전해질 정도였다.
◆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날
전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던 그날, 김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에 나섰다. 그는 “유난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고 설명했다. 뉴욕 스카스데일 집에서 오전 7시반쯤 출발해 8시40분경 자리에 도착했다. 자리 정리를 하고, 늘 그랬듯 화장을 고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오전 8시46분. 아메리칸항공11편 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 북쪽 타워를 향해 돌진했다.
◆ 화장을 고치고 나와보니
화장을 고치고 나와보니 평소와 달리 라운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순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복도로 나와보니 이미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남자 행원들이 그를 향해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고, 이에 급히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 물 끼얹듯 조용해졌다
79층에서 53층까지. 20층 넘게 걸어 내려오는 동안 김 씨는 정확히 무슨 일이 터졌는지 알지 못했다. “비행기가 사고로 북쪽 타워를 쳤대.” 내려오면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맑은 날 비행기 사고가 났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고 현장은 소통을 위해 층마다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뒀고, 오피스 스피커에서 조그맣게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와글와글한 사람들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다들 조용!” 아래층에 있던 한 남성의 고함에 현장은 일순간 물 끼얹듯 조용해졌다.
◆ 분명 ‘세이프존’이라고 했는데
“남쪽 타워는 ‘세이프존’입니다.” 스피커에서는 ‘세이프존’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됐다. 북쪽 타워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니, 남쪽 타워에 있는 이들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라는 얘기가 들렸다. 도저히 다시 걸어 올라갈 수 없었던 김 씨는 52층 계단 벽에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2~3분쯤 지났을까. 찌이이익! 무언가 빌딩을 쥐고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테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이 흔들리며 먼지와 파편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손잡이를 붙잡고 겨우 한 칸씩 내려가고 있는데, 불이 번쩍하며 빌딩 위쪽에 뭐가 부딪혔다. 비명 소리가 들리며 한 남성이 “킵 워킹!”이라고 소리쳤다. 그때부터 아비규환이었다.
◆ 절체절명의 순간, 비틀즈의 노래가 뇌리를 스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계단을 3~4칸씩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잔뜩 겁먹은 몸이 따라주지 않아 김 씨는 빠르게 내려갈 수 없었다. 그때 한 미국 청년이 다가와, “두 유 워너 홀드 마이 핸드?”라고 물었다. 김 씨는 우습게도 그 순간 비틀즈의 ‘아이 원 투 홀드 유어 핸드’라는 곡이 뇌리를 스쳤다고 했다. 그는 노래 제목처럼 청년의 손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청년은 “가끔 빌딩이 바람에 흔들리곤 하는데, 그게 좀 심해진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며 공포에 질린 김 씨를 안심시켰다. 중간쯤 내려왔을까. 함께 내려오던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 때문에 천천히 이동하는 청년에게 미안했던 김 씨는 “이제 내가 알아서 가겠다”며 손을 놨다. 그래도 청년은 쉽게 가지 못하고 자꾸 뒤를 돌아봤고, 김 씨는 “뒤돌아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
“죽음을 향해 오르던 소방관의 뒷모습 눈에 밟혀”
붕괴 전 일으켜 세운 소방관 덕에 목숨 구해
김 씨 근무했던 후지뱅크 직원 23명 사망
◆ 온 세상이 시꺼먼 재로 뒤덮였다
드디어 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3층까지 내려온 김 씨의 귀에 “지하 1층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뛰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 1층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직감했다. 엄청나게 큰 일이 터졌다는 것을. 사람들이 1m 간격을 두고 양쪽으로 줄을 서 있었는데, 이를 통제하는 경찰들 표정이 엄청나게 심각했다. 하이힐과 휴지 등 물건이 사방에 널려있었고, 대낮인데도 온 세상이 시꺼먼 재로 뒤덮여 있었다. 줄을 따라가다 보니 회전문이 나왔고, 깨진 유리 사이로 빠져나온 김 씨는 강가 쪽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다리가 너무 떨려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이동하던 그는 순간 뒤를 돌아봤다. 북쪽 타워에서는 90층 즈음에서, 남쪽 타워에서는 김 씨가 다니던 은행이 위치한 70~80층 즈음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처참한 광경을 뒤로하고 전철역에 다다른 그는 고민에 빠졌다. 이게 테러가 맞다면, 전철역 내부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빌딩이 무너질 거라는 확신이 생겼기에, 어디로든 피신해야 했다. 문제는 전철을 이용해 통근하지 않았던 그가 노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무작정 한 여자아이를 따라갔다.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전철이 김 씨 앞에 섰고, 열차에 올라타 여자아이에게 집 가는 길을 물었다. 그랜드센트럴역에서 환승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렸는데, 공포가 얼마나 거셌으면 열차가 움직이는 소리조차 무서웠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환승역에 도착했고, 이때도 열차가 바로 왔다. 김 씨는 “천운이 따랐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시간에, 월드트레이드센터는 붕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죽음 향해 오르던 어린 소방관
오전 11시.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후유증 때문에 아파트마저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문 열기도 힘들었다. 그날 김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올 때, 무거운 도끼를 들고 죽음을 향해 계단을 오르던 소방대원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그는 특히 “내 목숨을 구해준 어린 소방대원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계단을 내려오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았는데, 무거운 소방호스를 맨 소방대원이 그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곧 건물이 무너질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내려가라”고 등을 밀어줬다. 곧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앞날이 창창한 어린 소방대원은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김 씨는 “그 뒷모습이 지금까지도 마음 아프게 자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가 근무했던 후지뱅크는 이날 23명의 직원을 잃었다. 그는 “은행 보스들과 시큐리티들은 회사 기밀이 유출될까봐 자리를 지키다가 모조리 희생됐다”고 말했다.
살아나오지 못한 동료들, 그리고 자신을 살려준 어린 소방관을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사건을 겪은 많은 이들이 뉴욕을 떠났지만, “아직도 스카스데일 그 집에 살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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