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앞바라지’에만 바쁜 부모들
부모의 역할에 대한 손웅정 감독의 신념은 분명하고 정확하고 고집스럽다. 월드 스타를 길러낸 아버지의 교육철학이니 모든 부모가 귀담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앞바라지’라는 낱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손 감독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를 ‘자식의 앞바라지를 하는 부모’라고 설명했다.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우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밖에 키우지 못 한다.”
“(앞바라지는) 아이의 재능과 개성보다는 부모로서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지금 자기 판단에 돈이 되고 성공을 환호하는 것이다. 아이의 행복도 무시하는 등 그렇게 유도해서 갔을 때 자식이 30~40대 가서 하던 일에 권태기가 오고 번아웃이 온다면, 그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느냐?”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재능이 뭐고 개성이 뭘까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서 최고 빠른 시간 안에 아이의 재능과 개성을 찾아서 인생의 스타트 라인에 갖다 놔주는 것이다.”
‘아들이 용돈은 주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손 감독의 대답은 매우 단호하다. “아니, 제가 벌었어야지! 자식 돈은 자식 돈, 내 돈은 내 돈, 내 성공만이 내 성공이지, 어디 숟가락을 왜 얹느냐! 숟가락 얹으면 안 된다. 앞바라지를 하는 부모들이 자식이 잘됐을 때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 왜 자식 눈치 보면서 내 소중한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확고한 신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끊임없는 독서의 힘이라는 대답이다. 손정웅 감독은 성실한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에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라는 제목의 새 책을 펴냈다. 지난 15년간 쓴 독서 노트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삶에서도 운동에서도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이라 할 만한 책이다.
“내게 독서란 책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손웅정 감독은 좋은 책을 찾으면 최소 세 번 이상 읽는데, 검정, 파랑, 빨강 볼펜을 사용해 노트에 옮겨 적고, 외울 문장에는 줄을 긋고 사자성어나 새길 단어에는 별 표시를 하고 더 공부할 생각 거리는 메모하며 전투적으로 책을 읽고 노트에 필사한다. 그렇게 다 읽은 책은 미련 없이 버린다고 한다.
“저는 책을 읽기 전보다 책을 읽은 후에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 된 것도 같다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도 같거든요.”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손 감독은 단호하게 답한다. 시간을 내야만 한다, 성장을 위해 시간을 내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
책의 한 구절이 가슴을 때린다. “평생의 꿈이라면 그거 하나예요. 저는 이기기 위한 뻥 축구는 절대로 안 해요. 예의가 살아 있는 축구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전 다 제쳐두더라도 이 표현을 꼭 한번 듣고 싶은 거예요. 야, 참 아름답게 축구한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제대로 사람답게, 참 아름답게 산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으로 서글픈 사족 한 마디.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성인 독서율이 역대 최저인 43.0%로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1년 동안 책이라는 걸 단 한 권도 안 읽었다는 의미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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