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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150년전 도적들의 요새를 오르다…마운틴 파시피코 등산로

라카냐다 샌게이브리얼 산맥
19세기 대도 바스케즈 본거지
BTS도 뮤직비디오 찍은 명소

왕복 13마일·해발 2500피트
캐나다-멕시코 잇는 PCT 일부
정상 아래 끝없는 모하비 사막

할리우드 영화 야외 세트장으로 자주 사용된 바스케즈 록스 카운티 공원 정상.

할리우드 영화 야외 세트장으로 자주 사용된 바스케즈 록스 카운티 공원 정상.

1800년대 후반 남가주의 샌게이브리얼 산맥을 종횡무진하면서 암약하던 바스케즈 일당이 있었다. 중가주의 멕시코 가문에서 태어난 바스케즈는 준수한 용모에 노래와 춤에 능하고 기타를 잘 다루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교육도 받아 모범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추종하는 무리들과 함께 나쁜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북가주에서 금괴 탈취로 시작된 악행은 살인죄, 강도, 절도 등의 죄명까지 추가되면서 바스케즈에겐 큰 현상금이 걸리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스케즈는 같은 인종인 히스패닉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백인들을 응징하는 이미지로 보여졌는데 이런 연유로 바스케즈는 의적 조로에 비견되기도 했다.
 
이후 일당들은 남가주로 이동하였는데 현재 한인들도 많이 거주하는 라카냐다, 라크레센타 뒤편의 샌게이브리얼 산맥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의 족적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아주 가깝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제일 먼저 14번 프리웨이가 지나는 아구아둘세(Agua Dulce) 지역에 바스케즈 록스 카운티 공원이 있다. 형이상학적인 바위가 즐비한 이곳은 오래전부터 할리우드 영화의 야외 세트장으로 쓰였다.
 
수많은 서부영화와 공상 과학 영화의 단골 촬영장소였는데 우리가 잘 아는 TV 시리즈 보난자와 영화 스타 트렉, 조로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으며 세계 정상 엔터테이너인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아이돌 그룹 BTS도 이곳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다.
 
이곳 공원 이름이 바스케즈인 연유는 오래전 바스케즈 일당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암약했기 때문이다.
 
남가주에서는 훔친 말과 소를 재낙인하여 되파는 일을 하였는데 가장 서쪽의 바스케즈 록 공원 지역에서 동편으로 수십 마일 떨어진 마운틴 파시피코와 산아래 위치한 호스플랫 지역이 주요 활동무대였다.
 
샌게이브리얼 산맥을 관통하는 2번 하이웨이를 지나다 보면 칠라오 피크닉장 옆으로 호스플랫과 반디도 캠프장이 있다. 반디도는 도적이란 뜻이며 칠라오는 곰을 칼로 죽인 바스케즈의 부하를 칭송하는 ‘끝판왕’이란 뜻이다.
 
즉 우리가 자주 방문하여 피크닉을 즐기는 칠라오, 넓은 캠핑장소로 각광을 받는 반디도 등은 불과 150여 년 전 바스케즈 일당이 훔친 소와 말을 관리하던 장소였다.
 
그 가운데 바스케즈 일당이 숨어 지냈던 마운틴 파시피코는 요새와도 같았다. 아름드리 나무와 커다란 바위들로 만들어진 아늑한 장소인데 물과 음식만 있으면 오랫동안 편히 지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현상금 사냥꾼들과 보안관들이 바스케즈 일당을 끈질기게 추격했고 마운틴 파시피코 인근은 그들과 사투를 벌인 장소이기도 했다.
 
마운틴 파시피코 정상 아래로 펼쳐지는 모하비 사막의 전경.

마운틴 파시피코 정상 아래로 펼쳐지는 모하비 사막의 전경.

세월이 지난 후 산림국에서는 파시피코 산 정상에 캠핑장을 만들었는데 정상까지 통하는 비포장 도로가 있어 많은 사람이 산꼭대기에서 낭만적인 캠핑을 즐겼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산불위험의 이유로 비포장 도로를 막아놓았는데 근 15년이 가까워진다.
 
지금도 산 위에서 캠핑할 수 있지만 텐트와 물 음식을 직접 짊어지고 가야한다. 가장 가까운 밀 크릭 소방서에서 출발하면 왕복 13마일에 2500피트 등반 고도이다.
 
마운틴 파시피코는 당일 등산 코스로도 아주 좋다. 왕복 거리가 제법 되지만 길이 완만하고 관리가 잘되어 중급자의 하루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정상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으며 아래편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모하비 사막을 바라보며 점심을 즐기는 맛이 일품이다. 점심 후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잠깐 낮잠을 자는 게 또한 꿀맛이다.  
 
물론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추위가 매서운 곳이며 여름철에는 정상을 빼고는 그늘이 없어 더위에 고생이 되는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과 150여 년 전 바스케즈 일당이 활동했던 자리에서 맑은 공기를 즐기면서 여유를 부린다는 면에서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상치된다.
 
마운틴 파시피코 등산로는 멕시코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의 일부이기도 하다. 4월이나 5월에 이곳을 산행하다 보면 수많은 PCT 하이커들을 만난다.
 
완주에 6개월이나 걸리는 대장정을 시작한 이들은 남녀 짝을 이루거나 혼자 산행을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의 경우 덥수룩한 수염과 길게 자란 머리가 특징인데 이미 한 달이 넘는 기간을 산행하면서 이곳 마운틴 파시피코 봉우리 아래편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각자 사연이 있고 동기가 있어 긴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등산인들이지만 자연을 동경하고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려는 의지에는 격려와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봄날에 다녀오는 파시피코 등산로는 모하비 사막의 풍광이 너무 멋지다. 그리고 등산객들과의 스쳐 지나가는 만남도 즐겁고 귀하다.
 
김인호
 
지난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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