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마당] 가슴에 묻은 친구
수필
이 아름다운 저녁을 바라보며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처음 하와이에 와 지상천국이라고 느껴져 이곳으로 초청하고 싶었던 사랑하는 친구이다. 5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잊을 만도 하건만,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생각나는 그리운 친구이다. 같이 웃고 울던 단짝이었던 친구의 얼굴이 달과 해 사이를 넘나들며, 어른거리는 파도를 타고 다가오고 있다. 항상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느껴지는,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듯하여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그녀는 늘 나를 ‘꼬마야’라고 불렀다. 찬 바람이 불던 부산 기차역에서 홀로 나를 배웅하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 눈앞이 흐려진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그 자체가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친구는 시외에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다. 친구가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는데, 사람이 버스에 오르기도 전에 버스가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 바퀴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는 석 달 동안 누워 있으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천주교를 믿는 그녀는 청순한 마음으로 성스러운 수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수녀원에 들어갔다.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다. 숙대 근처에 있는 수녀원이었다. 훈련받는 동안 방한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뜨거운 핫팩을 안고 자다가 다쳤던 다리에 화상을 입어 고생하기도 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자색 저고리에 검은색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몹시도 추워 보였다. 그런데 몇 달 동안 훈련을 다 받고 수녀원을 나온 후 그녀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수녀원에서의 생활이 바깥세상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수녀원을 나온 후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 후 결혼을 하고 귀여운 두 왕자를 낳았다. 첫아들을 안고 찍은 사진을 보내온 것이 마지막 사진이었다. 그녀는 ‘임신성 고혈압’으로 고생하였다고 한다. 둘째를 낳으면서 고혈압이 극도로 악화해 반신 마비까지 와서 친정에서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했지만 한쪽 손의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육체적으로도 괴로웠고, 기대에 어긋난 남편에 대한 불만족 등으로 힘들어했다. 그래도 버티고 견디어야 하지 않았을까, 고물거리는 어린 것들 때문에라도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나의 생각이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나 지성보다도 더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우정이다’라는 말이 내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친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자책해 보지만 곁에 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핑계일 뿐이다. 그 당시 나도 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힘든 기간이었다.
가버린 친구를 잊어버리려, 지워버리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를 기억하고 그와 같이 지냈던 일들을 가슴에 담고 그리워하련다.
손녀가 뮤지컬 해밀턴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는데 유독 내 귀에 남는 가사가 있다. ‘When my time is up, have I done enough?/Will they tell my story?/Will they tell your story?/Who tells your story?(내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나는 충분히 이뤄낸 걸까?/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할까?/사람들이 너의 이야기를 할까?/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웃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람들은 미소를 잃고, 에너지를 소진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사랑했던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아름답게 기억되고 회자될 가치가 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원이다.
김평화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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