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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오물 풍선, 오물 발상

지난달 28일 미국 대통령 선거 TV토론은 평양에서도 유심히 봤을 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약한 성량과 불안한 눈빛을 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후보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진행할 3차 정상회담 장소를 구상했을까. 약 열흘 전 평양 순안공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새벽 2시 45분까지 기다리며 속 끓이던 때를 상기하며, 그래도 트럼프 같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했을까.
 
한편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오물 풍선으로 바빴다. 북한은 5월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6차례 오물 풍선을 38선 이남으로 날려 보냈다. 김 부부장은 첫 살포 다음날 조선중앙통신에 본인 명의 성명을 냈다.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 기생충 인분과 쓰레기로 북한 주민의 고된 일상이 주목받자 이젠 애꿎은 종잇조각을 주로 보내며 표현의 자유를 논하다니, 왠지 딱한 마음마저 든다. 기자뿐만 아니다. 지난주 주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유럽인 기자는 “그런 도발을 해야 하는 북한 처지가 딱해 보인다”고 했고, 동남아인 교수는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다”고 혀를 찼다.
 
딱한 건 오물 담은 풍선을 날려 보내자는 발상 자체가 오물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북한 지도부다. 핵심 인물인 김여정 부부장이 직접 나서 궤변을 늘어놓는 것도 애처롭다. 오물 풍선을 보내겠다는 의기양양한 발상과 행동이 결국 한반도의 갑갑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더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약 2678만원(서울시와 경기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이라는 재산 피해가 묵과될 순 없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마주친 김여정 부부장을 기억한다. 특급 호텔 마리나샌즈베이에서 걸어나오던 그는 흰색 실크 블라우스 차림에 한껏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런 그가 6년 후 구상한 논리가 고작 ‘오물 풍선을 보내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니, 실망스럽다.
 
바이든 대통령의 TV토론 직후 그의 측근부터 뉴욕타임스(NYT) 논설실까지 아름다운 퇴장을 권하는 것을 보며 김 위원장과 김 부부장 남매는 역시 민주주의는 불편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그 반대다. 최고 권력자에게 용퇴를 권할 수 있는 자유, 그런 표현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가 빛나는 이유다. 오물풍선으로 북한이 더럽히는 건 스스로의 얼굴임을 김 위원장과 김 부부장은 깨달아야 한다. 오물 풍선은 발상 자체가 오물이다.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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