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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마이모니데스의 자선 등급

최청원 내과 의사

최청원 내과 의사

20년간 맥시코  바하 캘리포니아로 의료봉사를 다니며 그들의 금가고 일그러진 삶의 모습도 보게 된다. 어느 날 저녁 한 원주민 집 앞의 공동 쓰레기장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아이들의 머리는 텁수룩했고 새까만 얼굴에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맨발의 아이들 중 한 명은 내가 잘 아는 원주민의 6살 된 딸이었다.
 
측은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니 머뭇머뭇하면서 “자전거”라 말하고는 말문을 닫았다. 그 말이 귀에 와 닿는 순간, 그 아이의 아버지가 11살때 있었던 자전거 관련 사연이 떠오른다.  
 
26년 전 외딴 바닷가 오두막에 살던 소년은 무능한 아버지로 인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매일 바다로 나가 전복,가제, 조개를 채취했다. 바다와의 만남이 전부였던 소년은 미소를 잃었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의 집 앞에서 바다 낚시를 하며 소년과 친해졌다. 소년에게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책가방과 자전거”라고 했다.  
 
소년이 책가방과 자전거를 받고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선한 목자 병원 진료를 마치고 밤 9시쯤에야 텐트 속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자전거 굴러가는 소리와 소년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독한 가난이 소년의 동심을 삼키고 있었다.  
 
소년의 배움을 위해 2년 간 학비를 지원했지만 가족 사정으로  교육은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끝까지 그를 후원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소년의 딸에게도 자전거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가 된 소년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너는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해  일곱 식구가 조그만 방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자녀들에게 더는 가난이 없도록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처지가 술만 마시던  무능력한 아버지로 인한 영향이 크다며 울먹였다.  
 
철학자, 과학자,종교가, 그리고 의사로 유대인들이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는 마이모니데스는 자선에는 8가지 등급이 있다고 했다. 그중 그냥 불쌍해서 주는 것이 최하 등급이다. 이어 자선은 하되 인색한 것이 7위다. 그렇다면 최고 단계는 무엇일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자립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선의 최고 단계다.  
 
새 자전거 바퀴의 자전거 살이 틈으로 아침햇살이 빛나듯이 그들의 얼굴에도 즐거운 미소가 번지기를 마이모니데스는 기대할 것이다.  
 
홈리스의 잠자리를 해결해 주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마이모니데스의 자선  등급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최청원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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