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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포노 사피엔스’ 낙오자의 변명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바야흐로 ‘포노 사피엔스’ 시대다. 이런 시대 흐름의 낙오자인 나는 이 ‘포노 사피엔스’라는 낱말이 두렵다. 그렇다고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불편하더라도 그냥 허름한 아날로그 꼰대로 여생을 보내는 편이 행복할 것 같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란 단어는 스마트폰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가 있는 인간)를 합성한 신조어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5년 특집 기사에서 처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며 스마트폰을 자기 몸의 일부처럼 여기는 사람들, 즉 ‘스마트폰을 24시간 손에서 놓지 않는 신인류’를 일컫는 것이다.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니, 전 인류가 ‘포노 사피엔스’인 셈이다.
 
스마트폰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팔린 기계’로 매우 빠른 속도로 세상과 우리 일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농업 혁명에 5000년, 산업 혁명에 200년, 디지털 혁명엔 30년이 걸렸지만, 스마트폰 혁명엔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거칠게 말하자면,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기계의 편리함에 길들었을 뿐, 그 편리함이 중단됐을 때의 혼란에 대비할 방책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노모포비아’를 걱정하고,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심신을 치유하자는 ‘디지털 디톡스’ 운동도 벌어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위험성과 폐해를 아무리 절박하게 외쳐봐도, 이미 시작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 머지않아 스마트폰에 인공지능(AI)이 장착될 전망이라니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포노 사피엔스’로 인해 인류가 어떤 위기와 기회를 맞고, 어떻게 변할 것인지 짐작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도 ‘호모 사피엔스’들은 끊임없이 더 편리하고, 더 작고 가볍고, 더 달콤한 기계에 목을 맨다. 그러는 동안 인간 자체가 변해간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바뀌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특히, 창조적 상상력과 개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예술가들에게는.
 
세계적 철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한병철 박사는 최근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단순한 정보와 이야기(서사)를 주제로 이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 느낌,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다”라고 진단한다. 한병철은 “우리가 억압도, 저항도 없는 스마트한 지배체계에서 자기 삶을 SNS에 게시하며 정보화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플랫폼에서 얻는 정보로 인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슈만 쫓느라 정작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중독 사회’라는 고발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서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회복,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주는 경청과 인내심, 이야기가 갖는 치유의 힘 등을 제시한다. 서사 없는 삶에 행복은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야기와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이다. 달리 말하면,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창조적 예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보 검색만으로는 자기 사랑, 자신만의 이야기, 사람 냄새, 삶의 의미와 방향 제시, 깊은 사유, 소통과 배려, 치유, 꿈, 더불어 사는 삶 같은 근본적 가치를 지켜낼 수 없다. ‘아날로그 꼰대’를 낙오자로 낙인찍기 전에 잠시 ‘사색’하기 바란다.
 
“검색보다 필요한 것은 사색이다”라는 말이 나온 지 벌써 오래되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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