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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마지막 버스

The last bus, 2024, Digital painting.

The last bus, 2024, Digital painting.

나는 로드트립에 관한 영화를 즐겨본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다.  
 
‘마지막 버스’(The Last Bus)라는 영화를 봤다. 한 병든 노인이 죽은 아내의 유골을 들고 스코틀랜드 북쪽 끝 마을인 존 오 그로츠(John o‘ Groats)를 떠나 잉글랜드 남서부, Land’s End (850마일)로 여정을 떠난다. 지금은 노인이 되어 부인의 유골을 들고 가지만, 1950년대 이 부부는 어린 시절 비극의 아픈 기억에서 가능한 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해 잉글랜드 집을 떠나 스코틀랜드 북쪽 끝 마을인 존 오 그로츠로 향했다.  
 
나도 한국을 떠난 이유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신혼생활로 바빴다. 나는 남자 친구조차 없었다. 그나마 교사 임용고시로 선생이 된 후, 결혼하자는 남자들이 서너 명 나타났다. 교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좋다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직장과 남편의 노예로 살아야 할 것이다. 노예해방의 돌파구로 유학을 선택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병든 노인은 죽은 아내의 유골과 무료 버스 승차권과 지도를 들고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고향 아닌 고향을 향해 힘들게 여행한다. 여정 중 노인은 무슬림 여성을 괴롭히는 인종차별주의자인 술에 취한 사람과 용감하게 대항하는 등 여러 사건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국적인 이야깃거리가 된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 노인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로드트립 영화를 보면 힘든 여정일지라도 자리를 박차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제자리에 고인 물로 남고 싶지 않다. 파도가 치대며 거품을 놓고 떠났다 다시 오듯 다리 성할 때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
 
친정 식구가 모두 차 운전이 서툰 DNA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인지 난 차 운전에 서툴러 여러 번 사고를 냈다. 하지만,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나도 플로리다까지 걸어서 가 볼까?  
 
Google 지도로 뉴욕시에서 플로리다까지 보행자 경로의 길이가 1500마일이다. 맞는 계산인지 확실치 않지만, 한 시간에 2.5 마일 속도로 걷는다고 치면 600시간 정도 걸린다. 주머니에 크레딧카드와 신분증을 넣고 하루에 여섯시간씩 걸으면 4개월 정도 걸린다. 걷지 않는 휴식 시간을 더하면 일 년이 걸릴 것 같다. 가다가 힘들면 버스도 타고 옷과 신발이 낡고 더러워지면 버리고 사 신고 입으면 된다. 날이 저물면 쉴 곳을 찾아 들어가고 배가 고프면 식당에 앉아 쉬었다가 간다. 당장에라도 그냥 남쪽으로 걸어가면 어느 아늑한 해안 마을에 도착할 것 같다.  
 
영화 ‘마지막 버스’에서는 노인의 여행이 감상적으로 단조롭고 평탄한 길처럼 느껴진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과연 내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져 객사하지 않고 플로리다까지 갈 수 있을까?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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