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라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노래, 작사 작곡, 연기, 방송 진행에다 글도 써서 책도 여러 권 내시고, 그림도 그리고 하시는데… 더 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진행자의 질문에 김창완은 쑥스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답한다.
“사라지는 연습….”
“아, 그런 연습은 하지 말아주세요. 사라지지 말아주세요.”
“아니, 사라지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듯 사람도….”
사라지는 연습! 공감이 가는 말이다. 김창완이 23년간 매일 아침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에서 갑자기 하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발언이라서 더욱 진하게 울린다. 부당하게 잘렸다는 뒷말이 무성했었다. 마지막 방송 시간에 기타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던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많은 이들을 울렸다고 한다.
사라지는 연습, 아름다운 마무리…. 나이 들어서도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악착스레 움켜쥐고, 챙기고 모으고 감추고 더 채우려 애쓰는 노욕(老慾)을 부리기보다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흔적 남기지 않고 슬그머니 없어지기… 그러기 위해서 버리고 지우고 잊어버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 덧셈은 이제 그만하고 뺄셈을 하자는 생각….
아주 사라지는 것은 결국 죽는 일일 텐데, 누구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명언도 있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을 노래하는 시(詩)도 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살고 잘 죽는 것인가란 질문에 간단하게 답할 수는 없다. 생물학적으로는 이러이러한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비교적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인 면은 다르다.
좋은 죽음, 훌륭한 죽음…. 가장 널리 알려진 결론은,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멋진 인간이 되려고 애쓸 따름이다. 앞과 뒤가 같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삶, 부끄러움을 아는 삶… 그런 사람들이 제 대접을 받는 세상을 그리워하며 꿈꿀 뿐이다.
정말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잘 죽는가?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세상이 꼭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저 내가 그런 좋은 인간이 못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잘 죽고 싶어서, 공부를 멈출 수 없고, 신앙에도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것은 공부할수록 지식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많이 알고,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은 아니고, 지식도 결국은 고약한 욕심의 하나라는 생각….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라지는 연습, 잘 죽고 싶으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다시 새긴다. 많이 아는 것보다 잘 느끼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글로 이해하기보다 마음으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조금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예술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꿈의 표현이다.
슬기롭게 사라지는 연습을 위해선 우선 버리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지나친 욕심, 터무니없는 허세, 알량한 자존심, 헛된 기대… 버리고 비우는 일은 내 삶의 부끄러운 얼룩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고, 후손들을 위해 내가 더럽힌 것만이라도 내가 깨끗하게 치우고 가야겠다는 소박한 다짐이기도 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