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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은퇴 남편의 아르바이트 수입

최숙희 수필가

최숙희 수필가

나는 셈이 느리다. 막연히 불필요한 지출과 낭비만 안 하면 은퇴 후라도 어찌어찌 살아지겠거니 했다. 학창 시절에도 노트필기를 싫어하던 나는 가계부를 써본 적이 없어 생활비로 얼마를 쓰는지도 잘 모른다. 반면 남편은 모아둔 돈 까먹는 건 금방이라고 곶감 빼 먹는 심정이었나 보다.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전깃줄 위의 참새와 비둘기, 바닷가 모래밭의 갈매기도 간격을 두고 앉는다. 빨래를 잘 말리기 위해서도 사이사이에 간격이 필요하다. 바람이 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간격이란 관계를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워 은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은퇴해서 남편과 좁은 집에서 수시로 마주치니 불편하다. 운동화 속에 푸석거리는 흙이 들어온 것처럼 껄끄럽다.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다가 밥때만 되면 만나자고 했다. 일한다는 핑계도 없어진 마당에 하루 세끼 ‘삼식이’ 수발에 현기증이 났다. 그러던 중 남편이 친구가 도와달라고 해서 주 3회 일을 나간다고 했다. 돈은 둘째치고 그만큼 내 눈에 안 뜨일 테니 기뻤다. 남편이 출근한 후 나 홀로 누리는 평화롭고 경쾌한 기분이라니.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간격론자이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아온 남편이 봉투를 내밀며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사라고 인심 쓰듯 말한다. 나는 당신이 벌어온 ‘엑스트라 머니’이니 남편이 바라는 곳에 쓰라며 건드리지 않았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속에 나오는 젊은 부부도 아니면서 35년 차 부부의 밍밍한 삶에 갑자기 다정한 기류가 흐르며 닭살 부부 시늉하니 멋쩍다.
 


겨울에도 난방이 잘 되어 실내에서 반소매로 지내던 한국에 비해 잦은 비와 으스스한 날씨의 LA 겨울은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마침 사용하는 전기요의 전자파가 걱정된다며 남편이 온수 매트를 주문했다. 중간에 깨서 부스럭거려 상대의 꿀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원하는 유튜브나 TV 시청을 마음대로 하자며 우리 부부는 얼마 전부터 각방을 써왔는데 매트 덕분에 다시 합치게 되었다. 따로 방을 쓰던 부부가 나이 들며 방을 합칠 때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란다. 즉 생존의 문제가 아니면 ‘굳이’ 한방을 쓸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지만 우리는 우습게 온수 매트가 이유가 되었다.
 
전기세 봉투를 찢어보던 자린고비 남편이 온수 매트 때문에 이번 달 전기세가 30여 달러나 더 나왔다고 놀란다. 나는 최근에 들국화 노래에서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과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의 가사를 듣고 공감했다. ‘지구별 여행에서 맺은 인연, 끝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자. 초심으로 돌아가자’ 마음먹었는데 기분이 나빠졌다. 아직 아르바이트비가 많이 남았고 내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니 ‘명품 가방’이라도 살까. 내가 명품이 되기는 애당초 글렀으니. 

최숙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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