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신뢰가 가벼워지는 한국사회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신뢰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더구나 신뢰 체계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마저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치는 신뢰사회를 규범으로 지키려는 사법을 무너뜨리려 안달이고, 정치세력 간의 난투극은 국민의 신뢰를 난도질하고 있다. 의사들은 주머니를 챙기려 생트집을 잡으며 환자를 떠나 정부를 이기려 하고 있다. 이기심에 절어 친구와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신뢰를 깨는 주범은 욕심이고, 욕심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니 결국 인성의 문제 아닌가? 선량한 인품은 불가항력이 아니면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이나 기대를 버리거나 상식을 벗어난 공격으로 상대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다. 누구나 기분이 상하기만 해도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
신뢰는 생물이어서 권력과 재력, 위계에 의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순위에서 밀리기도 하지만, 가꾸지 않으면 퇴화하기도 한다. 우정이 그렇고, 조직생활이 그렇고, 사회의 모든 기능 속에 살아있는 믿음이 그렇다. 멀리 있으면 희미해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금이 가기도 한다. 반대로 벽돌 쌓기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높은 경지의 신뢰가 믿음직스럽고, 야무지게 다지면 무쇠보다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우의를 지킨 사례는 수없이 많고, 목숨 바쳐 충성한 지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신뢰 증진은 상호존중과 양보, 희생에서 나온다. 진심으로 존중하는 얼굴에 감동과 신뢰가 붙고, 웬만한 실수도 톨레랑스, 양해와 포용으로 품으면 신뢰는 깊어진다.
어찌 보면 세상은 서로 인정하고 공존함으로써 순기능으로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다. 작게는 일대일 관계에서부터 크고 작은 모임이나 조직, 더 넓게는 공동체와 사회 전체, 국가가 신뢰의 얼개로 엮이어 있으며, 그 신뢰 속에서 구성원들은 안심하면서 생존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 체제에 유해한 인물이나 행위는 멀리해야 할 독소가 아닐 수 없다.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고 다져지는 세상은 건전하고 발전한다는 원리가 요즈음 한국에서 더없이 절실하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