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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동물의 왕국 한국

조현용 교수

조현용 교수

동물의 왕국이라고 글의 제목을 쓰고 보니 한국은 정말 동물의 왕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동물이 정말 많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기르거나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 까닭일 수도 있고, 외로움이 짙어져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니 사람 가족의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유기견, 유기묘 천지라는 기사도 접하게 됩니다. 쓸쓸한 풍경입니다. 힘들 땐 가족이었다가 떠나갈 때는 그냥 짐승일 뿐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동물의 왕국은 진짜 동물의 세계는 아닙니다. 인간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하긴 인간도 동물이니 굳이 말하면 인간이 사는 동물의 세계이겠네요. 동물의 세상에서 가장 큰 특징은 적자생존입니다. 그리고 적자생존의 기본 원리는 경쟁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바로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인간 세상은 경쟁이 극대화된 세상입니다. 특히 한국이 그렇습니다. 경쟁이 극대화하면 분노와 우울도 극대화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환호하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좌절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는 늘 분노와 우울이라는 두 감정이 공존합니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빨리 오르기 위해서는 분노라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에너지이자 경쟁에서 이기는 에너지가 바로 분노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 한없이 가라앉습니다. 환호작약하여 뛰어오른 사람은 자연스레 떨어집니다. 늘 환호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에 괴로움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떨어지는 순간은 괴롭게 마련입니다. 경쟁에서 진 사람도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분노의 에너지가 잦아들면 더 깊은 우울 속에 박히게 됩니다. 우울의 뿌리는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분노와 우울이 만연해 있는 세상은 살기가 힘이 듭니다.
 
21세기 한국은 성장을 거듭하며 활기가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경쟁력이 오히려 무기였습니다. 경제도, 노래도, 드라마도 하면 된다는 마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제 경제뿐 아니라 문화도 군사력도 어느 나라에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경쟁이 기쁨을 준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경쟁이 지나치면 동물의 세계가 됨을 잊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경쟁의 왕입니다.  
 
텔레비전 속은 온통 경쟁의 세상입니다. 온갖 경쟁프로그램이 가득합니다. 연예인의 집을 보여주고, 가수 간의 경쟁을 보여줍니다. 날마다 시청률이 나옵니다. 구독자와 조회 수는 그대로 돈이어서 세상은 자극의 일상화입니다. 남의 세상과 나의 세상을 늘 비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교가 아니라 대조가 됩니다. 남은 행복하고, 부유하고, 웃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며 한숨이 나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나는 쫓기거나 숨어있는 생명체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지금 동물의 왕국입니다. 청년의 우울증, 노인의 자살률이 심각합니다. 청년들은 결혼은커녕 연애도 안 합니다. 나라 전체가 활기를 잃고 있습니다. 활기가 사라진 곳에 먹고 먹히는 분노가 한가득입니다. 목소리가 커지면서 비판은 비난이 되고, 비난은 비꼼이 됩니다. 화는 화를 부릅니다. 분노가 분노를 부르고, 괴로움이 괴로움을 부릅니다. 적자생존의 세상, 동물의 세계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우울과 분노의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극적 생활을 줄여야 합니다. 모두가 이 고민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동물의 왕국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나도 분노와 우울의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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