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알츠하이머 간병 문제 공론화 필요
한인 사회의 알츠하이머 환자와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들이 겪는 부담의 실태는 어떨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미국 내 한인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 사례는 없다. 다만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정신건강과 행동과학부 명예교수인 돌로레스 갤러거 톰슨 박사가 미국 내 중국계와 베트남계 시니어를 상대로 한 연구 결과는 한인 사회에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톰슨 박사는 중국과 베트남계 커뮤니티의 알츠하이머 질환과 그로 인한 간병 스트레스가 무척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먼저 아시아계 커뮤니티에서는 ’치매‘를 인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자어 ’치매‘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 곧 어리석다는 한자 2개가 결합한 부정적인 단어이다. 한자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알츠하이머 등 치매에 걸렸음을 인정하는 자체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만다.
톰슨 박사는 특히 베트남계 커뮤티니의 경우, 많은 시니어가 베트남 전쟁 경험으로 인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40-60세 아시아계 여성은 부모와 자신의 자녀를 모두 돌봐야 하는 이른바 ’샌드위치 세대‘에 속하며, 그들은 간병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혈연관계라는 무거운 가족적 책임감을 느끼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연구한 톰슨 박사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한 청장년층 간병인들이 다양한 역할 조율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치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가족 단위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치매는 신경학적 조건이며, 정신 질환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과 가족이 인식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가족에게 치매 환자의 문제 행동에 스트레스 없이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 가족 구성원으로 포함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공중보건부(CDPH) 주도로 ’알츠하이머에 맞서다(Take on Alzheimer‘s)’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은 알츠하이머 징후 파악, 진단 후 취해야 할 조치 등에 대해 교육하며 이 질환에 대한 ‘낙인’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DPH 소속 의사 루시아 아바스칼 박사는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알츠하이머 질환자도 증가할 것”이라며 “특히 소수계 커뮤니티는 이 질병의 발병 확률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아바스칼 박사는 “알츠하이머는 진단 시기가 빠를수록 치료 가능성이 높고 방법도 많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알츠하이머 질환 진단을 받게 되면 그에 따라올 낙인을 두려워해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알츠하이머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질환일 뿐이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인 사회도 알츠하이머 문제를 더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이종원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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