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악몽으로 매일 소파에서 잠들어”
[6·25전쟁 발발 74주년 특별기획]
참전용사 ‘살바토르 스칼라토’ 인터뷰
“동료 죽음 목격에 한·미 모두 증오”
한 아이 죽음 이후 한국 위해 싸울 결심
6·25 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은 오늘.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려 온 이 전쟁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 22일 롱아일랜드 하팍 자택에서 만난 살바토르 스칼라토 뉴욕주한국전참전용사회(KWVA) 롱아일랜드 지회장. 지하실을 가득 메운 전쟁 기록에서 한국전 참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반나절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보인 한맺힌 눈빛에서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51년부터 해군으로 복무한 그는 이듬해인 1952년 인천에 도착해 최전방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953년, 손과 목,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로 미국에 돌아왔다.
한국을 증오했다던 그는 어쩌다 “내 심장은 한국에 두고 왔다”고 말하게 됐을까.
“너무 많은 동료들이 내 품에서 죽어 나갔다”는 그는 처음으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날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을 앞둔 동료는 갑작스런 공격으로 총알을 맞고 스칼라토 회장의 몸 위로 쓰러졌고, 복부 압박을 했지만 결국 그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증오했고, 왜 우리가 남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분노했다”고 전했다.
주머니 속 잘린 아이의 손
그랬던 그는 한 아이의 죽음을 목격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전쟁 중 폭격을 맞아 주민 대부분이 사망한 한 마을에서 손이 잘려나간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 그는 잘린 손목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이를 안고 의사가 있다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아이가 남은 한쪽 손으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며 “아이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나왔다가, 주머니 속 아이의 손이 생각나 다시 들어가 전달했지만 이미 아이가 죽은 후였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던 그는 그때 결심했다고 한다. 이 죄 없는 한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그 어디에도 없었던 기록
통역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KWVA 하세종 수석부회장은 “전쟁에 참여한 미군 17만5000명 중 10만5000명은 부상, 8600명은 실종, 8000명은 포로로 잡혔다”며 “살아 돌아온 미군 중 70~80%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귀국 후에도 병원 신세를 지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목숨 바쳐 싸웠으나 몇십 년이 지나도록 미국에서 한국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바토르 회장은 “1985년 한국전에 대한 리포트를 쓰겠다는 딸에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라고 전한 뉴욕의 한 참전용사는 ‘그 어디에도 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에 심각성을 느껴 KWVA가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Unforgotten War〉으로
1999년 연방의회 결의안 통과로 예우받기 시작
전국 참전용사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 착수
한국 위상 높아지며 인식 개선…교육은 여전히 부족
어쩌다 ‘잊힌 전쟁’이 됐을까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전쟁 영웅으로 예우를 받기 시작한 건 전쟁 발발 약 50년 후인 1999년부터다. 이전까지 한국전은 트루먼 대통령 재임 당시 지시된 군사 작전(police action) 정도로만 규정됐고, 1999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 메달을 지급하고 싶다고 요청하며 연방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돼 전쟁 지위를 회복했다.
‘잊혀진 전쟁’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으로
살바토르 회장은 요즘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땡큐 포 유어 서비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물론 문화·경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전에 관심을 갖게 된 덕분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50개주 참전용사들의 피나는 노력도 들어가 있다. 협회가 결성된 이후 전국의 참전용사들은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잊혀진 전쟁’으로만 남을 게 아니라, 한국을 위해 싸운 이유와 목적을 차세대 청소년들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참전용사들이 직접 발벗고 나섰다.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강연했고, 또 교회와 도서관을 다니며 일반 시민들에게 체험담을 공유했다.
한국전 교육 여전히 부족
참전용사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살바토르 회장은 “지금은 예전보다 도서관에 가면 한국전 관련 책들이 몇 권 생겼다”며 “그래도 한국전은 베트남전 등에 비해 미국에 큰 의미가 없는 전쟁이라, 역사 교과서에서도 1~2페이지만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활발히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남아 있는 참전 용사들이 얼마 없고, 대부분의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돼 외부 강연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세종 부회장은 “협회 창립 당시 회원이 3만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차세대 한인들도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
전쟁 후 한국을 9번이나 방문했다는 살바토르 회장은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0년 방문 당시 동료 참전용사가 서울의 야경을 보고 “맨해튼과 다를 게 없지 않냐”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그는 “전쟁 당시 움츠렸던 대한민국은 이제 두려운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아직도 생생한 전쟁의 기억 때문에 침대에서 잠을 이루기 힘들어 소파를 찾는다는 살바토르 회장. 마지막으로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전을 기억해달라”고. 그리고 “우리의 희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지 말아달라고”.
글·사진=윤지혜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